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포크음악의 ‘전설’ 밥 딜런이 대중가수로는 처음으로 노벨문학상을 받는다. 사진은 딜런이 2011년 6월 이스라엘 텔아비브 공연에서 연주하는 모습. 연합뉴스
미국 포크음악의 ‘전설’ 밥 딜런이 대중가수로는 처음으로 노벨문학상을 받는다. 사진은 딜런이 2011년 6월 이스라엘 텔아비브 공연에서 연주하는 모습. 연합뉴스
“시인이 된다는 것은 반드시 종이 위에 글을 써야 하는 건 아니에요.”

미국 작가 로버트 셸튼이 1986년에 펴낸 《노 디렉션 홈:밥 딜런의 삶과 음악》에서 소개한 밥 딜런(75·본명 로버트 앨런 지머맨)의 말이다. 음유시인 또는 저항시인이란 틀에 엮이는 걸 거부했던 딜런의 생각이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그는 때로 자신을 시인이라고 주장했지만 “노래하고 춤추는 사람”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올해 노벨문학상이 소설가나 시인, 극작가도 아닌 미국 포크 가수 밥 딜런에게 돌아갔다. “엄격한 형식을 갖춰야만 시가 되는 건 아니다”고 말하는 딜런의 ‘시학’을 인정한 결과다. 13일(현지시간) 스웨덴 한림원 본부에서 사라 다니우스 한림원 사무총장이 노벨문학상 수상자 이름을 발표하자 커다란 함성이 터져나왔다. 박수와 휘파람도 이어졌다. 현장에 모여 있던 기자들과 청중은 뜻밖의 결과에 웅성거렸고, 다니우스 사무총장은 잠시 발표를 멈추고 기다려야 했다.

딜런은 세계 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한 명으로 꼽힌다. 1941년 미국 미네소타주 덜루스에서 러시아계 유대인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열 살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다. 1959년 미네소타대에 입학했으나 1961년 중퇴하고 자신의 우상인 포크 가수 우디 거스리를 만나기 위해 뉴욕으로 향했다. 그리니치빌리지 주변의 클럽들을 전전하며 연주를 하다가 음반 제작가 존 하몬드의 눈에 띄어 1962년 데뷔 앨범 ‘밥 딜런’을 발표했다. 딜런이라는 예명은 그가 시적 영감을 받은 영국 시인 딜런 토머스에서 따왔다.

밥 딜런과 포크송 가수 존 바에즈.
밥 딜런과 포크송 가수 존 바에즈.
1963년 발표한 앨범 ‘더 프리휠링 밥 딜런’은 그에게 큰 성공을 안겨줬다. ‘블로잉 인 더 윈드(Blowing In The Wind)’ ‘더 타임스 데이 아 어 체인징(The Times They Are A-Changing)’ 등 시적이면서 시대적 메시지를 담은 가사와 간결한 모던 포크 음악을 결합한 수록곡들은 미국 내 반전·저항운동의 바람을 타고 세계적으로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미국 반전운동의 기수로 떠오른 그의 음악은 한국 학생운동과 포크음악에도 영향을 미쳤다.

1960년대 저항·반전의 아이콘…시대를 노래한 '음유시인' 밥 딜런
그는 1965년 뉴포트 포크 페스티벌 무대에서 전자 기타를 들고 나와 포크 팬들로부터 야유와 반발을 샀다. 하지만 딜런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후 포크록과 컨트리록으로 영역을 확장했고 2000년대에도 꾸준히 앨범을 내며 여전히 실험적인 음악을 선보이고 있다.

대중음악평론가 임진모 씨는 “로큰롤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두 뮤지션이 딜런과 비틀스”라며 “비틀스 노래가 시적인 가사로 바뀐 것은 딜런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그는 노래 가사를 시의 경지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사랑 이별을 단순하게 노래한 이전 대중음악의 가사와 달리 그의 가사는 주제부터 달랐다. 반전과 평화, 자유, 저항정신을 노래했다. 그러면서도 직접적인 구어체가 아니라 서정적이고 시적인 은유와 상징을 구사했다.

