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w&Biz] "변호사의 변리사 자동취득, 외국로펌만 득본다"
한·미,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시장개방 합의에서 제외된 변리서비스가 한국의 독특한 ‘변호사의 변리사 자격 자동취득’ 제도로 말미암아 우회 개방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고영회 대한변리사회 회장은 “변리사시장을 개방하지도 않았는데 고스란히 안방을 외국 로펌에 내주게 되는 꼴”이라며 “변호사의 변리사 자격 자동취득 제도 폐지 등 다각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대한변리사회가 의뢰한 연구용역 보고서에 따르면 한·미 FTA에서는 변리사 업무에 대해 법률서비스 시장을 일절 개방하지 않았다. 한국 변리사에 해당하는 미국의 특허전문변호사는 미국 시민권자 또는 합법적인 미국 거주민임을 요하는 등 외국인에게 개방하기 어렵다는 미국 측 요구를 받아들인 결과다. 한·EU FTA는 권리범위확인심판 등 일부만 개방하고 지식재산권의 취득, 상실 또는 변경을 목적으로 하는 법률사건에 관한 행위는 개방분야에서 제외했다. 문제는 이런 개방 유보 조항들이 한국의 변리사 자격 자동취득 제도 때문에 한국에서는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보고서를 작성한 김원오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내년 7월(미국은 2017년 3월) 3단계 법률시장이 개방되면 한국 로펌과 영미계 로펌의 합작이 가능해지고 합작로펌이 변리사 자격을 자동취득한 한국 변호사를 고용할 수 있다”며 “따라서 FTA 유보조항과 무관하게 합작로펌이 국내 변리사 업무도 수행할 수 있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변리사 자격 자동취득, 변리사의 소송대리권 등을 둘러싼 변호사와 변리사 간 갈등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로스쿨 도입 이후 급증한 변호사들이 다른 전문영역을 잠식해 나가면서 전문자격사 간에 사활을 건 영역 다툼이 치열해졌다. 변리사업계는 지난해 12월 이상민 새정치민주연합 국회의원(대전 유성구) 등의 의원입법 형태로 변호사의 변리사 자격 자동취득 조항 삭제를 골자로 한 변리사법 일부 개정 법률안을 발의했다. 대한변리사회는 지난 3월부터 이 조항 삭제를 촉구하는 서명운동에 들어갔다. 특허청에 등록된 변리사 7827명(3월 말 기준) 가운데 자동 자격을 부여받은 변호사가 4533명으로 전체의 57.9%를 차지한다. 이들 변호사 출신 개업 변리사 중 출원이나 심판 등을 수행하는 사람은 5% 미만인 것으로 조사됐다.

변리사업계는 “실제 변리사 일을 하는 변호사의 절대 숫자는 많지 않다”며 “하지만 기술과 특허를 모르는 변호사에게 변리사 자격을 주는 것 자체가 국제적 기준에 맞지 않고 소비자의 선택권을 방해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맞서 대한변호사협회는 변리사 제도 자체를 폐지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즉 “지재권 분야의 분쟁은 결국 법률적 다툼이기 때문에 변호사와 별개로 변리사 제도를 운용하기보다는 변호사 중에서 지재권 분야에 관한 전문적인 연수 등을 거친 이들이 해당 업무를 담당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설명이다. 오는 9월 정기국회에서 관련 법안 처리를 놓고 양측이 다시 한 번 정면 충돌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김병일 기자 k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