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감사 받는 국책은행] 산업은행 자회사 100여곳 일제 조사…금융위도 "부실 책임 묻겠다"
감사원이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기업은행 등 3대 국책은행의 투자회사 관리 실태를 특별감사하기로 한 것은 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사실상 세금을 지원한 투자기업 관리가 허점투성이라는 비판에 따른 것이다. 산업은행은 대우조선해양이 올 2분기에만 3조원 넘는 적자를 낸 뒤 자회사의 방만 경영을 관리하지 못했다며 집중 포화를 맞았다. 또 다른 자회사인 대우건설은 최근 분식회계 논란에 휩싸였다.

수출입은행은 삼성중공업 위탁 경영을 추진 중인 성동조선해양에 약 3조원을 쏟아부은 상태지만 아직 뚜렷한 퇴로를 찾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구조조정 지원 등 정책금융이 맡았던 기능을 시장으로 분산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별감사 받는 국책은행] 산업은행 자회사 100여곳 일제 조사…금융위도 "부실 책임 묻겠다"
○방만 자회사에 눈감은 산은

감사원은 다음달 본격 착수할 산업은행 특별감사에서 대우조선 등 산업은행 자회사 100여곳의 경영실태를 집중 조사할 방침이다.

산업은행은 대우조선 부실과 관련, ‘경영진이 제대로 보고하지 않아 대규모 손실을 인지하기 어려웠다’는 입장이지만 감사원은 더 구조적인 문제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산업은행 임원을 지낸 A씨는 “앞서 현대중공업 등이 손실을 털어냈는데도 아무런 경고등이 울리지 않았다는 것은 뭔가 다른 문제가 있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산업은행의 정체성 혼란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산업은행은 작년 말 정책금융공사를 재통합하면서 은행의 역할을 ‘시장과 조화를 이룬 정책금융’으로 제시했다. 투자회사 관리는 ‘비전문가인 산업은행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전문경영인에게 경영을 맡긴다’는 게 원칙이었다. 이후 산업은행이 선제적으로 구조조정을 이끌며 기업을 정상화한 뒤 신속히 매각하는 흐름이 사라졌다는 지적이 많다.

금융계 관계자는 “오죽했으면 부실 기업들이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이나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보다 산업은행이나 수출입은행 자회사가 되는 게 편하다고 말하겠느냐”고 했다.

○“역할 축소해야” 지적도

산업은행의 설 자리는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1998년 외환위기 직후 산업은행은 인수합병(M&A) 자문, 기업 구조조정 등 상업은행이 손대기 힘든 영역을 개척했다. 산업은행은 과거 대우그룹 계열사와 현대전자 구조조정 등을 주도했다. 2004년 사모펀드 시장이 열린 후엔 토종 사모펀드의 해외 투자를 이끌었다. 사회간접자본(SOC) 금융 역시 산업은행이 국내 시장을 선도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산업은행은 M&A 금융 등에서 시장과 마찰을 빚는 사례가 적지 않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기업을 인수할 때 대출해주는 인수금융 시장에서 산업은행이 출혈경쟁으로 시장을 혼탁하게 한다”고 지적했다.

산업은행 내부에서조차 “민간 상업은행이 하지 않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야 하는데 이 부분이 부족하다”고 자성의 목소리를 낼 정도다.

기업 구조조정 영역에서도 시중은행들의 신뢰를 잃으면서 주도권을 상실했다. 금융업계에서는 STX조선해양에 대한 지원이 결정적인 계기였다고 지적한다. 산업은행의 독려로 약 6조원을 지원했는데 이 중 수조원이 회사 정상화 용도가 아닌 회사채, 기업어음 투자자들을 위한 빚잔치에 활용됐다는 게 채권은행들의 불만이다.

이에 따라 금융위원회는 자회사 부실 책임을 묻는 동시에 산업은행이 해온 역할을 시장과 분담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 중이다. 산업은행과 주요 은행이 출자하는 형태로 올 10월 민간 기업구조조정회사를 설립하는 것이 주요 사례다.

박동휘/김일규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