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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기관리와 전략, 선거에서 기업은 무엇을 배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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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총선 결과에 대한 칼럼을 썼다. ‘리더는 마지막에 먹는다’라는 제목이었다. 위기관리, 전략, 리더십 면에서 총선을 평가해 본 것이다. 칼럼을 본 지인들의 반응은 “왜 정치부에서 써야 할 칼럼을 썼냐, 정치부로 와라”, “3당을 다 비판해 놓으면 어떻게 하냐” 등이었다.

    필력 부족으로 취지를 충분히 전달하지 못한 것 같아 온라인을 통해 내용을 설명해볼까 하고 노트북을 열었다. 굳이 이유를 달면 위기관리가 가장 필요한 업종 가운데 하나가 유통 식품 등 생활경제부가 취재하고 있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위기는 대부분 비슷한 논리구조를 갖고 있다. 기업들에도 시사하는 바가 있지 않을까.

    ◆선거와 마케팅

    1983년 스티브 잡스가 매킨토시 개발을 마치고 이 광고를 정치컨설턴트에게 맡긴 것은 유명한 얘기다. 스티브잡스 이들을 택한 것은 매킨토시 치러야 할 전쟁의 성격 때문이었다. 당시 시장의 지배자는 IBM이었다. 벤처기업과 다름없던 애플은 이 지배자와 맞서야 했다. 잡스는 이 전쟁이 애플의 생사를 가를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리고 이런 생사를 가를 전투를 가장 많이 해 본 사람들을 찾았다. 그의 결론은 정치컨설턴트였다. 이들이 치르는 전쟁은 선거다. 선거는 점유율에 따라 권력을 나눠갖지 않는다. 51 대 49일지라도 승자가 모든 것을 갖는 게임이기 때문이다.

    이 컨설턴트들이 만들어낸 광고가 유명한 ‘1984’다. “(1984년)1월24일 애플이 매킨토시를 출시한다. 1984년은 소설 ‘1984’와 다를 것이다”라는 메시지로 끝난다. 획일화된 IBM의 제국을 무너뜨리고 소비자들에게 자유를 돌려줄 전사로 매킨토시를 포지셔닝했다. 그리고 20세기 가장 유명한 광고 가운데 하나가 됐다.

    이후 컨설턴트들은 정치와 경제, 선거와 마케팅의 영역을 수시로 넘나들었다. 컨설턴트들은 평소에는 기업을 지원하며 수익을 올렸다. 선거 때는 정치인을 도와 권력의 향배를 결정하는 역할을 했다.

    이는 아마도 선거와 마케팅의 공통점 때문이었을 것이다. 선거 마케팅 모두 사람의 마음을 얻어야 성공할 수 있다. 선거의 득표율은 마케팅에서의 점유율과 비슷한 논리구조를 갖고 있다. ‘전략은 곧 경쟁’이라고 한다. 상대방의 약점을 파고들어야 판을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끌고 나갈 수 있다는 점에서도 선거와 마케팅은 유사점을 갖고 있다. 또 기업과 정당·정치인의 위기관리 원칙은 큰 차이가 없는 것도 기업인들이 정치컨설턴트들을 쳐다보게 한 원인인 듯하다. 마지막으로 여론의 움직임에 동물적으로 반응하는 컨설턴트들의 감각도 마케팅에는 중요한 도구가 될 것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이는 소비자의 태도변화, 그 밑에 깔려 있는 시대적 정서나 트렌드 변화를 파악하는 능력을 말한다.

    정치와 경제를 넘나든 대표적 인물로는 빌 클린턴, 힐러리 클린턴의 선거 참모였던 마크 펜을 들 수 있다. 국내에는 마이크로트렌드의 저자로 알려져 있다. 그는 클린턴을 도와 선거에서 승리한 후 홍보회사인 버슨마스텔러 사장을 지내고 마이크로소프트의 마케팅 담당 부사장으로 가 화제가 되기도 했다.

    국내에서도 정치컨설턴트들은 최근 기업으로부터 러브콜을 받기 시작했다. 이 얘기는 시간이 좀 흐른뒤 자세히 할 기회가 있을 듯하다.



