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짱 토론] 금리 추가인하 해야 하나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지난 12일 기준금리를 현 수준(연 1.5%)에서 동결했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지금까지는 성장 모멘텀(동력)을 살리는 것이 시급했지만 이제는 한계기업 구조조정도 병행할 때”라고 말했다. 저금리 부작용이 큰 데다 다음달 미국 금리 인상이 유력하다고도 지적했다. 시장에선 ‘더 이상 추가 인하는 어렵다’는 신호로 받아들였다.

이 총재가 지난해 4월 취임한 이후 한은은 올 6월까지 네 차례 금리를 내렸다. 하지만 기대했던 경기회복세는 미미했다. 한은은 올해 성장률이 2.7%로 작년(3.3%)보다 더 떨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때문에 일부에선 금리 인하가 아직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손성원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석좌교수는 최근 세계경제연구원 세미나에서 “한은은 최대한 빨리 금리를 0%로 낮출 필요가 있다”고 말해 금리 인하론에 불을 붙였다. 그가 말하는 통화정책의 핵심은 시장을 놀라게 해 심리를 움직이는 것이다. 한은은 가계부채보다 성장이라는 ‘큰 그림’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반면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금리 인하는 득보다 실이 많다고 맞선다. 한국경제학회 회장을 지냈던 그는 “한국은 마음껏 완화정책을 펼칠 수 있는 선진국과 상황이 다르다”고 지적한다. 가계부채와 한계기업 문제, 자본 유출 가능성 등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찬성 / 소비위축으로 디플레 우려 상황…시장 놀랄만큼 금리 큰폭 내려야

美 금리인상은 예상된 것…자본유출 있어도 통제가능


[맞짱 토론] 금리 추가인하 해야 하나
최근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한국인 10명 중 6명은 경제가 위기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비관론의 근거는 많다. 선진국과 신흥국 모두 낮은 수요와 디플레이션 우려로 고심하고 있다. 한국은 세월호 참사와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확산 등을 겪었다.

한국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단호한 통화정책이다. 한국은행은 시장에서 예측 못 한 수준까지 기준금리를 내려야 한다. 한은은 주로 0.25%포인트씩 기준금리를 내렸다. 0.5%포인트나 0.75%포인트씩은 내려야 경제심리를 끌어올릴 수 있다. 0.25%포인트 폭은 기대심리에 거의 영향을 못 미칠 뿐 아니라 얼마 없는 총알만 낭비하게 된다.

2007년 리먼브러더스 사태와 대침체 이후 미국은 세 차례 양적 완화를 시행했다. 1차 양적 완화가 가장 효과적이었다. 시장을 놀라게 했기 때문이다. 2차, 3차 양적 완화는 예상된 터라 효과가 별로 없었다. 일본에선 아베 신조 총리가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를 임명하고 대규모 완화정책을 시행했을 때 기대감이 급등했다. 돈 푸는 규모나 기준금리 수준 때문이 아니었다. 시장에 놀라움을 주느냐가 관건이었다.

큰 폭의 금리 인하에 반대하는 주장도 있다. 가계부채 급증이 우려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의 가계부채는 생각만큼 심각하지 않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지하경제 규모가 가장 큰 나라 중 하나다. 지하경제를 포함할 경우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비율은 훨씬 내려갈 것이다.
[맞짱 토론] 금리 추가인하 해야 하나
선진국과 달리 한국의 가계는 현금이나 예금, 거래 가능한 주식 등 유동적인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부채 대비 금융자산 비율은 거의 최고 수준이다. 가계는 연체율도 매우 낮다. 가계빚의 70%가량이 변동금리이므로 금리를 내리면 가계가 소비를 늘릴 수 있을 것이다.

정부가 가계부채를 정말 심각하게 여긴다면 통화정책이 아니라 거시건전성 규제로 풀어야 한다. 통화정책은 가계와 같은 세부 부문을 겨냥하기 어렵다. 전체 거시경제를 위한 ‘무딘 칼’에 가깝다.

일부에선 미국이 곧 금리를 올릴 것이므로 한국이 금리를 내려선 안 된다고 말한다. 자본 유출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미 금리 인상은 이미 예상된 것이다. 게다가 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관계자들은 금리를 급격히 올리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한국은 금융시장 급변에 대비해 3696억달러(10월 기준)의 외환보유액을 쌓아놨다. 단기외채비율도 크게 하락했다. 외국인투자자가 한국 시장에 갖고 있는 신뢰, 불어난 경제 규모를 감안할 때 자본 유출은 통제 가능할 것이다. 외환보유액은 예방의 목적도 있다. 장기적인 증가 추세 안에서 늘기도 하고 줄어들기도 해야 한다.

