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은행장 인사 하마평에는 없는 것
요즘 은행원들의 식사자리나 술자리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주제는 차기 지주사 회장이나 은행장이 누가 되느냐다. 임기가 조만간 끝나는 최고경영자(CEO)의 후임이 누가 될지를 놓고 다양한 뒷담화가 벌어지기 일쑤다.

그도 그럴 것이 국내 최대 금융그룹인 신한금융의 한동우 회장 임기가 내년 3월로 끝난다. 늦어도 내년 1월께면 후임이 결정될 예정이다. 조용병 신한은행장의 임기도 내년 3월이다. 이광구 우리은행장과 함영주 KEB하나은행장 임기도 내년 3월 주총까지다. 권선주 기업은행장은 12월27일 임기가 끝난다.

신한금융은 그동안 재일동포 주주 덕분에 정부 등의 외풍을 덜 탔다. 한 회장의 의중에 따라 조 행장과 위성호 신한카드 사장 등 내부 인사 중에서 차기 회장이 결정될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설(說)이 끊이지 않는다. 1948년생인 한 회장과 조 행장(1957년생), 위 사장(1958년생)의 나이 차이가 10년가량 나기 때문에 중간 다리 역할을 할 사람이 회장으로 올 것이란 설이 대표적이다. 나이가 딱 중간 정도 되는 전직 고위관료가 올 수 있다는 말이 한때 나돌기도 했다. 그러다가 “외부 출신이 올 수 있겠느냐”는 회의론이 커지자 이번에는 ‘무슨 사단의 멤버’라는 전직 계열사 대표 이름까지 오르내리고 있다.

기업은행에서는 현기환 전 청와대 정무수석의 차기 행장 내정설이 퍼지자 노조가 반대 성명을 냈고, 급기야 청와대가 직접 사실이 아니라고 해명까지 했다. 다른 은행들에도 “누가 열심히 뛰고 있다” “회장과 행장의 관계가 껄끄러워졌다”는 확인되지 않는 말이 끊임없이 나온다.

이런 설들은 대개 출신지와 학연 등 전통적 인맥에 근거한 것이 많다. 가령 “TK(대구경북) 출신 누구랑 친하다” “충청 출신 누가 대통령이 되면…” 등이 대표적이다.

은행권이 아닌 일반 대기업에서도 인사철이면 여러 얘기가 나오지만 그 근거는 사뭇 다르다. “신제품 개발에 성공했으니 승진 1순위다” “사업부 실적이 크게 부진했으니 옷을 벗어야 할 것이다” 등 실적과 능력을 기반으로 한 하마평이 대부분이다.

조사에 따르면 삼성 등 10대 그룹 96개 상장사 임원 중 상무직급의 평균 재임기간이 3.9년으로 가장 짧다. 임원이 되고 1년을 못 버티고 쫓겨나는 것도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만큼 살벌하다. 눈에 보이는 숫자(성과)가 없으면 버틸 수 없다. 한가하게 학연이나 라인으로 하마평을 한다면 웃음거리가 되기 십상이다.

물론 은행에서 능력과 성과에 관계없는 인사가 이뤄진다는 얘기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뚜렷한 대주주가 없어서인지, 아니면 회장의 영향력이 너무 커서인지 아직까지 무협지를 연상케 하는 하마평이 많은 게 사실이다.

지난 9월23일 성과연봉제를 반대하기 위한 금융노조 총파업은 큰 호응을 얻지 못했다. 하지만 금융노조는 다음달 2차 파업을 예고하고 있다. 평균 연봉 8000만원 은행원들의 파업에 고개를 끄덕여줄 직장인이 얼마나 될까. ‘일 잘하고, 성과를 더 낸 사람이 성공한다’는 문화가 은행에 더 깊게 자리잡기 전까지는 지금 같은 은행장 하마평은 계속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서욱진 금융부 차장 ventu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