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곳 중 40여 곳만 남을 것" 소문에 업계 분위기 '흉흉'
업체대표 구속·자살…부도시 낸 돈 절반 받으면 다행


인천에 사는 회사원 김 모(52) 씨는 얼마 전 우편으로 한 통의 안내문을 받았다.

팔순 노모가 돌아가실 때를 대비해 8년간 월 2만원씩 꼬박꼬박 내온 상조업체가 부도로 문을 닫았다는 내용이었다.

해당 업체가 가입된 공제조합 측은 김 씨에게 이미 낸 돈 198만원 중 99만원만 받고 회원 자격을 포기하든지 다른 상조업체 8곳 중 한 곳을 선택해 갈아타라고 했다.

제대로 된 서비스를 받을지 불안을 느낀 김 씨는 결국 낸 돈의 절반을 돌려받고 해약했다.

김씨가 가입한 상조업체는 회원 수가 8만7천 명에 달하는 업계 15위권 이내의 중견업체였다.

하지만 올해 7월 초 갑자기 폐업했고 사장이 횡령·배임 혐의로 지난달 말 경찰 소환 조사를 앞두고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김 씨는 4일 "노모가 살아 계신데 보험처럼 여겼던 상조업체가 먼저 망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면서 "그동안 부은 돈이 아깝고 억울하지만 따질 데도 없다"고 말했다.

◇ 4년 새 100곳 넘게 문 닫아…업체대표 구속·자살도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2012년 5월 전국적으로 307개에 달했던 상조업체는 지난해 말 223개로 줄었다.

올해 상반기에도 17곳이 폐업하거나 등록 취소됐다.

올해 3월 기준 상조업체 회원 수는 총 419만명으로 지난해까지 이어졌던 증가세가 멈췄다.

이들이 상조업체에게 맡긴 돈은 4조원에 육박한다.

국내 상조업계는 회원 수가 5만명 이상인 23개 업체가 전체 가입자의 77%를 차지하는 구조다.

정부는 영세 상조업체가 난립해 소비자 피해가 커지자 올해 1월부터 강화한 할부거래법을 시행했다.

상조업체의 최소 자본금 요건을 3억원에서 15억원으로 올렸고 폐업한 상조업체의 회원을 넘겨받은 업체가 원래 업체의 해약 환급 의무를 지게 했다.

외부 회계법인의 감사를 의무화해 불법·부실업체를 걸러내는 장치도 강화했다.

문제는 개정 법률 시행 이전에 인수·합병된 상조업체가 부지기수라는 점이다.

이들 중 상당수 업체는 자신들이 인수한 회원이 해약을 요구하며 표준약관에 따라 총납부금의 85%를 돌려달라고 해도 "이전 업체에 낸 돈은 우리가 책임 못 진다"고 버텨 분쟁이 확산하고 있다.

울산에서 지난해 등록 취소된 한 상조업체는 1만2천여 명의 회원에게 해약 환급금 47억원을 지급하지 않아 대표가 구속기소 됐다.

환급금을 지급하라는 울산시의 시정명령도 이행하지 않은 업체대표는 1심 재판에서 징역 3년6월을 선고받았다.

이 업체는 가입자로부터 받은 회비 중 20%만 공제조합에 담보금으로 납입해 놓고 인터넷 홈페이지에는 50%를 예치했다고 허위광고를 했다.

◇ "진짜 위기는 이제부터"…작년 4분기 이후 신규업체 '0'
정부는 상조업체 자본금 요건을 3억원에서 15억원으로 진입 장벽을 높이면서 기존 업체들에는 3년 유예기간을 줬다.

업계에서는 기존 업체에도 강화된 자본금 요건이 적용되는 2019년 1월까지 현재의 200개 업체 중 절반이 훨씬 넘는 업체가 문을 닫을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서울의 한 상조업체 관계자는 "업체들의 줄폐업에 따른 고객 피해 문제는 이제 시작일 뿐"이라며 "대형업체 위주로 시장이 재편될 3년 유예기간이 지나면 40∼50개 업체만 남을 것이란 소문이 업계에 파다하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현재도 정상적으로 신규 회원이 계속 가입 중인 업체는 30곳이 안 된다"고 귀띔했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지난해 4분기 이후에는 새로 등록한 상조업체가 한 곳도 없다.

상조업체가 새 가입자를 모집하려면 회사가 영업사원에게 고객이 한 달에 내는 회비 2만∼3만원의 3배에 달하는 '선(先)수당'을 주는 등 영업비용이 필요한데 이를 감당할 여력이 있는 업체가 많지 않다는 것이다.

나머지 업체는 기존 회원들이 내는 월 회비와 장례를 치르는 회원들이 추가로 낸 비용으로 겨우 유지만 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상조서비스 가입자에게 장례 대신 웨딩이나 크루즈 여행을 권유하는 업체도 적지 않다.

결국, 재무 건전성이 양호한 일부 대형업체를 제외하고 경영이 어려워진 중소업체들이 계속 폐업하면 이미 낸 돈을 절반 이상 날리는 가입자 피해가 속출할 수밖에 없다.

수도권의 한 상조업체 관계자는 "상조업체 간 인수·합병이 비일비재해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가입 업체가 4∼5번씩 바뀌는 고객도 있다"면서 "국내 시장 규모를 고려하면 10여개 이상의 상조업체는 무리라는 게 업계의 일반적 시각"이라며 했다.

◇ 무심코 가입하면 돈 떼인다…"꼼꼼히 따져야"
상조업체 가입자가 낸 회비(선수금)는 공제조합, 은행예치, 은행지급 보증 등을 통해 보전된다.

부도가 났을 때 공제조합이 회원 선수금의 절반이나마 보장하는 상조업체는 60여 곳이다.

공제조합에 가입하지 않은 업체 중에는 은행예치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사실이 뒤늦게 확인되는 경우도 적지 않아 갑작스러운 업체 폐업이나 퇴출로 낸 돈의 절반도 되찾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전문가들은 상조업체를 고를 때 재무 건전성과 선수금 지급 여력 비율, 지급보증 체결기관 등을 확인하도록 조언했다.

공정위는 소비자 보호를 위해 매년 2차례 상조업체를 포함한 선불식 할부 거래 사업자에 대한 이런 정보를 홈페이지에 공개하고 있다.

강난숙 대전소비자단체협의회 상임대표는 "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당국에 등록된 업체인지 확인하고 법정 예치금 비율을 준수 여부와 재무 현황 등을 꼼꼼히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

강 대표는 "60∼70대 중에는 인터넷 활용에 익숙하지 않아 피해가 발생하는 경우가 있는데 계약서, 회원증서, 약관, 영수증을 반드시 보관해 분쟁 발생에 대비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소비자보호단체들은 폐업한 상조업체 회원의 경우 본인이 낸 회비 누계액을 선수금 보전기관에 확인해 차질 없이 피해 보상을 받도록 권고했다.

(전국종합연합뉴스) 신민재 장영은 김소연 기자 smj@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