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당 대통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이 월가가 가장 우려하는 ‘테일리스크’ 리스트 상위에 올랐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 메릴린치가 최근 월가의 펀드매니저와 애널리스트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가장 우려하는 테일리크스를 묻는 질문에 22%가 공화당의 대통령 선거 승리라고 답했다. 이는 1위로 꼽은 EU(유럽연합) 해체(23%)에 이은 2위다. 격차도 1%포인트에 불과하다.

공동 3위에 오른 중국의 위안화 절하와 미국의 인플레이션(각 15%)보다 더 큰 리스크로 트럼프의 당선을 꼽은 것이다.

테일리스크는 일어난 확률은 희박하지만 발생할 경우 시장에 엄청난 충격을 미치는 이벤트를 의미한다. 지난 6월 발생한 브렉시트(영국의 EU탈퇴) 결정이 대표적이다.

지난달 설문조사에서는 EU해체, 위안화 평가절하와 함께 글로벌 테러위협, 선진국 중앙은행의 ‘헬리곱터 머니’, 유럽 채권시장의 붕괴 등이 테일리스크 목록에 올랐다. 하지만 대통령 선거를 2개월 앞두고 힐러리 대세론이 흔들리면서 ‘트럼프의 승리’가 월가의 새로운 걱정거리로 부상한 것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최근 외환시장이 “만약 트럼프가 승리한다?”이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며 이같은 월가의 분위기를 전했다.

민주당 후보인 힐러리 클린턴이 최근 폐렴으로 인한 건강악화로 선거캠페인 일정에 차질이 생겼다는 소식에 곧바로 신흥국 통화가치가 하락한 것이 단적인 예라고 신문은 전했다. 트럼프 당선 확률이 높아질수록 미중간 무역마찰로 인해 신흥국 경제가 영향을 받게된다는 게 외환시장의 시각이다.

특히 멕시코 페소화는 최근 6개월간 달러에 대해 8%나 하락했다. 트럼프가 당선될 경우 NAFTA(북미자유무역협정)을 비롯한 모든 FTA협정을 다시 검토하고, 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쌓겠다고 공약이 현실화되면서 대미의존도가 높은 멕시코 경제에 충격이 예상된다는 분석에 따른 것이다.

전문가들은 월가의 트럼프에 대한 우려는 공약 그 자체보다는 정책에 대한 예측이 불가능하다는 데 있다고 지적했다.

트럼프의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 성향이 중국 등 주요 교역국과의 무역마찰로 이어지고, 달러화 약세-월가의 투자은행들은 트럼프 집권시 기준금리가 다시 제로수준으로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로 인한 환율전쟁이 글로벌 금융시장이 충격을 줄 것이라는 예상이다.

한편 이달 설문조사에서 월가가 체감하는 시장불안은 더욱 높아졌다. 펀드매니저들이 보유한 현금비중이 5.5%로 지난달(5.4%)보다 소폭 높아졌다. 이는 2013년 양적완화 중단 발표로 인한 ‘긴축 발작(taper tantrum)’ 이후 4.2~5.8% 수준으로 높아진 현금비중의 최상단에 해당된다. 펀드매니저들은 현금보유량이 증가한 이유로 향후 증시가 약세를 보일 것이라는 전망(42%)고 함께 저금리로 수익률이 하락하면서 현금을 보유하는 것이 낫다(22%)는 점을 들었다.

뉴욕=이심기 특파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