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의 맥] 경쟁법 준수, 기업 문화로 자리잡아야
세계 경제 통합이 가속화하면서 기업 활동의 국경이 사라지고 있다. 해외에서 이뤄진 경쟁법 위반 행위라 하더라도 국내 시장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게 됐다. 이들을 규제해야 할 필요성도 커지고 있다. 특히 시장 경쟁을 촉진하고 국내 소비자 후생을 증진해야 하는 각국 경쟁당국은 경쟁법의 역외 적용을 적극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실제 최근 5년간 우리 기업이 해외 경쟁당국으로부터 부과받은 담합 과징금액이 1조원에 달하고 일부 임직원은 외국에서 형사고발당했다.

그동안 미국 유럽연합(EU) 등 일부 선진국 경쟁당국에서 적극적으로 경쟁법을 집행했다. 최근엔 경쟁법이 세계적으로 확산됨에 따라 이런 추세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아세안은 15개국 중 캄보디아를 제외한 9개 국가가 경쟁법 도입을 완료했다. 또 2001년 14개 경쟁당국으로 출범한 경쟁당국 간 협력 네트워크인 국제경쟁네트워크(ICN)도 15년 만에 133개 경쟁당국이 회원으로 참여하는 거대한 조직으로 성장했다.

최근 개발도상국을 중심으로 경쟁법 도입 국가 수가 급격히 증가하는 동시에 법 집행이 미미하던 신흥국의 경쟁법 집행도 강화되고 있다. 브라질은 2014~2015년 우리 기업이 관여한 브라운관(CRT) 담합 등을 포함해 총 19억달러라는 사상 최대 담합 과징금을 부과했다. 중국도 지난해 글로벌 기업인 퀄컴에 천문학적인 벌금을 부과, 세계의 이목을 끈 바 있다.

경쟁법 도입국 증가와 집행 강화는 합리적이고 공정한 경쟁문화가 세계적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긍정적인 신호로 볼 수 있다. 하지만 해외에서 사업활동을 하는 기업에 단기적인 부담을 초래하기도 한다. 각국의 경제발전 단계와 법체계 차이 때문에 국가별로 경쟁법 집행의 편차가 크다는 점도 세계 시장을 무대로 사업활동을 하는 기업들에 잠재적인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다.

경쟁법의 국제적 확산은 기업들의 법 위반 행위가 숨을 곳이 없어졌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전 세계 경쟁당국은 국경을 초월해 발생하는 경쟁법 위반 사건을 효과적으로 적발제재하기 위해 정보를 교환하고 조사를 공동으로 개시하는 등 국제 공조를 활발히 하고 있다. 기업들이 경쟁법 위반에 더욱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물론 경쟁법 집행 경험이 많지 않은 국가일수록 선례가 축적되지 않아 사건 처리 과정이 불투명하고 외국 기업을 차별할 가능성이 크다. 현지에 진출한 기업들의 어려움도 크다. 공정위도 이 같은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하기 위해 여러 가지 노력을 하고 있다. 자유무역협정(FTA) 경쟁 챕터에 기업의 방어권 보장, 외국 기업 비차별, 법 집행의 투명성 확보 등을 핵심 요소로 반영하고 있다. 우리 기업의 진출이 활발한 신흥국에 경쟁법 관련 자문을 제공하는 등 다양한 지원 활동을 하고 있다. 미국 EU 중국 등 주재관이 파견된 국가에서는 법 위반 예방활동을 활발히 해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고 있다. 앞으로는 주재관을 신흥국으로 확대해 현지 진출 기업인들에 대한 경쟁법 교육을 보다 강화할 필요도 있다.

경쟁법 리스크에 대비해야 한다. 우리 기업의 국제적 위상이 높아질수록 우리 기업의 법 위반 행위에 대한 경쟁 사업자나 해외 경쟁당국의 감시의 눈은 더욱 날카로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기업 내 경쟁문화 확산이다. 최고경영자부터 최일선 영업사원까지 현지 법률을 잘 숙지해야 한다. 경쟁법 준수 의식이 기업문화와 관행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 지금까지 국제무대에서 양적 성장을 거듭해 온 우리 기업들이 이제는 준법 경영 기업으로서의 국제적 이미지까지 구축해 나가길 기대해본다.

정재찬 < 공정거래위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