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P "남미서 '분홍색 조류' 쇠퇴 보여주는 진전된 증거"

22일(현지시간) 치러진 아르헨티나 대통령 선거에서 12년 만의 정권교체에 성공한 보수 중도우파 성향의 마우리시오 마크리(56) 후보의 대통령 당선이 그동안 남미에서 득세해온 좌파 정권의 쇠퇴를 알리는 신호탄이 될지 국제사회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23일 보도했다.

마크리 후보의 당선은 아르헨티나에서 네스토르 키르치네르 전 대통령과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대통령으로 이어진 '좌파 부부 대통령 시대'가 12년 만에, 좌파 집권이 14년 만에 종식됨을 의미한다.

마크리 대통령은 취임 일성으로 지난 12년간 좌파 부부 대통령의 국정 철학 기반이 된 '대중인기영합주의'(포퓰리즘)와의 단절을 선언했다.

특히 외환시장 통제에 따른 페소화 가치의 지속적인 하락을 막기 위해 달러화 거래 규제를 완화하는 한편, 외국인 투자 활성화를 위한 금융시장 개혁을 예고했다.

마크리는 대통령은 당선 후 연 기자회견에서 야당 인사를 탄압하는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비난하며 좌파 국가들로 결성된 경제블록인 남미공동시장(메르코수르)에 민주주의 조항을 만들어 베네수엘라를 퇴출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베네수엘라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던 페르난데스 전 대통령과 전혀 다른 행보를 취하겠다는 방침으로 읽힌다.

이와 함께 4선에 도전하는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의 장기 집권에도 부정적인 시각을 피력, 강경 좌파 정권들과 역내에서 외교 갈등을 빚을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미국이나 브라질 등과는 우호적인 관계를 형성할 것으로 관측된다.

이번 대선에서 핵심 참모로 활동한 마르코스 페냐 수석 전략가는 "미국과 나쁜 관계를 맺을 이유가 없다"며 "성숙한 친선관계와 공동의 성장을 위한 의제를 나눌 것"이라고 말했다.

마크리는 미국과 금융위기에 따른 부채 문제를 풀고 외국인 투자 유치를 위해 전반적인 관계 개선을 도모할 것이라고 WP는 내다봤다.

전 주미 아르헨티나 대사를 역임하고 외무장관 후보로 거론되는 구에라르는 마크리 대통령이 인접국이자 무역 상대인 브라질과 한층 긴밀한 관계를 형성하는 데 외교정책의 우선순위를 둘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처럼 아르헨티나 정치의 무게중심이 중도보수 쪽으로 이동한 것은 남미에서 대중영합주의에 기반한 각종 복지정책을 펴온 좌파 정권의 확산을 의미하는 '분홍색 조류'(pink tide)가 쇠퇴하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진전된 증거라고 WP는 평가했다.

현재 남미에는 콜롬비아와 파라과이를 제외하고 12개국 가운데 10개 나라에 좌파정권이 들어서 있지만 최근 들어 변화가 일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과 신자유주의 자본주의에 도전하는 각종 경제정책을 펼치려고 공동의 노력을 기울인 볼리비아, 에콰도르, 베네수엘라는 경기 부진으로 영향력이 감소해왔다.

게릴라 출신인 지우마 호세프 브라질 대통령도 저유가와 원자재 상품가 급락으로 경제가 어려워지자 탄핵 요구가 제기되면서 지지도가 한자릿수대로 떨어졌다.

전(前) 산디니스타 게릴라 지도자로 사회주의자인 다니엘 오르테가 니카라과 대통령 역시 친 기업적인 성향으로 변하면서 미국의 사랑을 받고 있다.

쿠바는 미국과의 관계를 개선 중이며 과테말라에서는 코미디언 출신으로 중도성향 정치 신인인 지미 모랄레스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우루과이에서도 마리화나 합법화와 같은 진보적인 정책과 금욕주의적인 생활로 유명한 게릴라 출신 호세 무히카 전 대통령이 의사 출신인 타바레 바스케스 현 대통령으로 교체됐다.

WP는 남미 전반에 걸쳐 사회복지 정책 지출이 여전히 많지만 이전과 달리 사회복지정책에 대한 담론의 목소리가 점차 부드러워지고 있다고 전했다.

워싱턴 소재 싱크탱크인 인터 아메리칸 다이얼로그(IAD)의 마이클 쉬프터 소장은 "우리는 조류나 파도와 같은 변화의 움직임을 보고 있다"며 "남미 좌파 정권들은 경제적 생계를 지속할 능력이 없다"고 지적했다.

쉬프터 소장은 이어 "급진 좌파들이 많이 사용하는 수사인 경제상황의 함수가 많은 남미 좌파국가들에서 극적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국기헌 기자 penpia21@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