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원동 전 청와대 경제수석이 지난 9일 서울 여의도 자본시장연구원에 있는 사무실에서 자신의 저서 ‘경제는 게임이다’를 펼쳐 들고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신경훈 기자 nicerpeter@hankyung.com
조원동 전 청와대 경제수석이 지난 9일 서울 여의도 자본시장연구원에 있는 사무실에서 자신의 저서 ‘경제는 게임이다’를 펼쳐 들고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신경훈 기자 nicerpeter@hankyung.com
박근혜 정부에서 초대 청와대 경제수석을 지낸 조원동 중앙대 석좌교수(59)가 책을 냈다. 경제수석을 마친 지난해 6월 이후 줄곧 대학 강단에 서면서 연구한 결과물을 묶은 것이다. 제목은 ‘경제는 게임이다’(한국경제신문 펴냄). 35년간 관료로 일하며 겪은 여러 가지 경제 현상을 ‘게임이론’으로 풀어쓴 현장경제 교과서다. 특히 1997년 외환위기를 전후로 우리 경제의 구조 변화를 가져온 개혁 조치들에 직접 참여한 당사자로서 당시 현장의 얘기를 새로운 각도에서 풀어냈다. 기업 구조조정과 빅딜(사업 맞교환), 대우그룹 해체 과정의 이면도 게임이론 시각에서 재해석했다. 그러면서 현재 한국 경제가 당면한 산업 및 기업 구조조정 과제에도 상당히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했다. 지난 9일 2학기 강의 준비에 바쁜 조 전 수석을 만나 책에서 다룬 경제 현안과 지금의 시사점에 관해 얘기를 들어봤다.

▷경제 현상을 분석하는 방법론으로 게임이론을 선택한 이유가 뭔가요(조 전 수석은 영국 옥스퍼드대 유학 시절 한국의 자동차산업을 게임이론으로 분석한 논문을 써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오랜 기간 정책을 펴온 경험에 비춰보면 압축 성장한 우리 경제엔 숙명적으로 정치가 깊게 배어 있어요. 지금까지도 정치논리에 경제가 휘둘리기 일쑤죠. 가능한 한 정치를 빼고 경제를 전진시킬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게임이론에 생각이 미친 게 바로 이 지점입니다.”

▷게임이론이 정치에 의해 왜곡된 경제 현상을 제대로 보여주는 방법이란 얘긴데요, 왜 그렇습니까.

“게임이론의 해법은 나와 상대방을 동시에 고려해야만 구할 수 있습니다. 나 혼자만의 이익을 극대화하다가는 모두 망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죠. 게임이론은 시장의 플레이어(경제 주체)가 누군지, 플레이어들이 구사하는 전략은 무엇인지, 이해관계는 어떤지 등 사실관계를 정확히 파악해 게임의 규칙을 찾아내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게임이론은 진영논리와는 다르죠. 누가 옳고 그르냐의 가치 판단을 배제하고 경제 현실에 기초해 최적의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입니다. 한마디로 게임이론은 정치논리, 진영논리를 제거한 경제의 민낯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이죠.”

▷정책입안자 입장에서도 게임이론이 필요하겠습니다.

“당연합니다. ‘죄수의 딜레마’ 이론에서 개인끼리만 내버려두면 서로 비타협적으로 갈 수밖에 없고, 결국 모두가 지는 게임을 합니다. 정책결정자라면 사회 구성원의 이해관계를 토대로 각각 취할 수 있는 선택을 예측해 개인의 사익 추구가 서로 ‘윈윈(win-win)’ 상황으로 갈 수 있도록 연결해주는 고민을 해야 합니다. 사익 추구 결과가 공익에 최대한 가깝게 갈 수 있도록 게임의 규칙을 만들어주는 것, 공직의 창의성은 여기에서 나온다고 봅니다.”

▷책에서 외환위기 당시 추진된 기업 간 빅딜에 대해 ‘절반의 실패’라고 평가했는데, 이유가 뭔가요.

“당시 빅딜에 포함된 9개 업종 중 실제 성과를 낸 것은 4개 업종에 불과했습니다. 현대와 삼성 간 석유화학 빅딜, 삼성자동차와 대우전자 맞교환 등이 대표적인 실패 사례죠. 반도체 빅딜도 지금은 성공했지만, 당시 LG반도체와 현대전자가 합병한 하이닉스가 2년도 안돼 채무불이행을 선언해야 할 정도로 재무 상황이 나빠졌습니다. 왜 이런 뼈아픈 결과를 초래했을까요. 정부가 무리하게 개입했기 때문입니다. 정부가 중간에 끼면서 게임의 성격이 바뀌고 두 기업은 서로 상대방이 정부의 압력에 먼저 굴복하길 기다리는 비타협적인 상황이 된 것이죠. 버티면 더 큰 이윤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인데, 게임이론에서의 ‘죄수의 딜레마’ 상황이 벌어진 것입니다. ”

▷그렇다면 빅딜이 이뤄진 업종 중 성과를 낸 것은 비결이 뭡니까.

