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CB, 자산매입 축소 검토"…유럽발 '긴축 발작' 시작되나
유럽중앙은행(ECB)이 양적완화 규모를 줄이는 ‘테이퍼링(tapering)’에 들어갈 것이라는 전망에 유럽과 미국 채권금리가 급등했다. 유로화 가치는 요동치고 뉴욕증시는 급락했다.

블룸버그통신은 ECB가 내년 3월 양적완화 종료 이전에 국채 등의 자산매입 규모를 줄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ECB는 매월 800억유로 규모의 채권을 매입해 시중에 돈을 푸는 양적완화를 하고 있다. 블룸버그는 지난달 ECB 회의에서 양적완화 종료 전 테이퍼링을 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며 양적완화 규모를 월 100억유로가량 줄이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금융시장은 예상치 못한 ECB의 테이퍼링 검토 소식에 충격을 받았다. 지난달 ECB는 양적완화 규모를 확대하는 추가부양책을 내놓지 않아 실망을 안겼다. 시장 기대와 정반대 기조로 급격하게 분위기가 바뀌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ECB에 정책 피로감이 확산되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ECB는 “양적완화 축소를 논의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지만 투자자들은 중앙은행의 급격한 정책 변경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리스크가 확인됐다는 반응을 보였다. 블룸버그 보도 직후 15분 만에 유로화 환율은 유로당 1.115달러에서 1.123달러로 급등했다. WSJ는 유로화가 외환시장에서 대규모 거래되는 점을 감안하면 이례적으로 큰 폭의 움직임을 보였다고 분석했다.

가장 큰 충격은 채권시장이 받았다. 이날 독일 국채(분트) 10년물 금리는 연 -0.09%에서 -0.05%로 4bp(1bp=0.01%포인트) 올랐다. 프랑스와 이탈리아, 스페인 국채도 비슷한 폭으로 뛰었다.

미국의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전날보다 6bp 급등한 연 1.69%에 마감하며 최근 2주래 최고를 기록했다. 2013년 미국 중앙은행(Fed)의 양적완화 축소 발표 후 글로벌 유동성이 급격히 감소한 ‘긴축발작’과 비슷한 현상이 벌어졌다. 뉴욕증시는 ECB의 양적완화 축소 소식이 전해지면서 다우존스지수가 한때 100포인트 넘게 하락하는 등 급락세로 돌아섰다.

빌 그로스 야누스캐피털 펀드매니저는 이날 자신의 트위터에서 “ECB의 긴축발작이 시작됐다”고 진단했다. 반면 영국의 투자은행 바클레이즈는 “ECB가 채권매입 규모를 줄이더라도 2018년 말까지 양적완화는 지속하겠다”며 “이를 긴축으로 볼 필요는 없다”고 밝혔다.

이날 이탈리아는 50년 만기 국채를 연 2.85% 조건으로 50억유로어치 발행하는 데 성공했다. 입찰에는 수요의 약 네 배에 달하는 185억유로 규모의 투자자금이 몰렸다. 이탈리아의 불안한 경제상황을 감안할 때 투자자들이 마이너스 금리 환경에서 수익을 올리기 위해 얼마나 위험을 감수하는지 잘 보여준 현상이라고 WSJ는 전했다.

뉴욕=이심기 특파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