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S 이어 이만섭 이기택까지…한 시대가 저문다"
이 전 총재 빈소 이틀째 조문행렬…자서전 제목은 '牛行'
정의장 "후배 정치인에게 '사표'와 같은 분"
김무성·서청원·문희상·안철수·유인태 등 여야 의원 잇달아 발길


"선배님이 못다 한 민주주의, 산 자들이 이루겠습니다.

"(새누리당 이재오 의원 방명록), "민주주의의 큰 기둥 이기택 총재님을 추모합니다.

"(박원순 서울시장 방명록)
4·19 혁명의 상징적 인물로 꼽히는 이기택 전 민주당 총재의 서울 강남성모병원 빈소에는 21일 이틀째 정계 후배들의 조문이 이어졌다.

여야를 가리지 않고 빈소를 찾아온 정치권 인사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이 전 총재를 기억하며 그 뜻을 받들겠다고 다짐했다.

특히 최근까지도 이 전 총재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는 이들은 갑작스러운 별세 소식에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부산에서 머물다 일정을 앞당겨 상경한 정의화 국회의장은 "4·19 정신을 끝까지 유지·발전시키고 신념으로 정치를 해오신, 후배들에게는 사표가 되는 분"이라고 이 전 총재를 기억했다.

정 의장은 "김영삼 전 대통령, 이만섭 전 국회의장에 이 전 총재까지 우리 정치권에 조금 더 있어줘야 할 어른들이 꼭 필요한 시기에 떠나는 게 굉장히 안타깝다"며 "그분들이 보여준 말씀과 행동을 잘 음미하고 따라서 우리나라를 반석 위에 올릴 수 있는 정치를 해야한다"고 말했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7선 의원을 지내며 항상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초지일관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한 존경스러운 분"이라며 "이렇게 빨리 가신 것은 너무나 국가적으로 큰 손실이고 후배 정치인으로서 공허함을 느낀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학생운동 시절부터 이 전 총재와 동고동락한 새누리당 서청원 의원은 3당 합당 시절 이 전 총재를 영입하려고 쫓아다니던 시절을 떠올리며 "정치는 나침반대로 가는 게 아닌 것 같다"고 곱씹었다.

역시 학생운동 때부터 함께 했다는 새누리당 이재오 의원은 "아직 이 나라에 반민주적 요소가 많이 남아있다"며 "먼저 간 선배들의 민주주의적 정신을 후배 학생운동 정치인들이 이어받아야 할 그런 숙제를 남기고 돌아가셨다"고 강조했다.

최근 이 전 총재를 만났다는 조경태 의원은 "1980년대 한창 민주화를 위해 노력할 때 야당의 기반을 확보하는 데 많은 기여를 했다는 말씀을 직접 들으니 감회가 새로웠다"며 "조만간 부산에 내려와 뵙기로 했는데 갑자기 돌아가셔서 짠하다"는 소회를 밝혔다.

이 전 총재의 비서실장을 지낸 더불어민주당 문희상 의원은 "특유의 통찰력과 역사의식을 바탕으로 민주화의 가장 극명한 삶을 사신 분"이라며 "지역감정 해소 등에 더 역할을 해주실 수 있는 시기에 돌아가셔서 안타깝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1991년 '꼬마민주당'부터 1995년 '작은민주당' 시절까지 같은 당에서 활동한 더민주 유인태 의원은 "'3김(김대중·김영삼·김종필)시대'에는 '3김'을 따라가지 않으면 생존이 안 되는 시절이었는데도 이 전 총재는 그때 독자세력을 갖고 심화된 지역주의를 극복하려 했다"고 평가했다.

유 의원은 지난해 8월 한 장례식장에서 이 전 총재를 만났다며 "이 전 총재가 '나도 보수지만 국부론이니, 건국론이니 하며 이승만 전 대통령을 내세우는 것을 도저히 이해 못하겠다'고 한광옥 국민대통합위원장과 홍사덕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대표상임의장에게 말하더라"고 전했다.

국민의당 안철수 상임공동대표는 "이 전 총재는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한 단계 더 발전할 수 있게 하신 분으로, 정말 오랜 시간 동안 변함없이 대한민국 민주화에 대해서 직접 생각하신 바를 행동으로 옮겼다"며 존경을 표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이 전 총재를 "4·19 혁명의 주역인 동시에 한국 정치민주주의의 산 증인인 이 전 총재를 한 달 전에 뵙고 4·19 혁명 주역들이 사무실도 없다는 이야기를 나눴었는데 갑자기 돌아가셔서 큰 충격"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이 전 총재의 비서관으로 정치를 시작한 박관용 전 국회의장은 이틀 연속 빈소에 나와 이 전 총재의 가는 길을 지켰다.

박 전 의장은 이 전 총재의 4·19 민주사회장의 장례위원장을 맡기로 했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이 전 총재를 지켜본 옛 동지 최형우 전 내무부 장관도 불편한 몸을 이끌고 빈소를 찾아 눈물을 흘렸다.

코끝이 빨개진 최 전 장관은 이 전 총재의 영정사진을 한참이나 바라봤다.

이 전 총재를 '기택이 형'이라고 부르는 김경재 전 대통령 홍보특보는 "대통령을 하고도 남을 분인데 절대 불의에 타협하지 않고 조금의 예외도 없어서 불이익을 많이 받았다"며 "'양김(兩金)'에 밀려 뜻을 펼치지 못했다"며 안타까워했다.

이 전 총재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 탈고한 자서전의 제목은 '우행(牛行)'으로 정해졌다.

이 전 총재는 생전 '호랑이 눈처럼 날카로운 안목을 가지고 소처럼 우직하게 나아간다'는 뜻의 '호시우행'을 가장 좋아하는 경구로 삼았던데 따른 것이다.

어느 시점에 이 전 총재의 자서전을 공개할지는 미정인 상태다.

이 전 총재는 자서전의 95% 이상을 직접 집필했다는 게 측근의 전언이다.

이 밖에도 더민주를 탈당한 정대철 전 상임고문, 김덕룡 전 민화협 대표상임의장, 한광옥 국민대통합위원장, 새누리당 이병석·김을동·류지영·하태경 의원, 더민주 설훈 의원, 김부겸 전 의원, 남경필 경기도지사, 문정수 전 부산시장, 이재정 경기도교육감 등이 조문했다.

(서울연합뉴스) 현혜란 기자 runra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