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주의·중상주의적 편협적 시각 표출…전후질서 기본전제 부정"
전략국제문제연구소, 18일 한미동맹 세미나…韓외교부 차관보 참석


미국 공화당의 선두 주자인 도널드 트럼프가 지속적으로 '한국 안보 무임승차론'을 제기하고 핵무장을 용인하는 취지의 발언을 한 데 대해 미국 워싱턴 싱크탱크에 포진한 한반도 전문가들이 반격에 나서고 있다.

한·미동맹의 가치와 역할에 대한 분명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 미국 내 유권자들을 겨냥해 대선 이슈를 만들고 시대착오적인 고립주의적 시각을 표출함으로써 동맹의 유지와 발전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경고와 우려가 커지고 있다.

우정엽 아산정책연구원 워싱턴 사무소장은 12일 미국 외교전문지인 디플로매트지에 '미국은 아시아를 떠날 여유가 없다'는 제목의 기고문을 내고 "트럼프가 미국을 강하게 만들겠다고 하지만, 동북아에서 한국과 일본과의 동맹 관계를 파기하면 미국은 오히려 약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의 전문가가 현지 언론 매체를 통해 트럼프의 주장을 공개로 반박한 것은 처음이다.

우 소장은 "아시아에서 미국의 리더십을 포기하는 것은 결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 수 없다"며 "특히 트럼프는 한국에 더 많은 부담을 요구하고 있지만, 이미 미국은 한국과의 관계에서 더 많은 이득을 얻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은 국내총생산(GDP)의 2.7%(약 40조 원)를 투입해 미국에 직접적 핵위협을 공언하는 북한을 억지하고 있으며 주한미군 주둔비용의 55%를 부담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우 소장은 "미국이 (동맹 없이) 혼자서 가는 것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 수 없으며 미국을 외롭게 하고 지난 세기를 그리워하게 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수석 부차관보 출신의 에번스 리비어 브루킹스연구소 연구원은 이날 연합뉴스에 "트럼프의 발언은 잘못된 정보를 줄 뿐만 아니라 무책임하다"며 "한·미동맹이 미국의 안보이익과 역내 평화·안정의 유지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리비어 연구원은 "트럼프는 한·미동맹이 어떻게 운용되는지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것으로 보인다"며 "한·미동맹은 한국의 이익일 뿐만 아니라 역내 평화와 안정에 사활적 이해를 지닌 미국에도 큰 이익이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캠프의 참모들은 트럼프에게 동맹이 종료될 경우 한반도의 긴장이 얼마나 가파르게 고조되고 북한이 남한을 공격할 가능성이 얼마나 커질 수 있는지를 설명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로버트 매닝 애틀랜틱카운슬 선임연구원은 "외교정책에 대한 트럼프의 시각은 전반적으로 전후 질서의 기본전제들을 훼손하고 있다"며 "한·미동맹에 대한 트럼프의 언급은 매우 무지하고 위험스럽다"고 지적했다.

매닝 연구원은 "트럼프는 한국이 미국과 방위비를 어떻게 분담하고 있고 아프가니스탄과 같은 분쟁지역에서 어떻게 미국과 협력하고 있는지를 알지 못한다"며 "한국과 일본이 자위 차원에서 핵무기를 가져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극도로 정세를 불안정하게 만든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트럼프는 모든 무역협정을 비판하고 재협상한다고 주장한다"며 "트럼프의 주장대로 라면 국제 무역시스템은 파괴되고 미국 근로자와 소비자는 큰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말했다.

더글라스 팔 카네기국제평화연구원 부회장은 "트럼프는 국제관계를 거래적 관계(transactional approach)로 접근하려는 것으로 보인다"며 "내가 당신의 국방을 위해 이것을 한다면 당신은 그 대가를 지급하라는 식"이라고 비판했다.

팔 부회장은 "이것은 1976년 지미 카터 민주당 대선후보가 인권문제를 이유로 공약했던 주한미군 철수문제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며 "트럼프식 접근은 한·미 간의 공통가치와 공동번영, 국제협력을 저해한다"고 지적했다.

리처드 부시 브루킹스연구소 동북아담당 선임연구원은 "나는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지 못할 것이라고 보기 때문에 그의 고립주의적이고 중상주의적인 시각이 어떻게 미국의 정책으로 귀결될 것인지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부시 선임연구원은 "트럼프는 동맹이슈를 제기함으로써 편협하고 오도된 한·미동맹 비용분담 논의를 야기하고 동맹의 가치에 대한 심각한 논쟁을 촉발했다"고 비판하고 "동맹이 미국의 안보에 어떻게 기여하고 있는가를 이해하는 힐러리 클린턴과는 너무 다르다"고 비판했다.

의회 전문위원 출신인 데니스 핼핀 존스홉킨스대학 방문연구원도 12일(현지시간) 북한 전문매체인 NK 뉴스에 기고문을 올리고 "미국의 방어선 밖에 놓여있고 미국의 핵우산을 제공받지 않으며 주한미군이 주둔하지 않는 한반도는 북한의 김정은이 간직한 꿈"이라고 비판했다.

핼핀 연구원은 그러면서 1950년 1월 딘 애치슨 국무장관이 극동방위선을 발표하면서 한국을 제외한 것이 결과적으로 북한의 오판을 불러 한국전쟁의 발발원인이 된 사실을 거론하면서 트럼프식 주장이 가져올 동맹체제의 유지에 미칠 위험성을 경고했다.

핼핀 연구원은 "지난 70년간 유지돼온 동맹체제와 단절하겠다는 트럼프의 주장은 북한이 가장 환영하는 것"이라며 "트럼프는 1950년대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잠재워놓았던 고립주의의 망령을 다시 끄집어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앞서 캐서린 힉스와 마이클 그린, 헤더 콘리 등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동북아담당 연구원 3명은 지난 8일 외교전문지인 포린 폴리시(FP)에 공동 기고문을 내고, 트럼프의 안보 무임승차론에 대해 "주한미군의 가치를 모르고 하는 소리"라며 "주한미군의 가치는 비용을 능가한다"고 비판했다.

이런 가운데 미국 CSIS는 한국국제교류재단과 함께 오는 18일 워싱턴 D.C.에서 전·현직 관리들과 한반도 전문가들이 참석한 가운데 '도전에 직면한 한미동맹: 그 강인함'을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한다.

빅터 차 한국석좌가 마이클 그린 일본석좌와 함께 주최하는 세미나에는 한국 외교부의 김형진 차관보가 참석할 예정이어서 트럼프 발언으로 촉발된 동맹이슈에 대한 우리 정부의 입장을 정확히 전달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연합뉴스) 노효동 특파원 rhd@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