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명만 보면 참 좋은 곳이다. 풍요로운 땅에 맑은 계곡이 흐르는 마을 풍계리(豊溪里). 함경북도라면 오지라고 여기겠지만, 길주군(吉州郡)이라는 이름도 ‘살기 좋은 고을’이라는 뜻이다. 고구려와 발해를 거쳐 1107년 고려 영토에 편입된 직후 그렇게 불렀다니 옛날부터 땅 기운은 좋았던 모양이다.

길주남대천과 장흥천이 휘돌아 나가고 높은 산들이 주위를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만탑산(2205m)을 비롯해 기운봉(1874m), 학무산(1642m), 연두봉(1287m) 등 해발 1000m가 넘는 산이 즐비하다. 가문비나무, 잎갈나무 등 산림자원이 풍부해 목재 가공 공장이 많다. 길주 종이공장도 이곳에 있다. 만탑산 일대엔 몰리브덴과 활석, 흑연 등 지하자원이 많이 묻혀 있다. 농경지의 88%를 차지하는 밭에선 옥수수, 채소, 감자 등이 난다. 송이버섯 산지로도 유명하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 북한의 핵실험장으로 쓰이면서 만신창이가 됐다. 북한은 2006년 10월과 2009년 5월, 2013년 2월, 올 1월 등 네 차례 핵실험을 이곳에서 했다. 어제 또 역대 최대인 인공지진 5.0 규모의 강력한 핵실험을 감행했다. 만탑산 동쪽과 서쪽에 수평·수직 갱도를 뚫고 두꺼운 격벽과 달팽이관으로 곳곳을 막았지만 엄청난 위력의 핵폭발로 땅속이 너덜너덜해졌다.

주변이 높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데다 암반이 화강암으로 이뤄져 방사성 물질의 유출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북한은 판단한 것 같다. 보안을 위해 주민들을 다른 지역으로 보내고 출입을 철저히 통제하고 있지만, 주변은 이미 방사성 물질로 크게 오염되고 말았다. 이곳 출신 탈북자들은 주민 중 상당수가 암, 심장병, 감각기관 이상, 다리 마비 등의 증상을 겪고 있다고 전했다.

백두산 화산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풍계리는 백두산에서 110㎞나 떨어져 있지만 땅 밑 상황은 전혀 다르다. 백두산 지하 4개의 마그마층 가운데 1차 마그마층과 지하 핵실험장 거리는 불과 10㎞밖에 안 된다. 핵실험 이후 백두산의 크고 작은 지진이 스무 배나 늘고 화산가스 방출이 급증해 나무들이 말라죽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번 핵실험으로 200~300㎞ 밖의 중국 옌지(延吉)까지 지진파가 덮쳐 학생들이 운동장으로 대피했을 정도다.

아무리 좋은 땅이라도 주인을 잘못 만나면 이름값을 못하고 이처럼 참담한 운명을 맞는다. 그러고 보니 바로 2㎞ 곁에 악명 높은 화성 정치범수용소까지 있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