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의 고향이자 노나라 수도였던 취부시에 있는 공자의 사당(공묘). 공묘는 중국 전역에 수천 개 있지만 이곳은 기원전 478년에 세워진 최초의 공묘다.
공자의 고향이자 노나라 수도였던 취부시에 있는 공자의 사당(공묘). 공묘는 중국 전역에 수천 개 있지만 이곳은 기원전 478년에 세워진 최초의 공묘다.
중국 전통 지리 개념에서 산서(山西)와 산동(山東)의 이름은 자주 등장한다. 중국 동북부 지역의 양쪽 경계가 확연하게 갈라지는 지층이기 때문이다. 멀리 서쪽에서 다가오는 황토고원(黃土高原)은 남북으로 약 400㎞에 걸쳐 흐르는 태항산맥(太行山脈)에 막혀 발길을 멈춘다.

이 산맥이 바로 서북부 황토고원의 지형과 그 동쪽으로 펼쳐지는 드넓은 화북(華北)평원의 경계선이다. 그 서쪽이 바로 산서, 동쪽은 보통 산동으로 일컬었다. 산서는 지금 중국 발음으로 ‘산시’라는 이름을 달고 성(省)으로 존재한다. 그에 비해 산동은 원래 태항산맥 동쪽의 광범위한 지역의 지칭이었다가 결국 지금 우리가 여행하는 ‘산둥’의 이름으로 좁혀졌다.

산둥은 한반도와 가깝다. 따라서 중국 진출 우리 기업이 가장 많다. 그러나 원래 이곳을 지칭했던 대표적 이름은 齊魯(제로)다. 춘추전국시대 지금 산둥에 근거지를 두고 있던 제(齊)나라와 노(魯)나라를 합쳐 불렀던 명칭이다. 2014년 현재 인구는 9784만명, 경제 규모로는 중국 전체 3위다.

황허 지역과 다른 동이 문화

신석기 시대에 이미 서부 황허(黃河) 지역과는 다른 문명의 요소를 키웠던 곳이다. 이곳의 바탕을 이야기할 때 중국 학계가 공통적으로 꺼내는 말이 동이(東夷)다. 일찌감치 중원과는 다른 동이족이 거주하며 독특한 문화를 형성했다는 얘기다.

중원의 영향이 미치기 시작한 때는 서주(西周 BC1046~771) 무렵이다. 우리가 잘 아는 강태공(姜太公)이 산둥의 동쪽, 주(周)나라 왕실 주공(周公)의 아들이 산둥의 서쪽에 분봉(分封)을 받았다. 그로써 동쪽은 제(齊), 서쪽은 노(魯)나라가 들어섰다. 산둥의 본래 이름은 여기서 나왔다.

그러나 원래의 바탕인 동이의 전통은 강했다. 제나라와 노나라는 그런 동이의 문화를 근간으로 삼아 독특한 인문을 이룬다. 두 나라는 중국 인문의 형성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위상을 차지한다. 먼저 제나라는 ‘부국강병(富國强兵)’이라는 국가 통치적 지향이 가장 이르게 성숙한 곳이다. 제나라의 환공(桓公)과 그의 명 파트너인 관중(管仲)이 이곳에서 부국강병의 지향을 처음 선보였다. 아울러 커다란 성공을 거뒀다. 부국강병은 달리 설명이 필요 없을 수 있으나, 원래의 출발점에서는 “나라가 부유해야 국방력도 강해진다”는 논리였다. 요즘에는 우리가 이 성어를 쓰면서 ‘부국’과 ‘강병’을 동렬(同列)의 요소로 인식하고 있지만, 원래는 ‘부국’이 ‘강병’의 선결(先決) 조건이었다는 얘기다. 아무튼 환공과 관중은 이를 충실히 집행한 사람들이다. 부국강병의 꿈은 중국 역사에 등장한 통치자들의 일관된 꿈이었으며, 그 점은 지금의 집권 공산당 또한 마찬가지다.

'백가쟁명' 화려한 사상의 산실

그 제나라 수도는 직하(稷下)라는 곳이었다. 지금의 쯔보(淄博)라는 도시다. 이곳에 제나라가 운영한 학교가 있다. 직하학궁(稷下學宮)이다. 중국인 표현을 빌리자면 ‘세계 최초의 대학’이다. 성악설(性惡說)을 주창한 순자(荀子)가 세 번이나,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총장’을 지낸 중국 고대 학문의 요람이었다.

백가쟁명(百家爭鳴)이라는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화려한 지적인 전통이 이곳에서 비롯했다는 점에 많은 중국학자가 동의한다. 황제(黃帝)와 노자(老子)의 전통을 이은 황로(黃老)사상을 근간으로 매우 실용적인 학문을 연마했던 곳이다. 그로써 제나라는 실용에 근간을 둔 경세(經世)의 학문을 연구하면서 부국강병의 방도를 모색했다.

그 서쪽의 노나라는 국력을 크게 떨치지는 못했으나 중국 인문에서 가장 우뚝한 인물을 하나 키워냈다. 바로 공자(孔子)다. 이 노나라는 제나라가 실용적인 경세의 학문 전통을 키운 데 비해 윤리와 도덕을 바탕으로 삼은 예치(禮治)의 인문 전통을 빚었다. 공자는 그런 전통을 체계적으로 승화시킨 인물에 해당한다.

부국강병의 경세를 위한 학문 전통, 윤리와 도덕을 중시하는 인문 전통이 모두 담긴 곳이 오늘의 중국 산둥이다. 양산박(梁山泊) 108명 두령이 활약했던 《수호전(水滸傳)》의 스토리도 이곳에서 영글었다. 실용적인 사상에 윤리와 도덕의 전통, 게다가 상무(尙武) 기질까지 갖춘 중국 속 동이 문명의 집합처가 산둥이다.

유광종 < 중국인문경영연구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