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ERI 경영노트] 준비된 기업이 버릴 수 있다
생존이 점점 어려워지는 불확실한 환경에서 기업들은 살아남기 위해 선택과 집중을 통해 변신을 꾀하고 있다. 잘할 수 있는 분야에 집중하고 나머지는 과감히 버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장수하는 글로벌 기업들은 꾸준히 선택과 집중을 통해 경쟁 기업과 차별화하며 고객가치를 만들어냈다. 이들은 어떤 원칙과 준비로 버림을 실천했을까.

2015년 4월 제너럴일렉트릭(GE)은 금융부문을 매각 또는 분사하는 형태로 최대 75%까지 정리하겠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9월 가전사업을 매각한 데 이어 2013년 그룹 전체 수익의 55%를 내는 금융부문까지 정리하기로 한 것이다. 제프리 이멜트 회장은 “저성장과 낮은 금리, 풍부한 유동성, 투자자들의 고수익 추구 등 지금이 금융부문을 매각하기에 가장 이상적인 시기”라고 말했다. GE가 이처럼 버림의 미학을 성공적으로 실천할 수 있던 것은 잭 웰치 시절부터 원칙으로 자리 잡아온 ‘1등 아니면 2등’ 전략이 큰 힘을 발휘했다고 볼 수 있다.

웰치는 1등이나 2등이 아니면 도태시킨다는 경영철학으로 150개가 넘는 사업 분야를 12개 사업군으로 재편성했다. 웰치가 재임하던 20년 동안 매출이 270억달러(1981년)에서 1259억달러(2001년)로 늘어났고 주가는 40배 이상 뛰었다. GE는 “무엇을 버릴 것인가”에 대한 확고한 원칙을 갖고 객관적인 입장에서 수시로 사업재편을 수행한다.

2014년 5월 독일 지멘스는 ‘지멘스 비전 2020’을 발표했다. 핵심 내용은 전력화, 자동화, 디지털화 분야에 대한 집중 투자와 이에 맞춘 조직개편을 단행한다는 것이다. 같은 해 9월엔 가전사업 철수와 함께 미국 에너지 장비업체인 드레서랜드 인수를 발표했다. 이런 과감한 결정이 가능했던 것은 지멘스가 끊임없는 사업 재편으로 선택과 집중을 체화한 기업이기 때문일 것이다. 사업 재편 과정에서 엿볼 수 있는 지멘스의 특징 중 하나는 자사 제품과 독점 기술 노하우를 먼저 분석해 장기 성장과 고수익 관점에서 판단한다는 점이다. 이런 과정에서 ‘미래의 그림(PoF·picture of future)’이라 불리는 정교하고 정확도 높은 고유의 미래예측 연구기법을 활용한다. 매년 2회 발간하는 PoF 보고서는 각 산업에 대한 트렌드와 미래 전망, 시나리오, 전문가 인터뷰 등을 담고 있다. 이를 통해 관련 분야의 최신 연구와 사업 동향은 물론 지멘스가 바라본 미래 사회와 기술까지 파악할 수 있다.

1836년 철강업체로 시작한 슈나이더는 산업혁명에 맞춰 중장비 철도 조선 등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전쟁으로 혼란스럽던 19세기 초에는 군수사업에도 참여했다. 빠른 속도로 사업영역을 넓혀가던 슈나이더는 2차 세계대전 이후 군수, 중공업, 철강 등의 핵심 사업에서 과감히 철수하고 미래 주력사업으로서 전기설비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1990년대 전기설비 제조업체로 전성기를 맞이한 슈나이더는 에너지관리 분야에 눈을 돌리면서 다시 한번 과감하게 변신했다. 매출이 꽤나 컸던 전력사업에서 손을 떼고 전력관리 회사로 거듭난 것이다. 변신의 성공 비결에 대해 장파스칼 트리쿠아르 최고경영자(CEO)는 “변화를 꿈꾸는 기업은 소비자가 원하는 것을 따라가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말한다. 슈나이더는 “전기 시스템을 자동화해 달라” “전기 시스템을 더 효율적으로 운영하고 싶다” 등 소비자의 요구사항에 귀 기울이며 에너지관리 분야라는 해답을 찾았다.

용기 있는 기업들의 ‘버림’은 외부환경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뤄지거나 비용 절감 차원에서 일어나는 하나의 이벤트가 아닌 오랜 기간 고민과 준비 끝에 내린 ‘그들의 내일’에 대한 결론이다. 버릴 수 있는 용기는 이런 결론에 대한 확신에서 나온다. ‘버림’은 준비된 자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