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 정부의 경제 실정 탓에 ‘남미의 병자’로 불리던 아르헨티나가 글로벌 국채 발행시장에서 ‘대박’을 냈다. 18일(현지시간) 아르헨티나 정부가 발행한 달러화 표시 국채 입찰에 예정 물량 150억달러(약 17조원)보다 네 배 이상 많은 700억달러(약 79조원)가량의 글로벌 투자 자금이 몰린 것이다. 시장에서는 지난해 12월 취임한 중도우파 성향의 마우리시오 마크리 대통령이 과거 12년간의 포퓰리즘 시대를 끝내고 발빠르게 친(親)시장 정책을 편 데 대한 투자자들의 신뢰 표시라고 평가했다.
아르헨티나, 국채 발행 '대박'…마크리의 경제개혁 통했다
○‘마크리표 경제 개혁’ 신뢰받다

아르헨티나 정부가 발행한 달러화 표시 국채는 3·5·10·30년 만기 채권이다. 가장 인기가 높은 10년 만기 국채의 발행 금리는 연 7.50~7.625% 수준에서 결정될 전망이다.

아르헨티나 재무부 관계자는 “최종 입찰 참여 규모와 금리는 19일이 돼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디폴트(국가 부도)에서 막 벗어난 국가의 국채 발행이 이 정도로 환대받은 적이 없다”고 평가했다. “2014년 4년 만에 국제 자본시장에 복귀한 그리스의 국채 발행 규모도 당시 30억유로(약 4조원)에 그쳤다”고 덧붙였다. 아르헨티나는 15년 만에 글로벌 국채 발행시장에 복귀하면서 ‘홈런’을 친 셈이다.

아르헨티나의 성공적인 국채 발행 요인으로는 세계적 저금리 시대에 연 6~8%에 이르는 높은 금리를 제시한 것을 들 수 있다. 여기에 시장 전문가들은 취임 후 넉 달 동안 쉼 없이 진행된 ‘마크리표(標) 경제개혁’을 흥행 요인으로 보탰다.

앤서니 시몬드 애버딘자산운용 투자분석가는 “아르헨티나 신임 정부는 최고의 경제정책팀을 가진 신흥국 중 하나”라며 “경제를 완전히 변모시킬 잠재력이 크다”고 평가했다.

작년 12월10일 취임한 마크리 대통령은 나흘 만인 14일 농축산품 수출관세를 없애는 법령에 서명했다. 콩과 소고기, 옥수수, 밀 등에 부과하던 15~35%의 수출세를 없앴다. 그 덕분에 수출을 꺼려 창고에 곡물을 쌓아두기만 했던 농부들은 시장 공급량을 늘리기 시작했다. 농축산물은 아르헨티나 전체 수출의 절반가량을 차지하고 있어 외화 벌이에 상당한 도움이 될 전망이다.

마크리 대통령은 이틀 뒤인 16일엔 환율 통제를 풀었다. 이전 정부에서 달러당 9.8페소로 인위적으로 높게 유지한 페소화 가치를 한 번에 30% 이상 떨어뜨렸다. 수출 경쟁력을 높여 외환보유액 부족 문제를 해결하려고 단행한 과감한 조치였다. 공공부문도 개혁했다. 지난해 12월 이후 정부·공공기관에서 해고된 사람은 1만1000명에 달한다. 컨설팅업체 KPMG는 “아르헨티나 공공부문 고용의 5~7%는 출근도 하지 않고 돈만 타는 사람”이라며 “이렇게 허비되는 돈이 연간 200억페소(약 1조6000억원)”라고 했다.

지난 2월엔 엘리엇매니지먼트 등 글로벌 헤지펀드와 국가 채무 협상을 타결지어 국제 자본시장 복귀의 걸림돌을 없앴다.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아르헨티나 경제성장률이 올해 -0.5%로 다소 부진하겠지만 신속한 경제 개혁 덕분에 내년엔 3.5%로 뛰어오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지난 15일 아르헨티나 국가신용등급을 Caa1에서 B3로 상향 조정했다. 여전히 투자부적격(정크) 등급이지만 등급 상향 소식에 이날 페소화 가치는 2% 넘게 올랐다.

○정권 지지율 72%

1930년대까지 세계 5대 경제대국이던 아르헨티나는 이후 오랫동안 ‘라틴아메리카의 환자’라는 불명예를 안았다. 도를 넘은 선심성 포퓰리즘(대중인기영합주의) 정책 때문이었다. 1946~1955년, 1973~1974년 집권한 후안 도밍고 페론 대통령에 이어 2003년부터 12년 동안 집권한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대통령과 남편인 네스토르 키르치네르 대통령의 포퓰리즘이 아르헨티나를 망가뜨렸다. 페르난데스 전 대통령은 빈곤층 복지정책을 적극 펼치며 집권 초기엔 상당한 인기를 누렸지만 방만한 복지 지출로 아르헨티나 재정을 파탄냈다.

마크리 정부는 올해 물가상승률이 20~25%에 머물 것으로 예상한다. 전기와 수도, 가스, 교통에 지급되는 보조금을 삭감하면서다.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버스와 기차 요금은 지난 8일부터 두 배씩 올랐다. 하지만 물가상승률은 2017년 17%로 떨어진 뒤 계속 낮아질 전망이다. 인기 없는 정책을 펴는데도 마크리 정부에 대한 지지율은 지난 3월 72%를 기록했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