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GPS 교란
“0.5마일 정도 나가자 GPS(global positioning system, 위성항법장치) 플로터가 작동하지 않더라고요. 4~5초씩 열리다가 다시 막히는 바람에 나침반으로 그물 놓은 위치까지 눈뜬장님처럼 찾아갔는데 일도 못하고 금방 귀항했죠.” 어제 새벽 주문진항에서 출발한 대게잡이 어선의 60% 이상이 이 같은 항해장비 먹통으로 조업을 포기했다.

인근 강릉항에서 떠난 어선들도 일찍 돌아와야 했다. 어두운 새벽 바다에서 GPS 플로터 없이 섣불리 움직이면 어선끼리 충돌할 수 있고 곳곳에 쳐놓은 그물이나 양식장 위치를 몰라서 이를 훼손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정부는 “북한이 한 달 전부터 수도권 일대로 GPS 교란 전파를 시험 발사하다 전파를 최대 출력으로 높인 것으로 파악됐다”고 발표했다. 북한의 GPS 교란은 2012년 이후 4년 만이다. 전파 교란은 민간 어선뿐만 아니라 군사 장비에도 영향을 미친다. 우리 군이 보유한 장비는 미군의 군용 GPS 대신 일반적인 상용 GPS를 장착한 게 많아 전파 교란에 취약한 편이다.

GPS는 미국 국방부가 군사용으로 개발한 것이다. 민간 부문에 사용된 것은 2000년부터다. 이후 수십 미터의 오차가 나던 위치 정보가 정밀해지면서 자동차 내비게이션 등이 본격적으로 발달했다. 현재 GPS는 세계에 무료로 개방돼 많은 국가가 활용하고 있다. 그러나 유럽연합, 중국 등 일부 국가는 미국 위주의 정보 비대칭을 우려해 독자적인 위성항법시스템을 쓰기도 한다.

GPS가 일반화되긴 했지만 아직은 한계가 있다. 태양 표면 폭발이나 지자기장폭풍, 전파 교란으로 언제든지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그래서 각국은 대응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한 가지 방법은 항법이나 유도 등에서 GPS만을 사용하지 않고 유럽 통신위성 등 다른 신호를 받는 것이다.

암호화 코드를 신형으로 바꾸는 방법도 있다. 미국은 2003년 이라크전에서 러시아제 교란장비의 방해로 오폭을 경험한 뒤 군사용 암호화 코드를 신형으로 바꿨다. 하지만 한국군 장비는 구형 수신기나 상용 GPS가 대부분이다. 탱크 같은 지상장비와 호위함급 이하 함정, 헬기와 초등훈련기도 마찬가지다. 국방부가 미국의 협조를 얻어 신형 장비를 늘리겠다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해양수산부도 첨단 지상파 항법시스템을 개발 중이라고 한다. 그러나 새로운 기술이 나올 때까지는 4년이나 걸린다니 답답한 노릇이다. GPS 전파만이 아니라 마음까지 산란스런 봄날이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