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회현동 남대문 인근 20층짜리 업무용 빌딩을 5년째 보유하고 있는 K자산운용사는 이 건물을 작년 고점보다 20% 낮은 가격에 매각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장기간 빌려 쓰던 기업이 사업 구조조정을 위해 지난해 사무실을 지방으로 옮기면서 공실률이 50% 가까이로 올라갔기 때문이다.

S자산운용사가 2008년 부동산펀드를 통해 사들인 서울 구로구 40층짜리 빌딩은 최근 세 차례나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하며 매각 협상을 벌였지만 실패했다. 펀드 투자자에게 연 6~7% 내외의 배당 수익을 제공하는 건물이지만 서울 도심권이 아니라는 것이 단점으로 꼽혔다. 부동산펀드에 투자한 생명보험사의 한 관계자는 “펀드 만기가 돌아오면서 보유 건물을 팔아야 하는데 시장 상황이 좋지 않아 손해보지 않고 파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업 구조조정에 공실률 껑충

[서울 빌딩 몸값 7년 만에 하락] '탈서울 기업' 늘며 빌딩 10% 비어…회현동 20층 건물값 20% 떨어져
2008년 금융위기 직후 일시적으로 급락한 뒤 상승세를 이어온 서울 업무용 빌딩의 매매가격이 하락 조짐을 보이고 있다. 투자자의 빌딩 매입 경쟁으로 2008년 3.3㎡당 평균 1200만원이던 오피스빌딩 매매가격은 지난해 두 배가량으로 올랐다. 하지만 서울 시내 전체 오피스빌딩 공실률이 평균 10%를 넘어서면서 빌딩 가격이 조정 국면에 들어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서울 시내 A급(상위 10~30%) 이하 오피스빌딩 중 입지 선호도가 떨어지거나 공실률이 높은 빌딩을 중심으로 지난해 고점보다 20%가량 낮은 가격에서 매각 협상이 이뤄지고 있다. 남대문 인근 회현동, 영등포구, 강남 테헤란로 인근 삼성동의 업무용 빌딩 중 공실률이 50% 이상인 빌딩들이 주요 대상이다.

빌딩 가격 하락은 최근 구조조정에 들어간 기업들이 사무실 면적을 줄이거나 수도권 또는 지방으로 사무실을 이전하면서 건물 공실률이 높아진 영향이 크다는 지적이 많다. 서울 역삼동 포스코A&C는 지난해 4월 인천 송도국제도시로 이전했고, 8월엔 SK하이닉스가 대치동에 있던 본사를 경기 성남 분당신도시로 옮겼다. 삼성물산 건설부문은 서초동 사옥과 인근 빌딩에서 나와 성남 판교신도시 알파돔시티로 이사 중이다.

◆입질 들어간 외국 투자업계

지난해 4분기 매매할 예정이던 거래 중 상당수가 올해로 연기돼 지난해 연간 업무빌딩 거래 규모는 약 3조8000억원으로 전년보다 33.5% 줄었다. 중구 다동의 한국씨티은행 본점, 서울역 옛 LG유플러스 사옥, 대우조선해양 서울사옥, 강남 캐피탈타워 등이 거래가 무산되거나 지지부진한 상태다. 빌딩중개법인 관계자는 “지난해 2분기 동국제강이 삼성생명보험에 매각한 중구 페럼타워는 3.3㎡당 매각가격이 2493만원으로 역대 최고가를 기록했지만 그 이후 빌딩 거래는 지지부진한 상태”라고 말했다.

반면 일부 외국계 부동산투자회사는 지금이 공실률 높은 오피스빌딩을 싸게 매입할 적기로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매입 뒤 공실을 채우고 자산관리를 통해 우량 자산으로 바꾸면 몇 년 뒤 비싸게 팔 수 있다는 분석에서다. 국내 부동산 투자를 전문으로 하는 한 외국계 사모펀드 관계자는 “2008년 금융위기로 서울 빌딩 가격이 크게 하락했을 때 싸게 매입해 시세차익을 낸 경험이 있어 서울 빌딩시장을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부동산리서치회사인 저스트알 조사에 따르면 2008년 금융위기 때 외국계 자본이 소유한 서울 시내 10층 이상 상업용 빌딩은 65개에 이른다. 당시 미국계 사모펀드인 모건스탠리는 서울 빌딩 투자를 통해 3~4년 만에 50% 이상의 수익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윤아영 기자 youngmone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