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에게 참정권을 처음 허용한 사우디아라비아의 12일(현지시간) 지방의회 선거는 수십 년간 내재했던 사우디 여성의 정치 참여에 대한 에너지가 분출되는 통로였다.

14일 자정(한국시간 14일 오전 6시)까지 잠정 개표집계에 따르면 여성 당선자는 20명 선으로 예상된다.

이 예상치는 이번 지방선거에서 선출되는 의원수 2천106명의 1% 안팎으로 매우 작은 비율이다.

전체 후보에 대한 여성 후보의 비율이 14.2%(6천917명 중 979명)였음을 고려해도 저조한 성적이라고 평가해도 무리는 아니다.

'여권 후진국'이라는 오명을 쓴 사우디가 여성에 처음으로 참정권을 부여했다는 사실로 전 세계의 관심을 끈 선거치곤 결과가 '용두사미'가 아니냐는 비판이 나올 만 하다.

하지만 아직 운전이 금지될 정도로 여성의 대외 활동에 부정적인 사우디의 관습과 사회 분위기를 감안한다면 결과만 놓고 폄하할 일만은 아니다.

생애 처음 역사적인 참정권을 갖게 된 사우디 여성 유권자들은 남성과 비교해 압도적인 기세로 투표장을 향했다.

유권자로 등록한 여성의 81.6%가 실제 투표에 참여한 것이다.

이는 남성 투표율 44%를 크게 앞지른다.

비록 참정권이 부여된 18세 이상 성인 여성의 2% 만이 유권자로 등록했다는 한계가 있긴 했지만, 사우디 여성의 정치 참여에 대한 열기를 확인하기엔 충분했다.

특히 고학력자가 많은 대도시뿐 아니라 산간과 사막으로 이뤄진 척박하고 미개발된 지방 곳곳까지 투표장으로 향하는 여성의 행렬이 끊이지 않았다.

여성 당선자로 처음 공식 확인된 살마 빈트 히자브 알오테이비를 배출한 메카주(州) 마드라카 지역은 가장 가까운 병원이 90㎞나 떨어진 메카시(市)에 있을 정도로 소외된 곳이다.

사우디 일간지들은 올해 10월 이곳에 사는 만삭의 임신부가 메카시의 산부인과로 가던 차 안에서 출산했다고 보도하면서, 열악한 교육 환경은 물론 공원도 제대로 갖추지 못해 지역민의 불만이 높다고 전했다.

알오테이비의 당선은 이런 낙후한 환경을 개선하지 못하는 기존 '남성 일변도 정치'에 대한 경종으로도 해석되는 대목이다.

이번 선거는 첫 참정권 부여라는 성과와 동시에 과제도 던졌다.

여성 유권자가 등록하기 위해 필요한 거주·결혼 확인증 같은 서류는 남성 보호자(아버지나 남편 등 남자 가족)의 동의를 받아야 했다.

남성 보호자가 여성의 선거 참여에 부정적이라면 그 여성은 선거에 참여할 수 없게 되는 셈이다.

피선거권을 행사한 여성 후보들도 어렵긴 마찬가지였다.

여성이 선거라는 경쟁에 처음 뛰어들었기도 했지만 가족을 제외한 여성의 대외 접촉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사우디의 사회 관습 탓에 여성 후보들은 선거운동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이번 선거에서 남성 유권자가 여성의 10배에 달했기 때문에 당선 가능성을 높이려면 남성을 많이 접촉해야 했기 때문이다.

리야드의 여성후보 아자제아 알호사이니는 연합뉴스에 "선거운동 경험이 없어 어떻게 유권자에 접근할지 몰라 무척 어려웠다"며 "A부터 Z까지 모든 걸 나 혼자 했다"고 말했다.

사우디 여성운동가 노라 알솔와얀 마즈마대 교수는 "많이 당선되면 좋겠지만 여성 당선자의 수는 중요하지 않다"며 "이번 선거가 사우디 사회 여러 곳에 변화를 일으키는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리야드연합뉴스) 강훈상 특파원 hska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