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영훈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이 9일 정부세종청사에서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 시행령안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성영훈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이 9일 정부세종청사에서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 시행령안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앞으로 공직자 등이 직무와 관련 있는 사람으로부터 3만원이 넘는 식사를 대접받으면 과태료를 물게 된다. 또 선물 금액은 5만원 이내로, 경조사비 상한액은 10만원 이내로 제한된다.

국민권익위원회는 9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일명 김영란법) 시행령을 13일자로 입법예고했다. 권익위는 다음달 22일까지인 입법예고 기간에 다양한 의견을 수렴한 뒤 8월까지 시행령 제정을 끝낼 계획이다.

지난해 3월 김영란법이 국회를 통과한 지 1년2개월 만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내수 위축을 우려해 국회에 김영란법을 다시 검토해 달라는 뜻을 밝혔음에도 김영란법은 오는 9월28일 예정대로 시행될 전망이다. 업계에서는 소비 위축 등을 불러올 가능성이 크다고 강하게 반발하고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김영란법, 대통령 '내수 걱정'에도 그대로 간다
시행령 제정안에 따르면 공직자, 언론인, 사립학교·유치원 임직원, 사학재단 이사진 등이 직무 관련인으로부터 3만원 이상의 식사를 대접받으면 과태료를 내야 한다. 현행 공무원 행동 강령에서 규정하고 있는 3만원의 상한액을 유지한 것이다.

공무원 등이 받을 수 있는 선물 가격은 5만원으로 정했다. 기존 공무원 행동강령에서는 직무관련자에게 원천적으로 선물을 줄 수 없었지만, 김영란법에서는 사교·의례 목적으로는 5만원 범위에서 선물을 줄 수 있다.

경조사 비용은 현행 5만원에서 10만원으로 올렸다. 경조사 목적으로 화환을 보내는 경우 10만원 상한을 적용받는다.

국민권익위원회는 김영란법에 반발하는 한우·굴비 등 농축수산업이나 화훼 관련 업종을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면 형평성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보고 특정 업종을 배제하지 않기로 했다.

시행령 제정안은 공직자 등의 외부강연 사례금에 대한 상한액도 설정했다. 공직자의 외부강연 사례금 상한액은 장관급은 원고료 등을 포함해 시간당 50만원, 차관급은 40만원, 4급 이상은 30만원, 5급 이하는 20만원으로 정했다. 공기업을 포함한 공직 유관 단체 기관장의 외부강연 사례금 상한액은 시간당 40만원, 임원은 30만원, 그 외 직원은 20만원이다.

강의시간이 한 시간을 초과하면 추가 사례금은 상한액의 2분의 1까지 받을 수 있다. 장관급이 외부강연을 할 때 받을 수 있는 사례금은 최대 75만원이 된다. 언론인이나 사립학교 교직원은 민간인이라는 점을 감안해 직급별 구분 없이 시간당 100만원까지 사례금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공직자와 달리 강의시간이 한 시간 초과될 때마다 100만원씩 추가된다. 공공기관의 위원 등으로 참여하면서 공무와 관련한 강연을 할 때는 1회 100만원으로 사례금을 제한했다.

부정청탁을 받은 공직자 등에 대한 조치로 법률에서 규정한 ‘직무참여 일시정지’와 ‘전보’ 외에도 ‘직무 공동수행자 지정’ ‘사무분장 변경’ 등을 추가로 포함했다. 제정안은 또 공직자 등이 부정청탁을 받거나 금품 등을 수수한 경우 신고 방법, 위원회와 조사기관의 신고처리 절차 등을 규정했다.

권익위는 오는 13일 시행령을 입법예고한 뒤 공청회 등을 통해 각계각층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확정할 예정이다. 성영훈 국민권익위원장은 9일 정부세종청사에서 브리핑을 하고 “남은 기간 시행령 제정, 국민과 공직자 등에 대한 홍보와 교육 등 필요한 후속작업에 만전을 기하겠다”며 “부정청탁금지법 시행을 통해 부정청탁과 금품수수 관행이 개선되고 나아가 국가의 청렴도가 획기적으로 제고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오는 9월28일 시행되는 김영란법은 공무원, 사립학교 교직원, 언론인 등이 제3자로부터 고액 금품(1회 100만원, 연간 300만원 초과)을 받으면 직무 관련성을 따지지 않고 형사처벌하도록 하고 있다. 공직자 등뿐만 아니라 금품을 제공한 국민도 동일하게 형사처벌이나 과태료를 부과받도록 하고 있다. 권익위는 그동안 김영란법 예외대상 가액범위 등을 정하는 시행령을 마련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달 26일 언론사 편집·보도국장 오찬간담회에서 “김영란법이 내수까지 위축시킬까 걱정스럽다”며 “국회 차원에서 다시 검토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영란법은 위헌소송이 제기돼 헌법재판소의 심리를 받고 있다. 박한철 헌법재판소장은 “김영란법 시행 전에 선고하겠다”고 밝혔다.

김영란법은 공직자로 한정됐던 법 적용 대상이 사립학교 교직원과 언론사 종사자로 확대돼 민간 영역을 침해하고 언론 자율성을 저해하는 등 과잉금지 원칙에 위배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또 공직자가 배우자의 금품 수수 사실을 인지했을 때 배우자를 신고하도록 한 일종의 불고지죄도 위헌 소지가 크다는 의견이 많다.

정태웅 기자 redae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