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호 칼럼] 대우조선 사외이사에겐 왜 책임 묻지 않나
대우조선해양 감사위원장이 중도 사임했다. 현직 교수다. 그는 2013년부터 이 회사 사외이사를 맡아 지난해까지 분식회계와 관련된 모든 안건에 찬성했다. 검찰 수사가 진행되면서 직무 수행에 한계를 느꼈을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 부담이 컸을 것이다. 어쨌든 그는 임기를 1년 남긴 채 부담을 훌훌 털고 대우조선을 떠났다.

이사회라는 것이 사전 논의와 조정 과정을 거쳐 회의 때는 표결이 아닌 만장일치로 안건을 통과시키는 것이 관례처럼 돼 있긴 하다. 그렇다고 이 회사 이사회와 감사위원회가 그렇게 운영돼 왔다고 볼 수는 없다. 결과가 말해준다. 드러난 분식회계 규모가 1조5000억원이다. 회사는 부실 감추기에 급급했고 사외이사들은 ‘거수기 역할’이나 하면서 6000만원이 넘는 고액의 보수를 챙겼다고 보는 게 비정상일까.

몸통은 어디 두고 깃털을 물고 늘어지느냐는 분들이 있겠다. 맞다. 정작 비난받아야 할 몸통은 정부와 정치권이다. 누구 말마따나 청와대 서별관에 모여 앉았던 핵심 관료들과 정치권이 주무른 결과가 대우조선 사태다.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대우조선 경영진도 책임의 당사자들이다. 그러면 이들에 대한 책임 추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고 사외이사들도 그냥 넘어가야 할까. 아니다. 그들이라도 제 역할을 했더라면 이 지경이 되진 않았을 테니 말이다.

애초 문제가 많은 사외이사들이다. 정부와 정치권이 뿌린 낙하산이 가히 공수부대 수준이다. 대우조선이 ‘국영기업’이 된 이후 선임된 사외이사 가운데 60%가 관료 또는 정치권 인사다. 현 정권에서는 낙하산이 더 늘어났다. 잿밥에만 관심 있는 사람들이다. 회사가 멀쩡할 리 없다. 정부와 회사가 요구하는 대로 손을 다 들어줬다.

모기업인 산은이라고 다르지 않다. 일부를 제외하곤 정치권 출신이거나 회장과 친분이 있는 인물들이다. 이사회 출석조차 않는 사외이사들이 수두룩하다. 산은에도 관심이 없는데 대우조선에 관심이 있을 턱이 없다.

공기업 사외이사란 다 그런 거라는 냉소도 있다. 그렇지 않다. ‘사외이사의 표상’으로 평가받는 남대우 씨는 가스공사 사외이사 당시 예산안을 무려 여덟 차례나 퇴짜를 놓은 적이 있다. 산업자원부 관료들이 찾아와 압력을 넣었지만 콧방귀도 뀌지 않았다. 대우조선과 산은에는 그처럼 소신을 갖고 일하는 사외이사가 없었을 뿐이다.

그래도 감사위원장은 스스로 물러났다니 다행이다. 뒤늦게나마 일말의 책임을 지는 모습으로 비춰지니 말이다. 나머지 사외이사들은 책임을 느끼고나 있을지.

대우조선과 산은에는 여전히 물러나지 않은 낙하산들이 있다. 뒤늦게 깨달아 끝까지 책임을 지려는 각오인지는 모르겠다. 글쎄다. 더 기가 막히는 건 버젓이 다른 공기업의 사외이사로 옮긴 사람들이다. 전직 국회의원은 올해 발을 더 넓혀 한국전력 사외이사까지 겸직하고 있다. 다른 정치권 출신들도 한전과 한국거래소, KT&G 사외이사로 자리를 옮겨 수천만 원의 보수를 꼬박꼬박 챙기고 있다. 교수 출신 사외이사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학교 강단을 지키고 있고.

이래 놓고 대우조선 사태에 대한 책임 추궁은 전직 사장 두 사람과 외부 감사인에게만 집중돼 있다. 사외이사들에게는 왜 책임을 묻지 않는가.

상법은 사외이사가 법령 또는 정관에 위반한 행위를 하거나 임무를 게을리한 경우 회사나 제3자에 대한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사례가 있다. 강원랜드는 감사원 감사 결과에 따라 회사에 손실을 입힌 사외이사들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 중이다. 법원은 1심 판결에서 이들에게 30억원 및 이자와 지연손해금을 회사에 지급하도록 했다. 어떤가.

공기업 사외이사가 어디 한두 명인가. 지방공기업 사외이사까지 합쳐보라. 부지기수다. 이들에게 사외이사 자리가 얼마나 무서운 자리인지를 새삼 깨우쳐 줘야 한다. 공짜 점심은 없다.

그리고 공기업 사외이사들 가운데 스스로 생각해도 깜냥이 되지 않는 분들은 이참에 서둘러 사표를 내는 게 낫다. 그게 나라와 국민에게 조금이라도 빚을 갚는 길일 테니 말이다.

김정호 수석논설위원 jh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