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원의 화양연화] 아흔살 '모닥불' 인생…사그라지는 서울 중림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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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 래빗' 화양연화…중림시장의 뒤안길
삶의 전부였던 곳, 곧 재개발로 사라질 운명
체감 영하 20도 칼바람 속 밥술 뜨며
시장상인들 오늘도 어김없이 그 자리에
삶의 전부였던 곳, 곧 재개발로 사라질 운명
체감 영하 20도 칼바람 속 밥술 뜨며
시장상인들 오늘도 어김없이 그 자리에
[편집자 주] 서울시 중구 중림동 한국경제신문사 앞 길에는 매일 이른 새벽 어(漁)시장이 열립니다. 보통 새벽 3시부터 9시까지 5~6시간 동안 좌판을 깝니다.
출근 시간인 오전 9시가 지나면 주차단속 등이 시작됩니다. 상인들은 대부분 장사를 접고 보도를 비웁니다. 그래서 이 일대를 자주 지나는 서울시민들도 새벽 시간에만 문을 여는 '중림동 수산시장'의 존재를 잘 알지 못합니다. 주변 일대 재개발로 조만간 완전히 사라질 처지에 놓였다는 사실을 아는 시민은 거의 없습니다. 100년 가까운 역사를 지닌 서울의 대표 난전의 마지막 후손격인 시장이 말입니다.
'뉴스래빗'은 지난 수십년간 매일 새벽 보도 위에 난전을 펼쳐온 상인들의 삶과 그 이야기를 '화양연화'로 기록합니다. 유례없는 초강력 한파로 체감온도가 20도 아래로 곤두박칠쳤던 그 추운 새벽에도 상인들은 어김없이 오랜 자신들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 [화양연화] 영상에서 중림시장의 애환을 바로 만나보세요.
# 이 취재 기사는 중림시장 상인들의 인생과 기억을 토대로 재구성됐습니다. 새벽 4시 반, 서울 도시가 잠든 시간. 100미터 안팎 작은 어시장 골목엔 반갑지 않은 동장군의 행패가 한창이었다.
"어우~추워!" 지난 20일 새벽 4시, 체감온도는 영하 20도까지 떨어져있었다. 이미 여러 번 겪은 추위지만 적응하기 힘든 건 마찬가지. 이럴 땐 모닥불이 제 격. 상인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여기저기 모닥불을 피운다. 곳곳에 '타닥타닥' 장작 타는 소리가 요란하다.
널빤지나 지푸라기. 온기(溫氣)를 모을 수 있는 건 죄다 구멍 뚫린 양철통에 모아 넣는다.
모닥불 주변으로 어느새 주변 상인들이 모여든다. 지금은 둘 또는 셋이 고작이지만 예전엔 수십 명 모였던 시장이다.
그러나 이젠 머지않아 세월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상인들은 모닥불을 쬐며 잠시 생각에 잠긴다. 18세기 후반. 칠패시장(중림동 수산시장의 전신)은 이현(梨峴),종가(鐘街:종로)와 함께 서울 3대 난전(亂廛)으로 이름 날렸다. ‘도깨비’ 또는 ‘도떼기시장’이라 불리며 중림동 수산시장엔 많은 사람들이 몰렸다.
상인들은 새벽에 나와 아침에 퇴근하는 불규칙한 생활에 지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날개 돋친 듯 팔리는 생선들 덕에 힘든 줄 몰랐다. 한 상인은 "내가 힘들어도 자식 잘 될 것이란 생각에 행복했으니까"라고 회상했다. 일주일에 하루 쉬며 번 돈으로 아이 셋 대학까지 보냈다. 그게 부모의 ‘의무’라고 생각했고 40년의 세월이 흘렀다. "지금은 시장이 완전히 죽었어"라는 상인의 무덤덤한 한마디가 세월의 무상함을 대변했다.
1972년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부인이었던 육영수 영부인은 어시장이 서울역 뒤 시내 한복판에 있어 도시 미관상 좋지 않다는 의견을 냈다고 한다. 이후 농산물 시장은 가락동으로, 수산물은 노량진으로 이사갔다. 지금 남은 중림 어시장은 그 때 이 곳을 떠나지 못한 상인들이 명맥을 잇고 있다. 어시장 규모는 계속 줄어들어 이제 100미터도 채 시장거리가 남지 않았다.
