따라서 색이 곧 공이요 공은 곧 색이니라

제주도 날씨는 종잡을 수 없었다. 바람이 세차게 불었고 안개가 앞을 가리더니 진눈깨비가 쌀알 같은 우박을 쏟아내며 잠시 후드득 소리를 내다 말고 이내 빗방울로 바뀐다. 조금 후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또 구름 사이로 햇살이 뻗친다. 그런 변화무쌍함(空)을 짧은 시간에 두루 경험하며 ‘두모악’갤러리에 도착했다. ‘색즉시공’을 가장 잘 가르쳐주는 공부방인 까닭에 바람 많은 삼다도에 올 때마다 들르게 된다. 바람은 보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순간적으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것이므로 공(空)이라 하겠다. 사진작가 김영갑 선생(1957~2005)은 그 바람을 순간포착한 후 캔버스에 고정시켜 색(色·존재하는 것)으로 변환시키는 탁월한 감각을 지녔다. 이런 걸 ‘공즉시색’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 작품(色)은 바람(空)이 없었다면 만들어 낼 수 없다. 그러므로 ‘색즉시공’이다.
작가 역시 생로병사(生老病死)인 삶의 변화라는 틀(空)을 피해갈 수 없었다. 그래서 육신(色)은 10여년 전에 우리 눈앞에서 사라졌다. 그럼에도 그의 갤러리에는 젊은 시절 사진이 또 다른 색(色)으로 남아있다. 돌아가실 무렵 지인의 안내로 잠깐 뵙는 시간을 가졌다. 병고(病苦)로 인해 의자에 몸을 기댄 채 우리를 맞았다. 그 모습이 내 생각 속에 또 하나의 색(色)으로 머물러 있다. 어쨌거나 모든 것이 공(空)인 줄 알기 때문에 매 순간 최선의 존재(色)로 살아야 하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다. 원철 스님(조계종 포교연구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