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노라면] 감과 모과와 모두의 부모님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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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원 < 소설가 >
![[사노라면] 감과 모과와 모두의 부모님 얼굴](https://img.hankyung.com/photo/201611/AA.12826921.1.jpg)
어린 시절의 경험은 확실히 놀라운 것이어서 지금도 나는 이 철이 되면 꼭 고향에 전화를 해서 감 몇 접을 청한다. 사실 감이야 집 앞 슈퍼에만 나가도 얼마든지 있다. 단감과 연시도 있지만, 껍질을 깎아 곶감을 만드는 떫은 생감도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 그러나 꼭 고향에 감을 청해 매년 연례행사처럼 내 손으로 곶감을 만들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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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이 흔한 동네에 살면서도 내 친구 집엔 감나무가 없었다. 그런데도 아이들 학비를 위해 돈을 만들어야 하니 친구 어머니는 동네 다른 집에서 이 동철감을 사서 침을 들여 시내에 내다 팔았다. 감에 침을 들이자면 전날 오후쯤 커다란 단지 아래 볏짚을 깔고 감을 넣은 다음 소금을 푼 뜨거운 물을 붓고 다시 이불을 씌워 하룻밤을 지내야 한다. 그런데 이때 물의 온도 조절을 잘못하면 없는 살림에 아이들 학비라도 보태기 위해 사온 감들이 모두 무르거나 곰보가 돼 시장에 내다 팔 수 없게 된다.
일요일이던 그날 친구 집에 놀러 갔다가 침감 단지를 붙잡고 긴 한숨 끝에 눈끝을 닦던 친구 어머니의 모습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아마 그건 그 시절 친구 어머니 한 분만의 모습이 아니라 시골에서 없는 살림에 자식만은 가르쳐보겠다고 온갖 고생을 다하시던 우리 부모님 모두의 얼굴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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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다른 과일은 들고나는 것을 몰라도 모과는 과일전의 온갖 설움 속에서도 한 번 몸을 깔고 앉은 멍석에까지 제 향을 오래 남긴다. 아주 오래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는 우리에게 늘 자기가 있던 자리에 오래 향을 남기는 모과 같은 사람이 되라고 하셨다. 이 가을 과일 생각 속에 그 깊은 뜻을 다시 깨닫는다.
이순원 < 소설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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