얼마 전엔 박원순 서울시장이 찾아와 “죽은 상권을 살리겠다”며 '재개발' 약속을 하며 돌아갔다. 주변 행인은 많은데 허름한 시장은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옆집 동료가 한숨 섞인 말투로 내게 말했다. "으휴. 젊을 땐 젊어서 고생하고 늙으면 늙어서 고생하네."
맞다. 세월의 풍파 속 움푹 들어간 주름이 만져졌다. ‘인내’라는 기나긴 터널을 빠져 나왔지만 숨고르기만 할 뿐 내가 쉴 곳은 없어보였다.
"그냥 힘닿는 데까지 할 뿐이다. 배운 게 이것밖에 없으니. 나이 먹으면 편하게 살 줄 알았는데." 오늘도 칼바람 속에서 밥숟갈을 뜨며 모닥불처럼 묵묵히 살아갈 뿐.
"잠시만 화를 삭히자 칼바람아
조금만 힘내자 장작아
천천히 식자 국물아
팔려라 명태야
가만있자 자릿세야
찬데 앉아 밥 빨리 먹기는 경력 수십년차 달인이다
김치 쪼가리 하나 없는
국에 만 밥이 전부잖아
먼지 날리는 길가잖아
그러니 칼바람아
조금만 쉬었다 가라
조금 더 힘내라 장작아
5분만 아니 잠시만"
서울역 일대 종합발전계획에 따라 중림동 일대는 재개발을 앞두고 있습니다.
현재 중림시장에서 생계를 이어가는 상인은 50 여 명 정도. 이들은 여기에서 평균 20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서울시 측은 "정식 시장으로 인정받지 못한 중림동 수산시장은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100년 가까운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진 중림동 수산시장. 이젠 새벽녘에 타오르던 '모닥불' 모습을 다신 못 볼 수도 있습니다. '다크 래빗(Dark Lab-it)'은 부조리한 사회 구석구석의 면면을 진중하고, 어두운 색체로 주시하는 '뉴스래빗'의 새 제작 브랜드입니다. 많은 기대 부탁드립니다.
'뉴스래빗'의 다른 실험적 콘텐츠를 만나보세요.
책임 = 김민성 기자 연구 = 신세원 한경닷컴 기자 tpdnjs0227@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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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newslab@hankyung.com
출근 시간인 오전 9시가 지나면 주차단속 등이 시작됩니다. 상인들은 대부분 장사를 접고 보도를 비웁니다. 그래서 이 일대를 자주 지나는 서울시민들도 새벽 시간에만 문을 여는 '중림동 수산시장'의 존재를 잘 알지 못합니다. 주변 일대 재개발로 조만간 완전히 사라질 처지에 놓였다는 사실을 아는 시민은 거의 없습니다. 100년 가까운 역사를 지닌 서울의 대표 난전의 마지막 후손격인 시장이 말입니다.
'뉴스래빗'은 지난 수십년간 매일 새벽 보도 위에 난전을 펼쳐온 상인들의 삶과 그 이야기를 '화양연화'로 기록합니다. 유례없는 초강력 한파로 체감온도가 20도 아래로 곤두박칠쳤던 그 추운 새벽에도 상인들은 어김없이 오랜 자신들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 [화양연화] 영상에서 중림시장의 애환을 바로 만나보세요.
# 이 취재 기사는 중림시장 상인들의 인생과 기억을 토대로 재구성됐습니다. 새벽 4시 반, 서울 도시가 잠든 시간. 100미터 안팎 작은 어시장 골목엔 반갑지 않은 동장군의 행패가 한창이었다.
"어우~추워!" 지난 20일 새벽 4시, 체감온도는 영하 20도까지 떨어져있었다. 이미 여러 번 겪은 추위지만 적응하기 힘든 건 마찬가지. 이럴 땐 모닥불이 제 격. 상인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여기저기 모닥불을 피운다. 곳곳에 '타닥타닥' 장작 타는 소리가 요란하다.