한은이 과감한 정책을 잇달아 쓴다면 한국 경제가 비관론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단숨에 제로 금리까지 가진 않아도 된다. 다만 기준금리 인하폭은 시장을 놀라게 할 정도로 커야 한다. 통화정책은 무딘 칼이라서 어떤 부문엔 예상치 못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하지만 한은은 ‘큰 그림’에 집중해야 한다. 가계부채보다는 성장과 인플레이션 관리에 신경써야 한다. 물론 중앙은행 혼자 모든 경제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구조개혁과 같은 장기정책도 수반돼야 한다.

반대 / 금리 내렸는데도 부동자금 급증, 가계부채·좀비기업만 더 늘어나

과도한 양적완화 땐 자본유출 우려…수출효과도 미지수


[맞짱 토론] 금리 추가인하 해야 하나
미국의 금리 인상 가능성이 가시화하고 있다. 미국 경제가 살아나는 조짐이지만 한국 경제는 내년에도 저성장을 이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더 내려야 한다는 주장이 여기서 나온다. 하지만 정책 결정은 신중해야 한다. 추가적인 금리 인하는 한국 경제에 큰 부담을 줄 것으로 우려되기 때문이다.

우선 금리를 인하해도 내수경기가 되살아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소비가 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가계의 소비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고령화 시대에 은퇴 이후 소득은 여전히 낮고 주거비 등 생활비용은 높다.

투자가 늘어나지 않는 데도 구조적 원인이 있다. 주력 산업의 근거지가 중국으로 옮겨가고 있는데 한국에서 이를 대체할 신성장동력은 보이지 않는다. 가계와 기업은 미래를 보고 소비와 투자를 결정한다. 따라서 미래가 불확실한 지금은 금리를 내린다고 해도 내수가 살아나기 어렵다. 한은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올 들어 9월까지 단기부동자금은 전년 동기보다 21% 급증한 921조8000억원에 달했다. 금리를 내렸는데도 돈이 투자처를 찾지 못해 떠돌고 있다는 의미다.

저금리는 통화가치를 떨어뜨린다. 한은이 지난해부터 기준금리를 네 차례 낮췄지만 실질 통화가치는 크게 떨어지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는 소비자물가가 적게 올랐기 때문이다. 부동산 가격 상승세를 감안하면 통화가치는 이미 크게 하락했다. 이 상황에서 금리를 더 내리면 통화가치 하락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고 부동산 거품이 형성될 가능성이 있다. 향후 금리가 오를 때 거품이 붕괴하면 금융 부실을 낳게 된다.
[맞짱 토론] 금리 추가인하 해야 하나
저금리는 가계부채를 늘린다. 지난해와 올해 금리 인하 후 주택담보대출이 급증하면서 지난달 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역대 최대치인 9조원이 늘었다. 가계부채 총액은 현재 1200조원에 육박한다. 이미 가계부채는 한국 경제의 뇌관이다.

한계기업 문제도 저금리와 떼놓을 수 없다. 금리 인하로 유동성이 풍부해지자 영업이익이 나지 않는데도 대출로 이자를 갚으며 연명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금리를 더 내리면 한계기업을 솎아내긴커녕 늘리기 쉽다. 앞으로 기업 도산과 금융 부실을 낳을 가능성도 높아진다.

일본과 유럽, 중국도 돈을 풀고 있는데 우리만 예외냐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통화정책의 ‘디커플링(비동조화)’ 시대, 즉 국가별 통화정책이 엇갈리는 때인데 왜 한국만 미국 금리 인상에 민감하게 반응하느냐는 논리다.

하지만 이 주장도 반드시 옳지는 않다. 국제통화를 가진 선진국은 완화정책을 펴면 국제 외환시장에서 통화가치를 떨어뜨려 수출을 늘릴 수 있다. 하지만 한국 통화는 국제 외환시장에서 거래되지 않는 ‘비교환성 통화’다. 한국이 금리를 낮추면 주식 투자자금이 유입돼 오히려 원화가치가 오를 가능성이 있다. 이 경우 수출을 늘리는 긍정적인 효과는 기대하기 어렵다.

자본 유출 우려도 있다. 선진국은 양적 완화를 해도 국가 신뢰도가 높아 대체로 자본 유출이 심하지 않지만 신흥국은 다르다. 지나친 양적 완화를 하면 자본이 빠져나가 외환 부족을 겪을 가능성이 상존한다. 여러 위험을 감안할 때 금리 인하는 득보다 실이 높다는 분석이다. 경기가 경착륙하는 경우를 제외한다면 추가적인 금리 인하에 신중해야 한다.

김유미 기자 warmfron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