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슬란드 총리 낙마…러시아·중국은 모르쇠·일축
아르헨 마크리 대통령·영국 캐머런 총리는 정치인생 위기

사상 최대의 조세회피처 자료 '파나마 페이퍼스'가 폭로된 후 파장은 나라마다 천차만별이다.

역외 재산을 신고하지 않아 거센 비난을 받고 총리가 사임한 나라가 있는가 하면 모르쇠로 일관하거나 언론 통제에 나선 곳도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파나마 페이퍼스가 공개된 지 닷새째인 8일(현지시간) 주요 국가들의 상황과 추이를 정리했다.

◇ 러시아 - 푸틴 대통령, 연루 의혹 일축
세르게이 롤두긴은 파나마의 로펌 '모색 폰세카'를 활용해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비밀 페이퍼컴퍼니를 세웠다.

롤두긴은 첼리스트일 뿐 사업가는 아니다.

그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절친한 친구로 알려졌다.

러시아 국영은행이 빌려준 2억 달러(약 2조3천억원)는 역외 회사들을 거쳐 다시 러시아로 흘러들었다.

2억 달러라는 거금이 3개국의 2개 은행과 4개 회사를 거치며 추적 불가능한 자금으로 세탁됐다.

이 과정에 롤두긴이 지배하는 파나마 회사도 개입됐다.

정권이 주류 언론을 장악하고 있는 터라 러시아 국민은 파나마 페이퍼스의 내용을 거의 모른다.

파나마 페이퍼스에서 거액과 함께 거론된 푸틴 대통령 얘기는 러시아에서 알려지지 않았다.

푸틴 대통령은 자신에 대한 부패 의혹을 일축하며 롤두긴이 악기를 수입하려고 돈을 사용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이번 작업에 미국 중앙정보국(CIA) 간첩과 결탁한 많은 기자가 참여했을 것이라면서 '푸틴포비아'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주장했다.

◇ 중국 - 공산당 전·현 지도부 친인척 연루…언론에 함구령
중국에선 공산당의 전·현 지도부들의 친인척이 파나마 페이퍼스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매형과 장가오리(張高麗) 상무위원 사위, 자칭린(賈慶林) 전 전국정협 주석의 손녀가 모색 폰세카의 고객으로 나타났다.

리펑(李鵬) 전 총리의 딸도 자신의 남편과 함께 버진아일랜드에 설립된 회사를 소유했다.

공산당 총서기를 지낸 고(故) 후야오방(胡耀邦)의 아들과 부패와 권력 남용으로 낙마한 보시라이(薄熙來) 전 충칭시 당서기의 아내 등도 '파나마 스캔들'을 피해가지 못했다
언론 통제가 심한 중국은 예상대로 파나마 페이퍼스 관련 보도를 통제하고 있다.

중국 당국도 지도부들의 친인척이 외국에 재산을 숨겼다는 의혹에 "아무런 근거가 없다"고 일축했다.

◇ 아이슬란드 - 총리, 역외재산 신고 누락→비난→시위→사임
아이슬란드 시그문뒤르 다비드 귄로이그손 총리는 역외펀드 재산을 신고하지 않은 사실이 폭로됐다.

귄로이그손 총리는 2007년 아내와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윈트리스'를 공동 설립했다.

총리는 윈트리스의 지분 50%를 모두 재산공개일 직전인 2009년 12월 31일 아내에게 단돈 1달러에 넘겼다.

문제는 윈트리스가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이 이뤄지기 전 파산한 은행들이 발행한 채권을 갖고 있었다는 점이다.

총리가 채권 보유 사실을 공개하지 않고 구제금융 채권단과 협상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아이슬란드에선 비난이 거세게 일었다.

총리가 이끄는 정부가 은행 채권 협상을 관장해 공익과 사익이 충돌하는 부적절한 상황을 만들었다는 비난이었다.

비난은 거센 시위로 이어졌고 귄로이그손 총리는 결국 사임했다.

◇ 영국 - 캐머런 총리, 부친 설립 펀드로 구설수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도 곤혹스러운 처지에 놓였다.

작고한 자신의 아버지이자 주식중개인인 이언 캐머런의 이름이 파나마 페이퍼스에 올랐기 때문이다.

이언 캐머런은 1982년 조성해 2010년까지 운영한 펀드 '블레어모어 홀딩스'의 세금을 영국에 내지 않으려 조세회피처 바하마에 펀드를 등록했다.

부친이 역외펀드 재산을 소유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총리를 둘러싼 의문이 꼬리를 물자 캐머런은 결국 총리에 오르기 직전 역외펀드의 주식을 처분했다고 실토했다.

캐머런 총리는 자신과 부인이 공동계좌로 보유한 블레어모어 홀딩스의 주식을 2010년 1월 약 3만파운드(약 5천만원)에 매각했다고 말했다.

매각 시기는 2010년 5월 총선 승리로 총리에 취임하기 넉 달 전이었다.

캐머런 총리는 배당소득세를 냈다며 탈세는 없었다고 강조했다.

◇ 아르헨티나 - 마크리 대통령, 재산목록서 뺐다가 발각
마우리시오 마크리 아르헨티나 대통령은 바하마에 '플레그 트레이딩' 회사를 설립하고 1998년부터 2009년까지 이사로 이름을 올렸다.

