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에서 독재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전 대통령의 아들이 부통령 선거에 출마하는 것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마르코스 가문이 과거사에 대한 반성과 사죄 없이 또다시 정권을 넘보기 때문이다.

마르코스 전 대통령의 아들인 마르코스 주니어(58) 상원의원은 최근 "정치 운명을 국민의 손에 맡기겠다"며 내년 5월 대통령 선거와 함께 치러지는 부통령 선거에 출사표를 던졌다.

2010년 상원의원에 당선된 그는 7일 현지 언론에 "운 좋게도 마르코스로 태어났다"며 마르코스 전 대통령에 대한 향수가 선거전에 도움을 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그러나 마르코스 전 대통령의 독재와 인권 탄압에 대해서는 사과 없이 오히려 옹호하는 발언을 했다.

마르코스 주니어는 "불가피했고 큰 그림자를 드리웠다"며 "아버지는 다른 시대의 산물이었고 나는 다른 세대의 산물"이라고 말했다.

또 마르코스 전 대통령 시절에 이뤄진 일들은 역사가의 손에 맡길 것이라고 덧붙였다.

마르코스 전 대통령은 1965년 당선된 뒤 1972년 계엄령을 선포하며 독재자의 길로 들어갔다.

그는 1986년 민중봉기로 사퇴하고 하와이로 망명해 1989년 72세를 일기로 숨졌다.

그의 부인 이멜다는 심한 낭비벽 탓에 '사치의 여왕'으로 불렸다.

그럼에도 2013년 총선에서 이멜다는 하원 의원에 당선되고 딸 이미는 일로코스 노르테 주지사에 재선되는 등 마르코스가는 정치적 영향력을 계속 발휘했다.

마르코스 주니어가 부통령 선거를 차차기 대권을 노리는 징검다리로 삼는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이번에 마르코스 주니어의 대선 출마를 원했던 이멜다는 그의 부통령 선거 출마 결정에 실망감을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마르코스 주니어의 행보에 대한 반발도 커지고 있다.

과거 계엄 당시 구속됐던 인권침해 피해자들 모임(SELDA)의 보니파시오 일라간 부회장은 "마르코스 주니어의 부통령 출마는 계엄 시대 무수한 희생자와 자유를 사랑하는 국민에게 탐욕과 독재의 부활에 강력히 저항하라고 울리는 나팔 소리"라고 말했다.

마르코스 전 대통령 집권 시절 실종자들의 가족모임인 '파인드'(FIND)의 닐다 라그만 세빌라 대표는 여전히 많은 국민이 실종 상태에 있을 정도로 고통이 지속되고 있다며 '반마르코스' 운동을 예고했다.

(하노이연합뉴스) 김문성 특파원 kms1234@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