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몫 국장·자문관에 그쳐
드 롱구에마, 이번 달 이사회부터 AIIB 부총재 맡을 듯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이 12일 새로운 국장 채용을 발표하면서 우리나라는 AIIB 부총재 대신 국장급으로 만족하게 됐다.

홍기택(64) 전 KDB산업은행 회장은 지난 2월 AIIB 리스크담당 부총재(CRO)로 선임되며 AIIB 5명의 부총재 중 한 명으로 선임됐다.

한국이 국제금융기구 부총재를 맡는 것은 2003년 아시아개발은행(ADB) 이후 13년 만이어서 정부 안팎의 기대가 적지 않았다.

정부는 한국 출신 인사를 고위직에 앉히고자 홍 부총재의 선임을 위한 작업부터 공을 들였다.

한국은 AIIB에 37억 달러(약 4조1천92억원)가 넘는 출자금을 냈다.

한국의 지분율은 6월 말 기준 3.5%로 중국(26.06%), 인도(7.51%), 러시아(5.93%), 독일(4.15%) 다음으로 높았다.

출자금 규모가 고위직 선임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출자금 규모가 클수록 여러 회원국 사이에서도 제 목소리를 낼 수 있기 때문에 자국 출신 인사를 고위직으로 선임하는 일이 수월한 게 일반적이다.

2월 홍 부총재가 AIIB 고위직으로 선임되자 기재부는 "박근혜 대통령의 적극적인 지원과 범정부 차원의 노력이 결실을 맺은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AIIB 투자 결정의 핵심 직위를 한국인이 맡게 되면서 국내 기업이 아시아 인프라 사업에 진출하는 데에도 긍정적일 것이라는 기대감도 부풀었다.

그러나 한국이 부총재직 반사이익을 채 누리기도 전에 사달이 났다.

홍 부총재가 지난 6월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산업은행 회장 시절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채권단의 4조2천억원 지원 결정에 대해 "청와대·기획재정부·금융당국이 결정한 행위로, 산업은행은 들러리 역할만 했다"고 밝히면서다.

홍 부총재는 산업은행을 통해 해명자료를 내고 "지원규모 및 분담 방안 등은 관계기관 간 협의조정을 통해 이루어진 사항"이라고 부인했지만 파문은 잦아들지 않았다.

여기에 감사원도 산업은행 직무 태만의 책임자로 홍 부총재를 지목하면서 사태는 확산됐다.

홍 부총재가 국제금융기구 고위직을 계속해서 맡을 수 있겠느냐는 관측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던 것도 이 시기부터다.

논란 속에 열린 6월 25일 제1차 AIIB 연차총회에 홍 부총재는 불참했다.

이틀 뒤인 27일 그는 AIIB에 돌연 6개월 휴직계를 제출했다.

휴직 신청 절차를 마치고서 홍 부총재는 곧바로 AIIB 본부가 있는 중국을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형식상 휴직이었지만 자리를 비우는 기간도 짧지 않은 데다 바로 중국을 떴다는 점에서 홍 부총재가 휴직 후 사퇴하리라는 게 기정사실처럼 받아들여졌다.

AIIB는 홍 부총재의 휴직이 결정된 지 2주가 채 지나지 않은 7월 9일 재무담당 부총재(CFO)직을 신설하는 채용 공고를 냈다.

홍 부총재가 맡았던 CRO 자리도 국장급으로 강등하고 후임 공모 공고를 냈다.

그중 부총재 공모 절차는 형식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AIIB가 새 CFO로 ADB 부총재를 지낸 티에리 드 롱구에마(프랑스)를 선임한다고 밝힌 바 있기 때문이다.

드 롱구에마 부총재는 이번 달 이사회부터 부총재직을 정식으로 맡을 것으로 알려졌다.

AIIB는 공모절차를 낸 지 약 2개월 만인 12일 회계감사국장에 유재훈 현 한국예탁결제원 사장을, 국제자문단에 현오석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선임을 발표했다.

한국으로선 부총재직을 잃은 대신 국장급과 자문관 자리를 얻은 셈이다.

그러나 국장직은 부총재직만큼 높진 않은 데다 국제자문단 자리는 정식 이사회 멤버가 아니라는 점에서 우리나라의 목소리가 얼마나 반영이 될지는 의문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세종연합뉴스) 김수현 기자 porqu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