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기발한 기네스
기네스 맥주 로고에 새겨진 하프는 아일랜드의 국가 상징이다. 256년 역사의 기네스 위상이 어떤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더블린에서 작은 양조장을 운영하던 아서 기네스(Arthur Guinness)가 폐허로 방치된 곳을 헐값에 임차한 게 1759년이다. 임차 계약 기간은 놀랍게도 9000년이었다. 처음부터 발상법이 기발했다. 이렇게 출발한 세인트제임스 게이트 양조장은 10년 만에 영국 수출에 성공했고 포르투갈, 미국, 뉴질랜드에도 상륙했다. 지금은 150여개국에서 하루 1000만잔씩 팔리고 있다.

기네스의 성공은 맥주 맛 때문만이 아니었다. 이 회사에는 대대손손 가업을 물려주는 장인정신과 사회 변화를 주도하는 과감한 혁신, 진정한 문화예술 후원, 박애주의, 신앙심이 있었다. 유명한 교회 건물을 복원하고, 세계대전 중엔 전장의 군인들에게 맥주를 배달했다. 놀랄 만큼 창의적이고 발랄한 맥주 광고의 힘도 이 같은 기네스 정신에서 나왔다.

기네스 가문 자제들은 노동자와 함께 일하면서 양조 기술을 익혀 명장이 된다. 상속자들은 수습생으로 많은 시간을 보낸다. 이렇게 합리적이면서도 기발한 사고 덕분에 귀족이 됐고 남들이 생각하지 못한 아이디어를 끊임없이 실현시켰다.

세계 최고 기록을 모은 기네스북도 마찬가지다. 술자리에서 무엇이 세계에서 제일인지 얘기꽃을 피우던 것에서 출발했다. 사냥 중 날쌘 물새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하자 가장 빠른 새를 찾아보자며 시작했다는 일화도 유명하다. 기네스북은 1955년 초판 5만부가 순식간에 팔려 한 달 만에 다시 찍었고, 1984년에는 5000만부, 2004년엔 1억부를 돌파했다.

더블린 시내에 있는 기네스 스토어하우스에는 각국 관광객이 몰린다. 올해는 월드 트래블 어워드에서 ‘유럽 최고의 관광명소’로 선정됐다. 사방이 유리로 된 7층의 ‘그래비티 바’에서 맥주를 마시며 더블린 시내를 360도 파노라믹 뷰로 감상하는 맛이 일품이다. 최근엔 구글의 비즈니스 뷰를 활용한 가상 투어 서비스까지 제공하고 있다.

그런 기네스가 또 다른 변신에 나섰다. 물고기 부레로 만든 부레풀을 양조 과정에 사용하지 않고 첨단 물질로 대체하겠다는 것이다. 채식주의자들의 온라인 청원을 들어준 것이라니 이 또한 기네스 가문의 경영철학과 잘 어울린다. 제임스 조이스와 오스카 와일드 등 노벨문학상을 받은 대문호와 U2, 벤 모리슨 같은 음악가들의 영감도 이런 문화에서 싹트지 않았을까 생각하니 더욱 부럽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