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권 침해하고 사회질서에도 어긋난다"…무효 판결

민주노총 등의 주도로 노사단체협약에 포함된 소위 '고용세습'에대해 법원은 협약의 효력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노사 간에 협의했을지라도 사회질서에 어긋난다는 이유에서다.

우리 민법은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한 사항을 내용으로 하는 법률행위는 무효'라고 규정해 허용하지 않는다.

29일 법조계에 따르면 법원은 근로자나 정년퇴직자의 가족이 일자리를 물려받는 내용의 단체협약이 무효라는 판례를 유지하고 있다.

현대자동차에서 2009년 정년퇴직한 A씨는 2011년 폐암으로 숨졌고, 근로복지공단에서 업무상 질병 판정을 받았다.

유족들은 "단체협약에 따라 A씨 자녀 중 1명을 채용해 달라"고 요구했다.

기아자동차에서 근무하던 2008년 급성 백혈병 진단을 받고 2년 만에 숨진 B씨는 금형 세척제에 노출돼 병에 걸렸다고 인정돼 산업재해 판정을 받았다.

유족들은 단협을 내세우며 B씨 자녀를 채용하라고 주장했다.

A씨와 B씨 유족들이 문제삼은 단협 조항은 '조합원이 업무상 숨진 경우 직계가족 또는 배우자를 6개월 이내에 특별채용한다'는 내용이었다.

법원은 두 사건에서 같은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해당 단체협약이 무효라고 보고 사측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A씨 사건을 심리한 울산지법 민사합의3부(당시 도진기 부장판사)는 "업무능력에 대해 판단하지도 않은 채 조합원 가족을 채용하는 것은 인사권을 침해하는 만큼 단체협약 대상이 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또 문제가 된 단체협약이 사회질서에 어긋난다고 보고 계약으로서 효력을 인정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해당 단체협약은) 사실상 일자리를 물려주는 결과를 낳아 우리 사회의 정의관념에 배치된다"며 "경쟁 없는 채용으로 사라진 하나의 일자리는 누군가 뼈를 깎는 인내와 단련으로 실력을 키워 차지하려 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B씨 사건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6부(당시 이정호 부장판사)도 "유족을 채용하도록 단체협약으로 제도화하면 사실상 귀족 노동자 계급 출현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청년실업이 큰 사회적 문제로 부상하고 20~30대 청년들이 기회 불공정성에 대한 좌절감과 분노가 유례없이 커지고 있다"며 "취업의 기회를 제공하는 데 있어 평등에 대한 기준은 종전보다 엄격한 잣대로 평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A씨 유족은 항소를 포기해 판결이 그대로 확정됐고, B씨 유족은 항소심 선고를 앞두고 있다.

한편 고용노동부는 실태 조사에서 전체 단체협약 중 25.1%가 조합원 가족을 특별·우선채용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28일 밝혔다.

이번 조사는 노조가 있는 근로자 100명 이상 사업장의 단체협약 총 2천769개를 대상으로 했다.

(서울연합뉴스) 황재하 기자 jae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