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신발산업 부활의 교훈
독일 스포츠용품 업체 아디다스가 로봇과 인터넷으로 러닝화를 만들겠다고 발표한 것은 지난해 12월이다. 독일 안스바흐에 ‘스피드 팩토리’라는 100% 로봇 자동화공정을 갖춘 공장을 지어 신발을 생산하겠다는 것이다. 상주하는 공장 인력은 10여명에 불과하고 전 공정을 서버와 인터넷으로 연결해 관리한다. 인터넷으로 패션 트렌드를 분석해 실시간 맞춤형 생산도 가능하단다. 아디다스 대변인은 “독일 공장을 시작으로 같은 시스템을 전 세계에 적용하겠다”고 말했다.

첨단산업이 된 신발 제조업

이런 식이라면 한국 신발산업도 중국이나 동남아에 더 이상 밀릴 이유가 없다. 인건비는 더 이상 중요한 변수가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 신발산업은 부활하고 있다. 태광실업 화승 트렉스타 등 주요 신발업체의 매출과 이익이 최근 늘었다. 제조업 수출은 줄고 있지만 신발 수출은 매년 7~8%씩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저임금을 좇아 외국으로 갔던 신발업체도 속속 돌아오고 있다.

부산시에 따르면 2013년 이후 신발업체 12곳이 중국 등 해외로 공장을 이전했다가 부산으로 돌아왔다. “국내 신발산업이 제2 르네상스를 맞았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비결은 디지털화다. 아디다스의 ‘스피드 팩토리’만큼은 아니지만 공장라인 자동화로 인건비 비중을 크게 줄였다. 3D 프린터와 CAD/CAM(컴퓨터를 활용한 디자인과 생산) 소프트웨어 등으로 공정을 단순화해 제품 생산주기가 많이 짧아졌다. 전문가들은 신발공장이 디지털화되면서 생산원가 경쟁은 큰 의미가 없어졌다고 말한다. 브랜드와 디자인, 현장의 노하우 등이 승부를 가르는 요인이 됐다. 요즘은 인공지능 등 첨단기술을 적용한 신발도 개발되고 있다. 그래서 업계에서는 “신발은 제조업이 아니라 정보통신기술(ICT) 기반의 첨단산업”이라는 말도 한다.

스마트화로 경쟁 환경 바뀌어

이런 변화는 신발산업은 물론 전체 제조업으로 번질 것이다. 미국 독일 일본 등 선진국이 ‘제조업 부활’을 부르짖고 해외로 나간 공장을 다시 유치한 데에는 ‘디지털’이라는 강력한 무기가 한몫했다. ICT산업은 선진국에 강점이 있기에 굴뚝산업도 스마트화하면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이미 많은 기업이 스마트 공장에 뛰어들었다. 대표적 제조기업인 GE 지멘스 등은 한발 앞서 아예 이런 기술들을 가능하게 하는 스마트 공장 플랫폼을 놓고 격돌 중이다.

최근 사석에서 만난 한 제조업체 A사장은 중국 얘기가 나오자 한숨부터 내쉬었다. 그는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로는 중국을 절대 이길 수 없다”며 “한국에서 제조업은 쉽지 않다”고 말했다. 답답함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과거의 경쟁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한국 기업들의 현주소를 보는 것 같아 씁쓸했다.

1990년대 한국을 떠나 중국과 동남아에 공장을 지은 신발업체 최고경영자(CEO)들도 A사장과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기술의 등장은 신발산업의 경쟁 환경을 바꿔놓았고 그 속에서 한국 신발업체는 부활의 길을 찾았다. 다른 업종의 기업들도 못할 이유가 없다.

김태완 산업부 차장 tw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