널빤지나 지푸라기. 온기(溫氣)를 모을 수 있는 건 죄다 구멍 뚫린 양철통에 모아 넣는다.
모닥불 주변으로 어느새 주변 상인들이 모여든다. 지금은 둘 또는 셋이 고작이지만 예전엔 수십 명 모였던 시장이다.
그러나 이젠 머지않아 세월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상인들은 모닥불을 쬐며 잠시 생각에 잠긴다. 18세기 후반. 칠패시장(중림동 수산시장의 전신)은 이현(梨峴),종가(鐘街:종로)와 함께 서울 3대 난전(亂廛)으로 이름 날렸다. ‘도깨비’ 또는 ‘도떼기시장’이라 불리며 중림동 수산시장엔 많은 사람들이 몰렸다.
상인들은 새벽에 나와 아침에 퇴근하는 불규칙한 생활에 지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날개 돋친 듯 팔리는 생선들 덕에 힘든 줄 몰랐다. 한 상인은 "내가 힘들어도 자식 잘 될 것이란 생각에 행복했으니까"라고 회상했다. 일주일에 하루 쉬며 번 돈으로 아이 셋 대학까지 보냈다. 그게 부모의 ‘의무’라고 생각했고 40년의 세월이 흘렀다. "지금은 시장이 완전히 죽었어"라는 상인의 무덤덤한 한마디가 세월의 무상함을 대변했다.
1972년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부인이었던 육영수 영부인은 어시장이 서울역 뒤 시내 한복판에 있어 도시 미관상 좋지 않다는 의견을 냈다고 한다. 이후 농산물 시장은 가락동으로, 수산물은 노량진으로 이사갔다. 지금 남은 중림 어시장은 그 때 이 곳을 떠나지 못한 상인들이 명맥을 잇고 있다. 어시장 규모는 계속 줄어들어 이제 100미터도 채 시장거리가 남지 않았다.
얼마 전엔 박원순 서울시장이 찾아와 “죽은 상권을 살리겠다”며 '재개발' 약속을 하며 돌아갔다. 주변 행인은 많은데 허름한 시장은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옆집 동료가 한숨 섞인 말투로 내게 말했다. "으휴. 젊을 땐 젊어서 고생하고 늙으면 늙어서 고생하네."
맞다. 세월의 풍파 속 움푹 들어간 주름이 만져졌다. ‘인내’라는 기나긴 터널을 빠져 나왔지만 숨고르기만 할 뿐 내가 쉴 곳은 없어보였다.
"그냥 힘닿는 데까지 할 뿐이다. 배운 게 이것밖에 없으니. 나이 먹으면 편하게 살 줄 알았는데." 오늘도 칼바람 속에서 밥숟갈을 뜨며 모닥불처럼 묵묵히 살아갈 뿐.
"잠시만 화를 삭히자 칼바람아
조금만 힘내자 장작아
천천히 식자 국물아
팔려라 명태야
가만있자 자릿세야
찬데 앉아 밥 빨리 먹기는 경력 수십년차 달인이다
김치 쪼가리 하나 없는
국에 만 밥이 전부잖아
먼지 날리는 길가잖아
그러니 칼바람아
조금만 쉬었다 가라
조금 더 힘내라 장작아
5분만 아니 잠시만"
서울역 일대 종합발전계획에 따라 중림동 일대는 재개발을 앞두고 있습니다.
현재 중림시장에서 생계를 이어가는 상인은 50 여 명 정도. 이들은 여기에서 평균 20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서울시 측은 "정식 시장으로 인정받지 못한 중림동 수산시장은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100년 가까운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진 중림동 수산시장. 이젠 새벽녘에 타오르던 '모닥불' 모습을 다신 못 볼 수도 있습니다. '다크 래빗(Dark Lab-it)'은 부조리한 사회 구석구석의 면면을 진중하고, 어두운 색체로 주시하는 '뉴스래빗'의 새 제작 브랜드입니다. 많은 기대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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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 = 김민성 기자 연구 = 신세원 한경닷컴 기자 tpdnjs0227@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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