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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자칼럼] 빨치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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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선태 논설위원 kst@hankyung.com
    [천자칼럼] 빨치산
    엊그제 귀순한 영국 주재 북한 대사관 소속 태영호 공사가 북한 빨치산 가문 인사로서는 첫 귀순자라고 해서 화제다. 북한에서 빨치산 가문이란 김일성과 소위 ‘항일 빨치산’ 운동을 함께한 인사의 후손을 말한다. 태영호 공사의 부인 오혜선이 북한군 총참모부 오금철 일가인데 오금철이 김일성의 빨치산 동료 오백룡의 아들이라는 것이다.

    빨치산은 프랑스어 ‘partisan’에서 비롯된 말이다. 러시아어 ‘partizan’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어느 쪽이든 당파, 동지를 뜻하는 프랑스어 ‘parti’를 뿌리로 하는 말이다. 비정규 군사조직으로 적의 배후에서 교통 통신 수단을 파괴하거나 무기와 물자를 탈취 또는 파괴하고 공격한다. 게릴라와 거의 같은 의미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은 빨치산 부대를 많이 활용했는데 특히 독일과의 전투에서 맹활약을 펼쳤다고 한다.

    한국에 소련 공산주의가 이식될 때 파르티잔이라는 용어도 함께 들어왔고 한국식 발음으로 빨치산이 됐다. 한국에서 빨치산 하면 1945년 해방 이후 6·25 전쟁을 거쳐 1955년까지 북한의 지령을 받아 남한 곳곳에서 활동했던 좌익 비정규군을 가리킨다. 1946년 10월 대구폭동, 1948년 제주 4·3사건, 1948년 10월 여순반란 사건 등을 거치면서 산악 빨치산이 형성됐다. 흔히 빨치산 하면 지리산을 떠올리는데 이는 여순반란 사건 주모자 중 김지회 등이 지리산을 중심으로 암약한 데서 비롯됐다. 남부군이라는 별칭도 가졌다.

    이들은 해방 당시의 협소한 세계관에 경도돼 지리산 자락에 피를 흘리며 죽어갔다. 차폐된 한반도의 식민지 경험 속에서 드넓은 세계관을 맛볼 여유도 없이 아까운 생명을 내던졌다.

    김일성의 항일 빨치산 운동이 날조라는 사실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김일성의 정체도 불분명하거니와 김일성이 조선의 독립을 위해 싸웠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만주의 동북항일연군이 빨치산 부대였던 것은 맞지만 이 부대는 중국의 공산주의 혁명 부대였을 뿐 조선의 독립과는 상관이 없다. 김일성의 유일한 업적이라는 보천보 전투 역시 전투라고 보기도 힘들다. 순사 5명이 주재하는 국경 마을의 파출소를 습격하고 마을을 약탈한 게 전부다. 두 살짜리 순사의 딸과 일본인 음식점 주인이 사망했을 뿐이다. 북한의 김일성이 지휘자였는지조차 불분명하다는 게 최근 연구 결과다. 북한 정권이 그 빨치산 일가의 탈북으로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역사의 아이러니다.

    김선태 논설위원 k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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