    ◆선거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그날 썼던 칼럼을 이곳으로 옮겨왔다. 지면의 제약때문에 제대로 쓰지 못한 내용도 약간 보충했다.

    2011년 4월12일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이 긴박하게 움직였다. 신라호텔 한복사건이 터진 직후였다. 호텔 뷔페에 입장하던 한복 전문가를 직원이 제지한 게 발단이었다. 분노한 한복 전문가는 트위터에 사건을 공개했다. 여론은 들끓었다. 호텔 측이 급히 사과했지만 진정되지 않았다. 이튿날 미래전략실로 전화 한 통이 걸려 왔다. “제가 직접 해결하겠습니다.” 이부진 신라호텔 사장이었다. 그는 곧장 피해자를 찾아가 사과했다. 한복 전문가는 만남 직후 트위터에 글을 올렸다. “개인적으로 신라호텔을 용서했다.” 여론은 순식간에 잠잠해졌다.

    4·13총선 개표결과를 보던 중 문득 한복 사건을 떠올렸다. 위기관리 측면에서 새누리당이 보여준 모습은 이 사건과 정반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은 위기관리의 모든 기본원칙을 저버림으로써 자멸했다고 할 만한다. 우선 “피해자를 관리하라”는 첫 번째 명제를 거부했다. 공천파동의 첫 번째 피해자는 두말할 것 없이 국민, 특히 여당 지지자들이었다. 말로는 경제회복을 외치며, 추악한 정파싸움을 벌이는 여당을 보며 국민들은 분노했다. 지지자의 마음은 멀어져갔고, 피해자들은 표로써 심판했다. ‘피해자 관리’라는 원칙을 무시해 위기관리에 실패한 사례로는 땅콩회항 사태를 들 수 있다. 사건 초기, 대한항공은 피해자라 할 수 있는 사무장을 죄인으로 몰아갔고, 또 다른 피해자인 승객에게는 성의없는 사죄만 했을 뿐이다. 여론은 대부분 피해자의 편에 있다는 것을 간과한 결과였다.

    데블스 애드버킷(악마의 변호인)도 없었다. 이들은 반대편에 서서 정책을 반박하는 과정을 통해 검증을 해주는 시스템이다. 기업에서는 신상품 개발이나 전략수립을 할 때 문제점만을 지적하는 별도의 팀을 둔다. 이를 레드팀이라 부르는데 데블스 애드버킷의 기업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정치에서는 미국 케네디 대통령이 이를 활용했다. 그는 쿠바 미사일 위기가 발생하자 정부 관료들로 위기를 관리할 회의를 구성했다. 그리고 자신의 동생을 자신의 의견을 검증하는 레드팀으로 활용했다.

    하지만 새누리당은 이 역할을 할 사람이 없었다. 유승민 전 대표, 진영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다른 목소리를 낸다는 이유로 사실상 당에서 쫓겨났다. 이들을 내쫓음으로써 다른 목소리를 용납하지 않는 것 자체가 위기관리시스템의 한축을 스스로 파괴한 행위에 해당한다. ‘No라고 말할 수 없는 조직문화’가 가져온 수많은 위기사례를 새누리당은 망각한 셈이다.

    묘한 일은 한때 여권에 몸담았다 자의 혹은 타의로 야당으로 가거나 무소속으로 간 거물들이 모두 국회에 입성하는 데 성공했다는 점이다. 유승민 전 대표, 진영 전 장관,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뿐 아니라 이상돈 국민의당 선거대책위원장,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박근혜 대통령과 함께했던 사람들이다.

    위기관리 책임자가 누구냐는 단순한 질문에도 여당은 답하지 못했다. 당연히 기업에서는 CEO이며, 당에서는 대표다. 이부진 사장은 위기관리 최고책임자의 역할을 스스로 다하며 상황을 수습했다. 대한항공이 땅콩회항이란 위기상황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이유는 최고책임자인 오너들이 그 책임을 회피했기 때문이다. 이번 선거에서 여당 대표는 옥쇄를 가지고 사라졌다. 또 다른 책임자인 공천관리위원장은 대표를 향해 연일 비난을 퍼부으며 지지층을 이탈시키는 이적행위를 서슴지 않았다.

