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서해 수호
나당전쟁 최후의 전투는 서해의 기벌포(장항)에서 벌어졌다. 당나라군은 설인귀가 지휘하는 대함대였다. 신라군은 22차례에 걸친 격전 끝에 당군 4000여명의 목을 베며 승기를 잡았다. 이로써 서해의 제해권을 완전히 장악했고, 7년간의 대당전쟁에서 승리했다.

1300여년 전이나 지금이나 서해 바다 물빛은 흐리다. 숱한 역사의 탁류 때문일까. 고려·조선시대에는 툭하면 왜구의 노략질을 당했다. 병자호란과 강화도 굴욕 등 격랑의 파고가 계속됐다. 6·25 때도 격전의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수많은 전투가 이곳에서 벌어졌다. 불리한 전세를 단번에 뒤집은 인천상륙작전이 펼쳐진 곳 또한 서해였다.

휴전 후에도 서해는 늘 긴장의 바다였다. 최북단에 있는 백령도와 연평도 등 서해5도의 파도는 더 높고 위태로웠다. 1999년부터 두 차례의 연평해전과 연평도 포격 사건 등 북방한계선 부근에서 일어난 전투만 다섯 번이다. 우리 군의 희생자도 55명에 이른다. 연평해전 때 침몰한 배 안에서 40여일간 키를 붙잡고 있던 상태로 발견된 한상국 하사의 사연은 우리를 더욱 슬프게 했다. 그는 진급을 이틀 앞둔 신혼 6개월의 새신랑이었다. 천안함 피격 때도 46명의 우리 병사가 목숨을 잃었다.

이런 비극의 현장도 시간이 지나면 잊혀지기 일쑤다. 바다는 말이 없고 애도의 물결도 잠시 출렁이다 사라진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호국용사들의 이름도 마찬가지다. 이들을 기리는 법정기념일이 생긴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 정부가 연평해전과 천안함 피격, 연평도 포격 도발을 기억하고 서해 북방한계선 수호 의지를 다지기 위해 3월 넷째 주 금요일을 ‘서해 수호의 날’로 정했다. 날짜가 3월 넷째 금요일인 것은 우리 군의 희생이 가장 컸던 천안함 피격일을 기준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첫 기념식은 오늘(25일) 오전 10시 전사자들이 묻혀 있는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열린다. 희생자 유족 등 7000여명이 참석한다고 한다. 전국 86개 도시에서 열리는 기념식 참가자까지 합치면 4만여명에 이를 전망이다. 국립해양박물관은 해군 구축함인 충무공이순신함과 제2연평해전에서 전사한 윤영하 소령의 이름을 딴 고속함 윤영하함 등의 모형을 전시한다.

행사를 하루 앞둔 24일에는 서울역 등에서 젊은이들이 모여 추모 행사를 벌였다. 꽃을 연상시키는 노란색·분홍색 풍선에 ‘봄꽃 필 무렵, 당신을 떠올리겠습니다’라는 글귀를 적어 날리며 경례를 하는 이들의 모습에 가슴이 뭉클해진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