“철도차량(합병 후 현대로템)과 항공기(합병 후 한국우주항공) 업종이 대표적입니다. 이들 업종이 성공한 이유는 초과 잉여시설을 줄였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한국우주항공(KAI)은 현대정공 대우중공업 한진중공업 등 3개 회사를 합쳐 경남 사천으로 생산시설을 다 몰고 나머지 공장은 팔았습니다. 잉여설비를 처분하고 나니 생산량이 절반 정도로 줄었죠. 하지만 나중에 수요가 살아날 때를 대비해 공장은 완전 가동했습니다. 그것이 결과적으로 회사가 더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됐던 것이죠. 이 점이 지금 공급 과잉에 처한 조선 해운 등의 산업 구조조정에도 중요한 함의가 있다고 봅니다.”

▷어떤 함의가 있습니까.

“경제의 공급 능력이 100이라고 가정해 봅시다. 그런데 수요가 50으로 줄었어요. 수요 감소가 짧은 기간이면 기다리는 게 답이죠. 하지만 오래간다면 공급을 줄여야 합니다. 방법은 두 가지죠. 회사 수는 그대로 두고 공급능력만 절반씩 줄이는 것이 있고, 아예 회사를 합쳐 절반으로 줄이면서 공장은 완전 가동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생산성 측면에서는 당연히 후자가 낫습니다. 효율성을 유지하고 있어야 나중에 수요가 살아날 때 곧바로 따라잡을 수 있거든요. 하지만 지금 조선업을 보면 성동조선은 수출입은행이, STX조선은 산업은행이, SPP조선은 우리은행이 각각 갖고 있으면서 생산시설만 줄였어요. 당연히 가동률은 떨어지고, 나중에 수요가 돌아와도 원기 회복에 필요한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이죠.”

▷기업 간 인수합병을 추진해야 한다는 말씀인가요.

“나는 그게 맞다고 봅니다. 조선업은 채권은행들이 갖고 있는 중소 조선사들의 자산을 한꺼번에 합치면 돼요. 자산관리회사를 만드는 것도 방법입니다. 물론 그렇게 하려면 비용이 들죠. 자산을 합치는 과정에서 감자(자본금을 줄이는 것) 등으로 채권은행에는 손실을 인식시켜야 합니다. 조선사 노조 반발도 만만치 않을 것입니다. 이런 장벽을 넘으려면 결국 누군가 책임 있는 주체가 나서 ‘자 이렇게 갑시다’라고 나와야 합니다. 그게 나와야 시장이 믿고 따를 수 있죠.”

▷그 결단은 누가 해야 합니까.

“당연히 정부가 해야 합니다.”

▷지금 정부는 어떤지요.

“과거 빅딜 추진 과정에서 섣부른 개입에 따른 실패 탓인지 최근 들어 산업 구조조정에 정부의 역할은 아예 실종돼버린 것 같아요. 물론 지금은 과거와 달리 정부가 민간을 조정할 수 있는 수단이 많이 줄긴 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손을 놓고 있어선 안 됩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당장 위기에 처한 조선산업은 정부가 큰 밑그림을 갖고 접근해야 합니다. 중소 조선사도 그렇지만,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등 ‘빅3’도 저대로 두면 안 됩니다. 세계 최고 선박건조 기술을 믿고 해양플랜트 시장에 뛰어들었지만 엔지니어링 기술이 부족한 데다 시장 침체, 과당 경쟁 등으로 조 단위의 손실을 입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지금 와서 그만둘 수도 없고 설계기술을 확보하려면 해외 엔지니어링 회사를 사야 하는데, 지금 3사 경쟁 체제로 가면 값만 천정부지로 올라갑니다. 연구개발력을 키우면서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지금의 3사 체제로는 안 됩니다. 과거 LG와 현대의 반도체 사업을 하이닉스로 합친 이유도 연구개발에 집중하자는 뜻이었거든요. 결과적으로 지금 하이닉스는 성공하지 않았습니까.”

▷외환위기 당시처럼 정부가 나서 빅딜을 하자는 것인가요.

