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ERI 경영노트] 엔론 파산의 교훈…조직 내 '금기'를 양지로 끌어내라
과거 엔론(Enron)사의 에너지 트레이더 집단은 그야말로 성역이었다. 그들을 향한 비판과 견제는 조직의 금기, 즉 터부(taboo)였다. 투자지침 위반과 횡령 등 트레이더 집단에 쏠린 의혹이 많았지만 금기를 깨가며 지적할 만큼 용기 있는 사람은 없었다. 모두 쉬쉬하며 넘어갔다. 거리낄 것 없는 치외법권 속에서 트레이더들은 도박에 가까운 투기를 일삼았다. 결국 회사는 파산이라는 가혹한 대가를 치르고 말았다.

낯선 이야기가 아니다. 엔론처럼 성역으로부터 무너진 조직은 물론 현실과 동떨어진 최고경영자의 어록을 절대적인 신탁(神託)처럼 받들다 뒤처진 조직, 상급자들이 싫어하는 내용을 금기로 여겨 숨기다 화를 당한 조직도 드물지 않다. 합리성에 기반한 현대 조직들도 터부와 금기의 족쇄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터부는 공식적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영향은 무시할 수 없다. 많은 사람이 터부를 깨기보다 자기검열을 하며 피하는 쪽을 택한다. 그것이 편하기 때문이다. 자연스레 터부시되는 것은 논의 대상이나 대안에서 제외되고 생각의 폭은 좁아진다. 때로는 구성원들이 터부를 핑계로 악용한다. 금기라는 이유를 들어 어렵고 힘든 일을 피하는 것이다. 이처럼 터부는 종종 실행과 창의를 가로막는다. 변화와 혁신을 방해하는 ‘알박기’가 되는 것이다.

특히 권위적이고 위계질서가 강한 한국의 조직들은 터부에 더욱 주의해야 한다. ‘윗사람’들이 불편해할 이야기를 알아서 피하는 과정에서 터부가 생길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모든 터부를 없앨 필요는 없다. 조직의 경험과 지혜를 담은 터부들도 있다. 스탠퍼드대의 로버트 서튼(Robert Sutton) 교수가 말한 바와 같이, 조직은 신성시하는 행동과 금기(taboo)가 되는 행동을 확실히 밝혀야 한다. 터부를 음지에서 양지로 끌어내야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은밀한 터부들을 터놓고 이야기할 장을 마련하는 것이 먼저다. 어떤 터부가 있는지 확인해야 옥석을 가려 방향을 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03년 IBM은 당시 대표이사(CEO) 사무엘 팔미사노(Samuel Palmisano)의 주도로 ‘Value Jam’이라는 이름의 토론을 진행했다.

전 세계 임직원이 72시간에 걸쳐 회사 가치와 방향을 주제로 인트라넷에서 자유롭게 토론한 것이다. 주제는 제한이 없었다. 토론 초반에는 ‘경영진은 주가만 챙긴다’는 등 비난이 폭주했지만 경영진은 이를 겸허히 받아들이며 토론을 지속했다. 점차 방향이 바뀌어 갔다. 구성원들은 보존할 문화와 버려야 할 문화를 건설적으로 논의하기 시작했다. 회사는 여기서 도출된 솔직한 의견들을 바탕으로 회사의 방향성을 설정했다. 속을 터놓은 구성원들은 환영했다.

앞서 나가는 조직은 터부를 공식적으로 드러내 구성원을 이끌기도 한다. 신입 개발자를 대상으로 한 페이스북(Facebook)의 교육 프로그램인 ‘Bootcamp’ 과정이 그 예라고 할 수 있다. 이 과정의 목적은 단순한 지식 전달이 아니다. 회사의 금기인 ‘완벽함에 집착하는 느린 일처리’를 분명히 밝힘으로써 바람직한 행동인 ‘고정관념을 깨는 신속한 일처리’를 이끌어 내는데 초점을 둔다. 금기와 바람직한 행동을 잘알고 있는 현업 개발자들이 과정을 이끌게 함으로써 교육의 실질성을 높이고 있다. 신입들은 실무 선배들이 6주간 보여주는 모습을 관찰하며 해야 하는 행동과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을 배운다. 터부를 분명히 밝혀 구성원의 행동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끄는 것이다.

조직의 나쁜 터부들은 대부분 과거와 조직의 내부를 지향하고 있다. 미래와 고객을 향한 진취적인 금기는 드물다. 따라서 터부의 지배를 받는 조직은 과거를 향하게 되고 고객으로부터는 멀어진다. 조직이 터부를 경계해야 하는 이유다. 미신과 터부를 극복하지 못한 사회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기업도 다르지 않다. 터부에 사로잡힌 조직의 마지막 금기는 결국 성공 자체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