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EU서 박대당하는 터키
터키는 ‘형제의 나라’다. 6·25전쟁 때 1만5000명을 파병하고 한반도에 젊은이들의 뜨거운 피를 뿌렸다. 터키 사람들도 한국을 칸카르데쉬라 부른다. ‘피로 맺어진 형제’라는 뜻이다. 터키는 요즘 한국인들의 ‘뜨는 여행지’이기도 하다.

영국의 문명사가 토인비가 《역사의 연구》에서 언급한 것처럼 터키는 ‘인류문명이 살아 있는 야외박물관’ 같은 나라다. 1만년 전 구석기시대부터 그리스 로마, 오스만제국에 이르기까지의 찬란한 유적과 유물이 널린 아나톨리아 반도가 터키공화국의 터전이다. 소아시아라고도 불리는 그 곳에서 셀주크·비잔틴·오스만 제국 등이 역사를 일구고 명멸했다.

오스만 제국은 1453년 ‘천년 제국’ 비잔티움의 수도이자, 크리스트교 문명을 대표하는 콘스탄티노플(지금의 이스탄불)을 정복했다.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에 걸친 대제국을 건설했지만 이후 쇠퇴의 길을 걸었다. 실지회복전쟁을 주도한 ‘국부’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가 터키공화국을 수립한 때가 1923년이다.

장대한 역사만큼이나 터키는 한마디로는 설명이 불가능한 나라다. 동양인지 서양인지조차 불분명하다. 국토의 97%가 아시아에 속해 있다. 하지만 서구문명을 관통해온 이스탄불이 3%에 속해 있어 유럽으로서의 존재감도 묵직하다. 국민 대부분이 이슬람교도인 점은 유럽과의 동질성을 크게 훼손하는 요인이다. 터키는 건국 이래 유럽 편입 정책을 추진해 왔다. 아타튀르크는 정체된 터키를 이슬람 전통에서 벗어난 서구화된 나라로 만들기 위해 케말리즘이라는 천지개벽에 가까운 개혁을 주창했다. 케말리즘의 핵심정책은 정교 분리, 히잡 금지, 여성 참정권 등의 탈(脫)이슬람적 ‘세속주의’다.

터키는 1987년에 EU 정회원국 가입을 신청해 2005년부터 협상을 시작했다. 하지만 24일(현지시간) 유럽의회는 가입 논의 잠정 중단안을 압도적으로 가결했다. 지난 7월 쿠데타 진압 이후의 억압적 정치환경을 문제 삼았다. 논란의 중심에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있다. 에르도안은 반세속주의 경향에다 포퓰리즘까지 동원하며 만만찮은 지지를 얻고 있다. 그는 쿠데타 진압 후 “사형제를 부활하고 반대파를 박멸하겠다”며 권위주의 통치를 강화했다.

유럽의회의 결정에 대해서는 “의미 없다”고 평가절하했다. EU 대신 중국과 러시아 주도의 상하이협력기구(SCO) 가입을 시사하며 역공에도 나섰다. NATO 회원국인 터키가 SCO에 편입된다면 브렉시트와 트럼프 당선에 이은 또 하나의 사건이다. 에르도안의 터키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백광엽 논설위원 kecor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