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그룹 형제간 경영권 다툼의 분수령이 될 일본 롯데홀딩스 주주총회 날짜가 오는 17일로 전격 결정됐다.

이번 주총은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의 소집 요구로 개최 논의가 시작될 것으로 관측돼왔지만 신동빈 회장이 11일 대 국민 사과와 함께 선수를 친 것이다.

롯데그룹은 '사외이사 선임의 건', '기업지배구조(corporate governance) 등'의 안건으로 17일 일본 롯데홀딩스의 주총이 열린다고 발표했다.

롯데홀딩스 이사회를 장악한 신동빈 회장이 신동주 전 부회장과 상의하지 않고 주총 일자를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 신동빈 '기습 주총' 이유는 시간 벌기?
롯데그룹은 최근 경영권 분쟁으로 그룹에 구시대적인 족벌과 재벌 이미지가 덧씌워져 개혁 드라이브가 불가피하다고 역설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물론 일본에서도 소유와 경영 분리에 초점을 맞춘 경영 투명성 강화 차원에서 이번 주총을 기획했다는 얘기다.

그러나 롯데그룹의 그런 설명을 액면 그대로 믿기는 어렵다.

특히 주총 개최일과 안건을 면밀히 뜯어보면 신동빈 회장의 의도를 엿볼 수 있다.

우선 지난달 28일 열린 롯데홀딩스 긴급 이사회를 통해 구축된 세력 구도를 보면 신동빈 회장이 굳이 주총을 열면서까지 롯데홀딩스 개혁 드라이브를 할 필요가 없음을 짐작할 수 있다.

신동빈 회장은 대표이사에 올랐고 쓰쿠다 다카유키(佃孝之) 전 대표이사 등 신 회장 지지세력 5명이 모두 이사진에 포진했다.

이사진 7명 가운데 한명이자 명예회장으로 일선 퇴진 당한 신격호 회장만이 반대 세력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런 구조에선 신동빈 회장은 롯데홀딩스 주총을 열지 않고도 본인 뜻대로 이사회를 통해 개혁 드라이브를 펼 수 있다.

그럼에도 신동빈 회장 측이 기습 주총 카드를 선택한 건 개혁을 명분으로 일본 롯데 분위기를 다 잡고, 신동주 전 부회장의 반격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선제공격'이 목적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지난 7일 일본으로 간 신 전 부회장이 롯데홀딩스 현 임원진 교체 안건을 들고 주총 개최를 요구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신동빈 회장이 장악한 롯데홀딩스 이사진이 그와는 다른 안건으로 주총을 열어 신 전 부회장의 예봉을 꺾으려 했다는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롯데홀딩스는 지난 6월 30일 정기 주총을 했고 이달 17일 주총이 열린다면, 신 전 부회장의 요구를 수용한다고 하더라도 그다음 주총 개최 시기를 상당 기간 늦출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이사회를 장악한 신동빈 회장 측은 이처럼 자기 유리한 쪽으로 개최시기를 조절해 신 전 부회장 측의 공격을 무력화하려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일각에선 신동빈 회장이 롯데홀딩스 주총 표 대결에서 패배를 피하려고 시간끌기를 한다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신동주·동빈 형제가 서로 롯데홀딩스 지분 구조에서 30%대 지분을 보유한 종업원지주회(우리사주), 고준샤(光潤社:광윤사) 등이 자신의 편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신동빈 회장이 확실한 승기를 잡기 위해 자신이 유리해질 때까지 시간을 벌려 한다는 추측이다.

여기에는 신격호 총괄회장의 건강 이상설이 본격적으로 제기된 가운데 롯데홀딩스의 주요 주주인 종업원지주회와 일본 내 계열사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조직 안정'을 위해 신동빈 회장을 선택할 것이라는 계산이 깔렸다는 해석도 있다.

◇ 신동주, 모멘텀 지키려 소송 가능성
신동주 전 부회장은 이제 '작전 변경'을 할 수 밖에 없다.

지난 7일 일본 도착 이후 롯데홀딩스 주총 승리를 위해 우호 세력을 확인하고 결집해 이른 시일 내에 주총 개최 요구를 하려 했다면 '17일 주총 개최'가 확정된 상황에서 대안을 찾아야만 하는 상황이다.

17일 주총 개최 이후 그 다음 주총 개최를 도모하든지 아니면 다른 법적 수단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재계의 다른 관계자는 "주총 개최일과 안건을 선점당한 상황에서 신 전 부회장이 그다음 주총을 기약한다면 모멘텀을 상실할 수 있다"면서 "신 전 부회장으로선 여타 다른 법적인 방법을 강구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신동주 전 부회장이 방일 전에 신동빈 회장이 호텔롯데의 최대 주주인 L투자회사 12곳의 대표이사로 오르는 과정에서 신격호 총괄회장의 동의가 없었던 점을 문제 삼겠다고 했던 것을 고려하면, 그와 관련한 법적 소송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신동빈 회장이 일본 법무성 법무국에 L투자회사의 등기변경을 완료해 일단 형식상 법적인 문제는 없어 보이지만, 법정 다툼으로 가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런 가운데 일본 법무성에 따르면 지난 10일 누군가 호텔롯데의 최대주주인 일본 L투자회사 9곳에 대해 등기 변경을 신청해 눈길을 끌고 있다.

롯데그룹 안팎에서는 7일 일본으로 건너간 신동주 전 일본롯데 부회장이 신동빈 회장 대표이사의 등기 과정에서 문서·날인 위조 등 하자가 있었다며 재변경을 요청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런 추정이 맞다면 벌써 법적 대응이 개시된 셈이다.

신동주 전 부회장은 부당한 방법으로 한일 롯데의 경영권을 탈취했다는 여론전을 펴며 신동빈 회장을 압박하고 신격호 총괄회장에 대한 일본 내 동정심을 유도해 지지세력을 결집하는 한편 임원교체를 안건으로 한 롯데홀딩스 주총을 조기에 개최하려 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서울연합뉴스) 인교준 기자 kjih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