    또 여론이 급속하게 변하고 있을 때 이를 무시했으며, 내부의 시각이 아닌 외부의 시각으로 봐야 하는 ‘인앤아웃 원칙’ 등 수많은 기본을 망각했다.

    야당으로 가보자. 이들도 기업의 전략가들에게 많은 인사이트를 줬다. 국민의당은 “적의 방식이 아닌 나의 방식으로 싸워야 한다”는 교훈을 심어줬다. 안철수 대표는 과거 청춘들과의 공감이라는 독특한 방식으로 정치권에 진입했다. 그것도 한번에 대통령후보 반열에 올라섰다. 이후 그는 나락으로 떨어졌다. 원인은 대통령 후보 단일화를 위한 사퇴, 야당 입당 등이었다. 기존 정치권이 보여준 행태를 그대로 따라했다. 그의 신선함은 사라졌다. 지지율은 추락했다. 하지만 이번 선거에서는 달랐다. 많은 논란이 있지만 그는 3당 대표가 되며 나락을 빠져나왔다. 자신의 방식으로 정치를 한 그를 국민들은 다시 밀어올렸다.

    한 선거 전문가는 이번 선거에 대해 “국민들이 여당을 심판하고, 더불어민주당 지도부를 탄핵했다”고 평했다. 이는 전국구 득표에서 더민주가 국민의당에 밀린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변곡점이 된 시기는 아마도 비례대표 파동이었을 것이다. 김종인 대표는 2번 순위를 받았다. 셀프공천 논란 후 지지율은 떨어졌다.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성과를 내는 조직 가운데 하나인 미국 해병대에는 원칙이 있다. 밥을 먹을 때 항상 하급자부터 먹는다. 공급이 끊기더라도 하급자는 먹이겠다는 것이다. 조직이 자신을 보호해 줄 것이라는 확신이 있는 하급자는 조직을 위해 모든 것을 다한다. 그 하급자들은 자신의 얼굴이 해변의 바위에 새겨질 것을 알면서도 탱크가 지나갈 수 있도록 엎드리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고 한다. 김 대표는 아마도 이 원칙을 알지 못한 듯하다. “리더는 마지막에 먹는다.”



    ◆남의 집에 불을 붙여라

    선거가 끝난 후 한참 지나 깨달은 것이지만 이번 선거는 특이했다. 자신이 잘하는 것보다 상대방이 잘못하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이라는 것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마치 약속이나 한 듯 상대방을 위한 선거운동을 했다.

    더불어민주당 선거운동의 일등공신은 새누리당이었다. 자체 분열이 지지자의 마음을 떠나게 했다. 여기에 국민의당을 찍으라는 조롱은 유권자들에게 반감을 불러일으켰다. 공천 파동을 뒤늦게 깨닫고 사죄를 하겠다고 절을 하고 돌아다니는 모습은 유권자들에게 더 큰 실망을 불러일으켰다. 오만에 대한 경계심리는 유권자들을 전략적 투표의 길로 이끌었다. “마음에 들지 않지만 후보는 비교적 경쟁력 있는 더불어민주당을 찍고, 정당은 기존 정당보다 그래도 신선한 국민의당을 찍자”는 분위기로 흘러간 것.

    국민의당 선거운동은 더불어민주당의 몫이었다. 문재인 전 대표가 광주를 방문할지 말지 등의 논란은 호남유권자의 등을 돌리게 했다. 가뜩이나 호남 소외론 때문에 서운해하던 지역정서를 더욱 악화시켰다. 김종인 대표가 국보위에 참가했던 경력은 아무래도 호남이 수용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또 DJ의 적자들을 줄줄이 떠나게 만든 더민주 지도부를 호남정서는 받아들이기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국민의당을 보며 수권능력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하지만 여당의 분열, 지리멸렬한 더민주 덕분에 3당의 자리를 차지하며 캐스팅보트를 쥐게 됐다. 정치에서 자주 쓰이는 격언 하나가 생각난다. “내 집에 불이 나면 불을 끄기보다 남의 집에 불을 붙여라.”

    김용준 기자 juny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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