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우리밀 자급률 10% 이상으로 높이자
서구문화 유입이 활발해지면서 우리의 식생활 문화도 무척 달라졌다. 국수와 빵 외에도 피자와 스파게티 등 서구 스타일의 음식 종류가 다양해졌다. ‘우리의 주식은 밥’이라는 인식이 약해진 지 오래다. 자연히 우리나라의 밀 소비량도 증가하고 있다.

건강 측면에서도 밀가루는 서양인보다 오히려 동양인에게 체질적으로 잘 맞는다는 보고도 나왔다. 밀가루 성분에 의해 유발되는 셀리악병(Celiac disease) 발병률이 서양 사람은 1% 정도이지만 동양인에 대한 보고는 거의 없다.

밀가루 음식 소비가 늘고 있다면 우리밀 생산량이 증가하는 게 시장 원리에 맞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1970년의 우리나라 밀 자급률은 15.9%였지만 작년에는 고작 1.2%에 머물렀다. 거의 전량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셈이다. 세계적인 기상이변에 따른 곡물생산량 감소와 곡물가격 폭등으로 ‘애그플레이션(agflation)’ 물결이 언제 우리나라를 휩쓸지 모르는 상황에서 저조한 밀 자급률은 식량안보 차원에서도 우려된다.

그렇다면 밀 자급률을 끌어올리기 위해 정부가 취할 수 있는 방안에는 무엇이 있을까. 가장 중요한 게 우리밀의 우수성을 적극 알려 소비 증대를 이끌어내는 일이다. 요즘은 많이 먹는 것보다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식품의 기능성’을 더 중시하는 웰빙시대다. 밀가루 음식을 먹고 소화불량을 호소하거나 알레르기에 민감한 사람들이 수입밀보다 국산밀을 선호하는 경향이 생겼다. 임상적으로 더 나은 느낌을 체험하기 때문이다. 우리밀과 수입밀을 비교 분석해 우리밀의 우수성을 과학적으로 발굴·검증하는 일과는 별개로 우리밀에 대한 홍보를 강화해야 한다.

다음으로 예측 가능한 판로를 적극 개척해야 한다. 경작되는 밀의 판로를 확실하게 보장하는 방법 중 하나가 정부 수매제도다. 일본도 한때 우리나라처럼 품질이 좋고 저렴한 수입밀로 인해 일본산 밀의 소비가 외면받고, 자급률이 떨어졌던 시기가 있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방치하지 않았다. 식량안보에 대비하는 차원에서 밀 경작률을 높였고 적극적인 정부수매 정책을 펼쳤다. 한국보다 농산물 시장이 더 넓게 개방돼 있는데도 불구하고 일본의 밀 자급률은 작년 말 기준으로 15%에 달한다. 우리나라도 일본의 경험을 거울 삼아 과거 폐지했던 정부 수매제도를 다시 부활해 운영하고 있지만 여전히 부족하다. 우리밀의 자급률이 최소 10% 선에 이를 때까지 확대 운영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경작된 밀의 판로를 보장하는 또 다른 방안은 맞춤형 계약재배의 활성화다. 밀 경작에 인센티브를 부여할 뿐만 아니라 국내시장에서 선호하는 품종의 경작을 유도할 수 있어서다.

마지막으로 밀의 6차 산업화 구축방안이다. 우리나라는 청보리 단지와 유채 단지의 개발에 성공한 경험을 갖고 있다. 밀 역시 전국의 특정 단지를 선정해 생산과 제조, 관광 등을 통합 개발하는 6차 산업형 그림을 그리는 게 중요하다. 중년 이상 세대 중 상당수는 밀밭과 밀타작 등에 대한 추억을 갖고 있을 것이다. 관광 자원 측면에서도 활용할 만하다.

샘이 마르고 나서야 물이 귀한 줄 안다. 지금 시점에서 수입밀의 품질과 가격이 상대적으로 우수하다고 해서 우리밀의 자급률을 도외시하는 것은 위험하다. 세계적 기후변화 상황을 감안할 때 애그플레이션이 예고 없이 불어닥쳐 국가 식량안보에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 따라서 웰빙바람으로 국산밀 소비가 늘어나고 있는 요즘 정부가 다양한 방안을 마련해 식량안보에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우리밀의 자급률을 적어도 10% 이상으로 늘릴 때까지 멈춰선 안 된다.

이남택 < 고려대 교수·분자생물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