그의 대표곡 ‘노킹 온 헤븐스 도어(Knocking on Heaven’s Door)’에선 “천국의 문을 두드리고 있어요. 엄마, 내 총들을 땅에 내려놓아 줘요. 길게 드리워진 먹구름이 내려오고 있어요”라며 전쟁 또는 죽음의 종식, 평화와 안식을 향한 열망을 노래했다. 이 가사는 특히 ‘노킹’이란 단어의 반복 속에 뛰어난 운율을 보여줬다.

딜런 가사의 문학성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영문학자 손광수 씨는 저서 《음유시인 밥 딜런》에서 “딜런이 구축한 예술 형식의 특징인 시와 노래의 결합은 고급예술과 대중예술을 가로질러 새로운 미학적 공간을 열었다”고 평가했다.

딜런 작품의 문학적 가치는 미국 안팎에서 오래전부터 인정돼왔다. 그의 가사는 미국 고교와 대학 교과서에 실렸고 미국 대학에서는 ‘밥 딜런 시 분석’이란 강의가 잇따라 개설됐다. 작품성을 인정한 미국 프린스턴대는 딜런에게 명예학위를 수여했다.

하지만 문학계 일각에서는 가사가 시의 범주에 속하는지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도 있다. 이날 딜런의 수상 소식이 알려진 직후 일부 문인들은 트위터를 통해 떨떠름한 반응을 보였다. 미국 작가 제이슨 핀터는 “딜런이 노벨문학상을 받으면, 스티븐 킹(스릴러 소설가)은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올라야 한다”고 했고, 영국 작가 하리 쿤즈루는 “오바마에게 부시와 다르다고 노벨평화상을 준 이후 가장 믿기 힘든 노벨상 수상”이라며 놀라움을 표했다.

■ 대표곡 ‘바람만이 아는 대답’ - Blowing in The Wind

How many roads must a man walk down, Before you can call him a man?
How many seas must a white dove sail, Before she sleeps in the sand?
Yes, and how many times must cannonballs fly, Before they’re forever banned?
The answer, my friend, is blowing in the wind
The answer is blowing in the wind

Yes, and how many years can a mountain exist, Before it’s washed to the seas?
Yes, and how many years can some people exist, Before they’re allowed to be free?
Yes, and how many times can a man turn his head, And pretend that he just doesn’t see?
The answer, my friend, is blowing in the wind
The answer is blowing in the wind.

How many times must a man look up, Before he can see the sky?
How many ears must one man have, Before he can hear people cry?
How many deaths will it take till he knows That too many people have died?
The answer, my friend, is blowing in the wind
The answer is blowing in the wind

사람은 얼마나 많은 길을 걸어 봐야 진정한 인생을 깨닫게 될까요
흰 비둘기는 얼마나 많은 바다 위를 날아 봐야 백사장에 편안히 잠들 수 있을까요
전쟁의 포화가 얼마나 많이 휩쓸고 나서야 세상에 영원한 평화가 찾아올까요
친구여, 그건 바람만이 알고 있어요
바람만이 대답할 수 있답니다

얼마나 많은 세월이 흘러야 높은 산이 씻겨 내려 바다로 흘러갈까요
얼마나 많은 세월이 흘러야 사람들은 진정한 자유를 얻을 수 있을까요
언제까지 고개를 돌려 모르는 척할 수 있을까요
친구여, 그건 바람만이 알고 있어요
바람만이 대답할 수 있답니다

마나 많이 올려다 보아야 진짜 하늘을 볼 수 있을까요
얼마나 많은 귀를 가져야만 다른 사람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요
얼마나 많은 사람이 희생돼야 무고한 사람들이 너무 많이 죽었음을 깨달을까요
친구여, 그건 바람만이 알고 있어요
바람만이 대답할 수 있답니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