2007년 부에노스아이레스 시장과 지난해 대통령에 오를 때 재산 목록에 바하마 회사와 관련한 정보를 밝히지 않았다.

그는 부패 척결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워 작년 대통령으로 취임했지만 이번 파나마 페이퍼스에 이름이 등장하는 바람에 위기를 맞게 됐다.

검찰은 마크리 대통령에 대한 수사를 시작해 지난 7일 그를 소환했다.

아르헨티나에선 마크리 대통령의 사임을 촉구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마크리 대통령은 주주가 아니었고 어떤 보상도 받지 않았다며 부정 의혹을 일축했다.

◇ 아제르바이잔 - 대통령 두 딸 명의 회사, 영국 자산관리용
아제르바이잔의 일함 알리예프 대통령 일가는 해외에서 은행, 통신, 광산, 부동산 등 다양한 사업을 하고 있다.

파나마 페이퍼스에는 알리예프 대통령의 두 딸 명의로 영국 내 부동산 등 자산관리를 위한 역외 회사가 등장한다.

최근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는 분쟁지 나고르노카라바흐에서 교전을 벌이고 있다.

반체제 인사들은 파나마 페이퍼스의 불똥을 막으려고 아제르바이잔 정부가 전쟁을 벌이는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진위가 어찌 됐든 비판적인 언론을 탄압하는 아제르바이잔 당국의 특성상 파나마 페이퍼스가 제대로 보도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 짐바브웨 - 무가베 대통령의 친구 2명 이름 등장
세계 최고령 독재자인 로버트 무가베 짐바브웨 대통령의 친구 2명은 유럽연합(EU)의 제재 대상에 올라있으면서도 역외에 회사를 갖고 있었다.

무가베를 지지하는 세력은 친구들의 역외 회사 보유가 대통령과는 연관이 없다고 주장했다.

무가베 대통령을 반대하는 측은 무가베 대통령 이름이 파나마 페이퍼스에는 나오지 않지만 엄청난 해외 자산을 숨기고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

◇ 이란 - 제재대상 기업·이란 전 대통령 소유 회사 목록에
모색 폰세카는 이란의 국영 정유사 페트로파스를 위해 역외 회사를 만들어줬다.

페트로파스는 미국의 제재 목록에 올라 있는 기업이다.

이란 회사 페트로콤도 모색 폰세카를 이용해 역외 회사를 세웠다.

이 회사의 궁극적인 소유주는 이란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전 대통령으로 알려진다.

파나마 페이퍼스 얘기는 반관적(半官的)인 언론이나 BBC의 이란판 서비스에서만 다뤄지고 있다.

오직 이란 엘리트 계층만 뉴스를 접하고 있다.

◇ 호주 - 부유층 인사 800명 탈세 의혹 조사
호주는 파나마 페이퍼스 폭로가 있기 전부터 역외 탈세자들을 조사하고 있었다.

최근 문건 공개에선 탈세 프로그램을 운영해 처벌을 받은 회계사 '필립 데 피게이레두'와 탈세 혐의로 조사 중인 '필립 에글리쇼'가 거론됐다.

호주 국세청은 모색 폰세카와 연관된 자국민 부유층 인사 800명의 신원을 확인하고 탈세 의혹을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800명 가운데 120명은 홍콩의 역외탈세 관련 서비스 제공 업체와 연관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 파키스탄 - 샤리프 총리 자녀 3명 연루 의혹
나와즈 샤리프 파키스탄 총리의 두 아들과 딸 한 명의 이름이 거명됐다.

샤리프 총리의 자녀들은 버진아일랜드에 설립한 기업들을 통해 은행과 거래하고 영국 런던에 아파트 등 부동산을 소유했다.

샤리프 총리는 파나마 페이퍼스의 폭로로 제기된 가족 연루 의혹과 관련한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하겠다고 밝혔다.

◇ 시리아 - 알아사드 대통령 사촌들 연루
시리아 내전의 중심에 있는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은 사촌인 라미·하페즈 마크루프 때문에 이번 폭로에 연루됐다.

모색 폰세카는 이메일을 통해 마크루프 일가에 대한 뇌물과 부패 의혹을 논의했으며 버진아일랜드 당국으로부터 마크루프 소유 회사의 돈세탁 의혹 수사와 관련한 편지를 받고서야 이 일가와의 관계를 끊은 것으로 나타났다.

◇ 파나마 - '돈세탁 천국' 오명에 울상
파나마가 조세 회피처라는 것은 뉴스거리가 아니었다.

물론 파나마 페이퍼스가 공개되기 전까지 얘기다.

이번 문건 공개로 파나마는 돈세탁 천국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게 됐다.

전 세계의 달갑지 않은 주목을 받은 파나마는 대통령이 나서 자국의 금융 관행을 조사해 처방까지 제시할 조사위원회를 꾸리기로 했다고 밝혔다.

자료 공개의 진원지 모색 폰세카는 40년간 자사가 범죄 혐의를 받은 적이 없다고 밝히기도 했다.

한편 포럼의 공동 창업자인 폰세카는 후안 카를로스 바렐라 파나마 대통령과 친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김남권 기자 kong79@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