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8일 북한의 4차 핵실험과 관련해 중국의 대북 제재 동참을 요구했다.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도 중국의 ‘역할론’을 강조하며 압박에 나섰다. 한·미는 대북 원유 공급 중단 등 구체적인 대북 제재 문제를 놓고 중국과 협의에 들어갔다.

과거 핵실험 때 주변국의 ‘냉정한 대응’을 강조하며 북한을 감쌌던 중국이 이번엔 강경 기조로 돌아설지 관심이 쏠린다. ‘역대 최상’으로 평가되는 한·중 관계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공조를 얻지 못한다면 대북 정책뿐만 아니라 대중 외교 실패론에 휘말릴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중국, 대북 제재 방식 작동 안 해”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이날 오후 8시부터 왕이 중국 외교부 장관과 약 70분간 통화를 하고 북핵문제 대응책을 논의했다. 윤 장관은 왕 장관에게 “북한의 지속되는 핵능력 고도화를 차단하기 위해서는 국제사회의 의지를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고 외교부는 밝혔다. 대북 추가 제재과정에서 중국 측의 적극적인 협조를 주문한 것이다.

왕 장관은 북한의 4차 핵실험과 관련해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안정,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 등 이른바 ‘북핵 3원칙’을 거론하며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빠져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또 북한 핵실험을 반대한다는 중국의 기존 입장을 재확인하면서 “한국 측과 의사 소통을 유지해 현재의 복잡한 정세에 대응하고, (북한) 핵 문제의 협상 궤도 복귀를 추진해야 한다”는 뜻을 밝혔다고 외교부는 전했다.

미국도 중국의 대북 정책 전환을 공개적으로 요구했다. 북한의 핵 포기를 기다리는 미국의 ‘전략적 인내’ 정책이 사태를 키웠다는 비판을 의식한 조치라는 게 전문가들의 풀이다.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은 7일(현지시간) 왕 장관과의 통화에서 “그동안 중국의 방식은 작동하지 않았다”며 “이제는 평소와 같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대응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중국의 기존 대북 접근법을 실패로 규정하고 강경 대응 방침을 시사한 것이다. 케리 장관은 “북한에 대해 취할 수 있는 조치와 다양한 선택 방안을 왕 장관과 논의했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는 미국이 중국과 △북한 선박의 중국 입항 금지 △북·중 무역 규모 대폭 축소 △대북 원유 공급 중단 등에 대한 협의를 진행 중이라고 보도했다.

◆원유 차단 땐 김정은 붕괴도 가능

북한은 중국 단둥~신의주를 연결한 송유관을 통해 원유 수입의 99%가량을 중국에서 들여온다. 중국 세관에 따르면 중국의 대북 원유 수출액은 2014년 2월 이후 ‘제로(0)’를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중국이 무상 제공 및 차관 형태로 북한에 매년 50만t가량의 연료를 지원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 들어선 중국이 송유관과 벌크선을 통해 북한에 보내는 정제유가 늘어났다는 주장도 나온다.

중국이 북한으로 가는 원유의 30%만 줄여도 북한의 웬만한 공장은 멈춰설 것이라는 게 한국 정부의 판단이다. 중국은 2·3차 핵실험 때 원유 공급량을 일부 줄여 북한에 상당한 고통을 줬다. 중국이 원유 공급을 전면 차단한다면 김정은 체제가 붕괴할 수도 있다는 게 북한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 때문에 한국과 미국은 김정은에게 실질적인 고통을 주기 위해 중국이 원유 공급을 끊거나 줄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전예진 기자 ac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