“그건 아닙니다. 업계에서 자연스럽게 딜이 일어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해주자는 것이죠. 우선 당장 급한 대우조선의 구조조정을 3사 간 전략적 제휴의 계기로 활용해야 합니다. 가령 대우조선 구조조정회사를 세워 대주주인 산업은행 말고도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이 돈을 ‘태울’ 수 있도록 하는 것이죠. 산은 등 채권금융기관은 채무의 출자전환으로 들어가고, 나머지 두 회사는 주식교환 형식으로 참여하는 방식이죠. 물론 그 과정에서는 기존 주주의 손실이 불가피하고, 공적 자금을 훼손했다는 비판이 나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일종의 혈세나 다름없는 산은 증자분에 대한 손실을 감수하면서까지 내린 결정이라면 노조가 마냥 반대만 할 수 있을까요. 이런 게 바로 개인의 사익 추구가 공익에 가깝게 가도록 게임의 규칙을 바꿔주는 것이라고 봅니다.”

▷정부도 구조조정기금 설치를 검토 중입니다.

“책에도 썼지만 외환위기 때도 구조조정기금이란 게 있었어요. 자산운용 전문가들에게 맡겨서 했는데, 그게 다 실패했습니다. 새로운 돈이 들어가면서 잉여시설을 쳐내는 사업 구조조정이 동시에 들어가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거든요. 재무적으로만 접근해서는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결국 플레이어를 합치거나 하는 방식으로 가야지, 잘못하면 배가 산으로 갈 수도 있다고 봅니다.”

■ ‘경제는 게임이다’는…
기업 구조조정 등 ‘게임이론’으로 설명


[월요인터뷰] 조원동 "조선3사 구조조정에 정부 역할 안 보여…'빅딜' 여건 조성해줘야"
경제관료들이 쓴 책은 대부분 회고록이다. 하지만 조원동 전 경제수석이 펴낸 ‘경제는 게임이다’는 다르다. 회고록이라기보다는 경제 이론서에 가깝다. 1990년대 말 각종 경제개혁 조치들을 게임이론이라는 새로운 시각에서 조망한 만큼 책 곳곳에 이론적 설명과 도표, 그래프 등이 등장한다. 그렇다고 딱딱하지만은 않다. 저자 스스로 ‘에세이’라고 표현했듯, 당시 정책 입안자로 참여한 경험을 바탕으로 생생한 현장 얘기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책에는 자본시장 개방, 법정관리와 워크아웃, 대우그룹 구조조정, 기업 간 빅딜, 공적 자금 투입 등 10가지 테마가 등장한다. 각각의 조치를 둘러싸고 정부와 기업 등 이해 당사자 간에 벌어진 충돌을 ‘주인-대리인 이론’, ‘죄수의 딜레마’ 등 다양한 게임이론을 동원해 풀이했다. 때로는 경제 주체 간 다툼을 쉽게 설명하기 위해 중고차 시장 거래, 포커게임 등 실생활의 각종 비유도 동원했다. 권오규 전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풍부한 정책 수립 경험과 고도의 학문적 배경을 갖춘 조 전 수석이 아니라면 분석해낼 수 없는 가치 있는 자료”라며 일독을 권했다.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장은 “게임이론이라는 현미경으로 보여주는 상황은 정밀하고, 분석은 예리하다”고 평했다.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경제 각 부문에 걸쳐 개혁이 절실한 시점에 나온 이 책은 지난 사례를 다루고 있지만 현재의 개혁 과제를 어떻게 추진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단초를 제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 조원동 前 경제수석은 …

옛 경제기획원 출신으로 재정과 기획 분야 전문가다. 이론에 강하고 아이디어가 많다. 강봉균 전 재정경제부 장관, 권오규 전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등에 이어 경제기획원의 주축을 이뤘던 ‘대조실(대외경제조정실) 라인’의 핵심 멤버였다. 박근혜 정부 초기 1년 반 동안 경제수석으로 일하면서 ‘경제혁신 3개년 계획’ 등 주요 정책과제를 짰다. 작년 8월 퇴임 후 1기 참모 가운데 유일하게 대학 강단에 섰다. 최근엔 자본시장연구원에 사무실을 마련해 강의 준비와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1956년 충남 논산 출생 △경기고,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영국 옥스퍼드대 경제학 박사 △행시 23회, 재정경제부 경제정책국장, 차관보 △국무총리실 사무차장 △한국조세연구원장 △박근혜 정부 초대 청와대 경제수석 △중앙대 석좌교수(현재)

정종태 기자 jtch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