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장대응에 오락가락 행정…"방역시스템 뜯어고쳐야"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사태가 사상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독하고 빠른 H5N6형 AI가 제주도를 뺀 전국으로 확산한 가운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과거 우리나라에서 큰 피해를 냈던 H5N8형까지 같이 터지면서 정부는 '방역 총력전'에 나섰다.

그러나 AI 발생 초기, 국정 공백 사태로 인한 늑장대응과 허술한 방역 대책으로 오히려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다시 말해, 예견된 인재(人災)였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20일 농림축산식품부 등에 따르면 전남 해남 농가에서 최초 AI 의심 신고가 접수된 것은 지난달 16일이다.

이보다 앞선 10월 28일 민간 대학 연구팀이 채취한 충남 천안 봉강천의 야생원앙 분변에서 H5N6형 고병원성 AI가 검출돼 지난달 11일 검역본부에서 최종 확진됐다.

그러나 AI와 관련해 범정부 차원의 관계장관회의가 처음 열린 것은 지난 12일이다.

농가 최초 신고 이후 26일 만이고, 봉강천 야생조류 확진 판정이 난 이후 무려 한 달 만이다.

AI 위기경보는 바이러스가 사실상 전 지역에 확산한 이후인 16일에야 최고 단계인 '심각'으로 격상됐다.

2014년 1월 전북 고창군에서 최초 AI 의심 신고가 접수된 지 이틀 만에 정홍원 당시 국무총리 주재로 8개 부처가 긴급관계장관회의가 열려 범정부 차원의 대책이 마련됐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또 올겨울 우리나라와 똑같이 H5N6형 AI가 발생한 일본의 경우만 보더라도 야생조류 분변에서 AI 바이러스가 검출되자마자 즉각 위기경보를 최고 단계로 격상하고, 아베 총리가 직접 방역 상황을 챙겼다.

초기 대응의 차이는 피해 규모의 엄청난 격차로 이어졌다.

우리나라는 한 달 만에 도살 처분된 가금류 마릿수가 2천만 마리에 육박했지만, 일본은 100만 마리가 채 안 된다.

우리나라와 일본의 가금류 사육 종류나 환경 등이 달라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피해 규모가 20배가량 차이가 나는 점은 납득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최순실 사태 등으로 인한 국정 공백이 지속하면서 방역 콘트롤타워가 실종돼 이른바 '방역의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다.

AI가 이미 퍼질 대로 퍼진 상황에서 정부가 '뒷북 정책'만 내놓고 있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실제 농식품부는 19일 가축방역심의회를 열고 AI 발생농장을 거점으로 설정된 3㎞ 방역대 내에서 생산된 계란 반출을 이르면 이번 주부터 일주일간 전면 금지하겠다고 발표했다.

계란 운반차량이 농장 간 수평전파를 확산할 가능성이 있어 특단의 조처를 내리겠다는 설명이다.

지금까지는 발생농장 반경 500m 내 계란의 반출만 금지됐고, 500m~3㎞ 이내 농가에 대해선 별도의 제재가 없었다.

AI 발생이 집중된 경기 지역만 지자체 차원에서 일주일에 1회로 반출을 제한하다가 그마저도 최근 다시 주 2회로 늘렸다.

하지만 계란 운반차량이 수시로 드나드는 산란계 농장 특성상 AI 감염에 취약할 수밖에 없고, 농가 차원의 방역 역시 철저히 되지 않는다는 점은 이미 사태 초기부터 수차례 지적됐던 부분이었다.

이 대책 역시 한발 늦었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 밖에 없다.

오락가락한 대책 역시 문제점으로 꼽히고 있다.

정부는 지난달 19일 살아 있는 닭(토종닭)의 시장 유통을 금지했다가 이달 15일 닭 유통을 다시 일부 허용했다.

당시 토종닭 발생 사례가 없고, 장기간 유통금지로 인한 닭의 상품성이 저하됐다는 현장의 의견을 수렴해 제한적으로 유통을 허용했다는 것이 농식품부의 설명이다.

그러나 이미 AI가 빠른 속도로 확산하던 상황인 데다 피해 추산도 가늠되지 않던 상황에서 감염 위험이 큰 닭 유통을 다시 풀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성남시에서는 이런 정부 지침이 '비정상적'이라며 거부 방침을 공개적으로 밝히기도 했다.

공교롭게도 정부가 살아 있는 닭 유통 제한 조치를 풀자마자 당일 오후 부산 기장군의 토종닭 농가에서 AI가 발생한 데 이어 다음 날인 16일 위기경보가 '심각'으로 격상됐다.

그러자 정부는 다시 17일부터 전통시장 및 가든형 식당으로의 살아 있는 닭 유통을 금지했다.

이와 관련 이준원 농식품부 차관은 "방역 효과를 높이면서도 농가 현장에서 겪는 어려움을 조화시키는 방법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보니 외부에서 보기에는 '왔다 갔다'하는 것처럼 비친 측면이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축산농가와 업자들의 요구를 잠시 들어주려다가 AI의 확산을 통해 결과적으로는 그들에게 더 많은 피해를 보게 한 것은 아닌지 돌이켜볼 필요가 있다.

AI가 사실상 '연례행사'로 전락한 상황에서 일선의 방역조치부터 다시 철저히 점검하는 등 정부의 방역체계를 뜯어고쳐야 한다는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농장 단위에서부터 철저하게 방역망이 관리되지 않으면 어떤 대책을 세우더라도 그 실효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송창선 건국대 수의과 교수는 "반복적으로 AI를 겪게 되면 나아지는 측면이 있어야 하는데 현재 상황을 보면 좋아지지 않고 오히려 나빠지고 있다"며 "부실한 대응이 이번 사태를 키웠고,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방역망이 철저히 관리가 안 되고 있어 전반적인 시스템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서울연합뉴스) 정빛나 기자 shin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