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원의 화양연화] 널 밟고 안전한 삶으로 건너왔다



<편집자 주> 세상 모든 것에는 화양연화(花樣年華)가 있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했던 순간'. 누구든 무엇이든 영원할 수 없기에 화양연화는 가장 값진 기억, 가장 그리운 시절로 빛납니다.

'신세원의 화양연화'는 끝없이 흘러가는 시간에 쓸려 사라지고 잊혀지는 우리 주변의 많은 것들의 '화양연화'를 영상으로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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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사십대

다시 '이 곳'에 올 줄 상상도 못했다.

20년 전, '성공하면 죽어도, 다시는 오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곳.

# 1. 삼수 시절, 그리고 임용 시험 준비로 매일 건너던 육교.

# 2. "시험, 붙으면 그만이야"

그 꿈을 안고 이십대의 절반, 5년을 이 악물고 버텼던 곳

# 3. 새벽엔 '희망', 저녁엔 '좌절'
한발의 기대와 한발의 불안이 오르내리던 곳

# 4. 육교 위에서 화려한 세상을 내려다보면
"나만 쓸모없는 패배자" 같아 화가 났고,

# 5. 1000원짜리 몇장 든 지갑을 열 때면
고향 어머니 생각에 눈물이 났다.

울 엄마 저기서 나한테 달걀찜기를 주고 간거 생각난다.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프던 그 때.

# 6. 못난 내가 싫어서 엄마한테 더 미안했지만

찜기로 찐 달걀들 참 맛있었는데..

엄마 고마워요.

# 7. "내년 설에는 꼭 고향 가야지"

분해서 공부하고
이 길 밖에 없어 공부해서

3년만에 합격 소식을 듣던 날.

"이쪽으로는 오줌도 안 눌거야"
욕을 하고 벗어났던 곳.

# 8. 20년만에 다시 찾아온 '이 곳'

# 9. 육교 아래 헌혈하는데 아직도 있나.
배고플 때 헌혈하러 가면 아직 한 달 안 됐다고 돌아가라면서도
카스테라빵을 주던 아줌마가 계셨는데.

# 10. “된장찌개요”, “김떡순 하나요”, “디스(담배) 하나요”
하루 이 딱 3마디하며 버텼었는데..

# 11. 벌써 20년이 지났네.. 그래 20년..

# 12. "덕분에... 무사히 잘 건너 다녀서... 아들, 딸 키우며 잘 살고 있다.
너도 많이 힘들었지... 이제 그만 고생하고... 쉬어라.

정말 고맙다..노량진육교야."

#13. 뉴스래빗이 노량진육교의 마지막 모습을 남깁니다.

2015년 10월 16일 노량진육교는 마침내 뜯겨져나갔습니다.

1980년 지어진 이후부터 35년 간 한 자리를 지킨 노량진육교.

나이가 들어 여기저기 성한데 없는 노량진육교는 '안전'을 이유로 결국 사라졌습니다.

#14. 35년 간 '통행의 안전' 뿐만 아니라

'고시생 아들딸의 안전', '꿈의 안전', '삶의 안전', '미래 40대 가장의 안전' 등 '사람의 안전'을 책임져왔던 그 노량진육교의 마지막 모습입니다. 편히 잠들길(RIP).

이 기사는 노량진육교를 건넌 이들의 실제 추억을 토대로 작성됐습니다.


'뉴스래빗'은 한경닷컴 뉴스랩(Newslab)이 만드는 새로운 뉴스입니다. 토끼(래빗)처럼 독자를 향해 귀 쫑긋 세우겠습니다. '뉴스래빗'의 실험은 계속됩니다.

책임=김민성 기자, 연구=신세원 기자 tpdnjs227@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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