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옥주현의 심폐소생송
이런 얘기를 써야 할지 망설였다. 내 자랑을 늘어놓는 치사한 짓으로 보일 듯해서.

몇 주 전 SBS에서 TV 프로그램 ‘심폐소생송’ 출연 섭외 전화가 왔다. 유명 걸그룹 ‘핑클’ 출신의 가수 겸 뮤지컬 배우 옥주현 씨가 ‘그대 따르리’를 ‘심폐소생곡’으로 골라 놨다는 것이다. 이 노래는 내가 아주 오래전 작사, 작곡해서 불렀던 것이다. 옥주현 씨가 왜 이 곡을 골랐는지 의아했다. 어떤 곡절로 까맣게 잊혀진 이 곡을 찾아내 ‘심폐소생’을 결정하게 된 건지 궁금했다.

한 번 생각해 보시라. ‘죽어 있는 노래’들의 숫자 말이다. 방송사 사무실 PD들의 책상을 훑어보면 대충 알 수 있다. 듣도 보도 못한 가수들의 ‘죽은 앨범’들이 겹겹이 쌓여 있다. 세계 전쟁터에서 죽어간 무명용사들의 숫자에 버금갈 만하다. ‘그대 따르리’가 그런 노래다. ‘소생 불가능 상태’로 그냥 관 속에 눕혀진 것이나 다름없는 곡이었다.

이 노래를 만들 때의 내 꿈은 꽤 컸다. 그 당시 잘나가던 박철수 감독의 뮤지컬 영화 ‘서울, 에비타’의 음악감독을 위탁받은 상태였다. 휘트니 휴스턴의 리메이크로 유명해진 돌리 파튼의 ‘I will always love you’와 제니퍼 러시의 ‘Power of love’에 심취해 “나도 평생 가수생활 하면서 저런 멋진 노래 하나 만들어야지”란 마음으로 야심차게 쓴 영화 주제가였다. 그런데 웬걸,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비슷한 시기에 발표한 ‘화개장터’만 반짝했을 뿐이었다.

‘그대 따르리’는 발표 직후부터 20년 가까이 ‘식물인간’ 상태였다. 그러던 중 SBS로부터 “‘그대 따르리’가 ‘심폐소생 노래’로 뽑혔고, ‘심폐소생 집도의’는 옥주현 씨”란 연락을 받았다. 녹화 당일 옥주현 씨와 반드시 이중창을 불러야 하고, 이를 위해 악보를 익혀 두라는 통보도 받았다. TV 무대에서만 옥주현 씨와 만날 수 있고, 그 전에는 따로 연습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녹화날에 나는 TV 녹화 무대에서 옥주현 씨가 부르는 ‘그대 따르리’를 처음 들었다. 그의 노래에 감탄하며 이중창을 했고, 관객의 반응은 압도적이었다. 내 노래는 말 그대로 ‘심폐소생’했다.

누가 말했던가. “쇼처럼 즐거운 인생은 없다”고. 그 말이 다시 떠올랐다.

조영남 < 가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