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말러 그리고 '카르페 디엠'
순간이 모여 하루가 되고, 하루가 모여 1년이 되고, 그렇게 모인 세월은 인생이 된다. 필자는 사진과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순간’이란 짧은 시간에 대한 몇몇 아쉬운 기억이 짙게 남아 있다.

지난해 어느 가을날 강가를 걷고 있을 때였다.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 위를 스치는 노을의 붉은 빛과 강물이 어우러진 주변 경관이 정말 아름다웠다. 하지만 자동차에 있는 카메라를 가지러 간 그 짧은 시간, 그토록 아름다웠던 장면은 사라져버렸다.

음악에 대한 기억은 더욱 아쉽다. 10여년 전 서울에서 늦은 밤 홀로 운전할 때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구스타프 말러의 5번 교향곡을 잊을 수 없다. 레너드 번스타인이 지휘하는 오케스트라의 아름다운 음악, 도시를 밝히는 화려한 불빛, 강물에 비친 달그림자의 조화는 일에 지친 중년 남자의 가슴을 뜨겁게 했다. 그때의 감동을 잊지 못해 번스타인이 지휘한 말러의 교향곡 음반을 사서 다시 들어봤다. 하지만 똑같은 곡인데도 필자에겐 그때의 곡이 아니란 사실이 당혹스러웠다. 주변 환경과 필자의 마음이 그때와 달랐기 때문이다.

‘카르페 디엠(Carpe diem)’이 주는 메시지가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는다. 현재에 충실하고, 그렇게 살기 위해 늘 준비돼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갈대숲의 아름다운 정경이 눈앞에 펼쳐졌을 때, 카메라가 있었다면 그 순간을 절대 놓치지 않았을 것이다. 말러의 아름다운 음악을 느낄 수 있는 분위기와 필자의 준비된 마음이 없었다면 그 뜨거웠던 음악의 감동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필자는 지금도 순간순간 최선을 다하고 뜨겁게 살아가려 노력한다.

지금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하지 않고, 준비 없이 보낸다면 자신에게 다가온 기회를 잡지 못한다.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선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뜰 거야”란 명대사가 나온다. 이 명대사를 그저 막연한 희망과 자기합리화, 현실 도피를 위해 인용하는 사람들을 종종 본다.

하지만 이 대사는 주인공 스칼렛이 떠나간 사랑 레트를 되찾기 위해 고향 타라로 돌아가겠다는 치열한 현실인식과 계획을 세운 데서 비롯된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오늘에 충실하고, 늘 준비된 삶을 살아야 앞으로 올 많은 기회와 희망이 바람과 함께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문철상 < 신협중앙회장 mcs@cu.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