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분기 성장률 0.3% 그쳐…수출둔화·메르스·가뭄 영향
5분기째 0%대 성장…잠재성장률 하락 불가피할 듯


올 2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속보치)이 전기 대비 0.3%에 그치면서 저성장 기조가 고착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한국은행은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와 가뭄 피해가 2분기 성장률 하락의 주요 요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더 근본적인 배경에는 가계부채 증가와 미약한 소비 및 투자심리, 흔들리는 수출경쟁력 등 한국경제의 구조적인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올 하반기에도 미국의 정책금리 인상, 중국의 경착륙 우려 등 대외적으로 우리 경제의 불확실성을 높일 요인들이 널려 있다.

이대로는 정부가 목표하는 올해 3%대 성장률 달성이 어려워지는 것은 물론이고 '더블 딥(경기 재침체)'에 빠지면서 일본의 '잃어버린 20년' 전철을 뒤따라갈 수 있다는 걱정이 커진다.

이에 따라 우리 경제의 비효율성을 제거하는 과감한 구조개혁을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 '수출부진·메르스·가뭄' 삼중 악재가 성장률 0.5∼6%p 끌어내려

한국은행이 23일 발표한 '2014년 2분기 실질 국내총생산' 속보치에 따르면 올 2분기 GDP 성장률은 전기 대비 0.3%에 그쳤다.

앞으로 발표될 잠정치와 확정치를 봐야겠지만 속보치와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작년 4분기 세수부족 여파로 성장률이 0.3%에 그친 이후 올 1분기 0.8% 성장률로 회복 기미가 보이는가 했더니 다시 성장세가 고꾸라졌다.

지난해 4월의 세월호 참사로 경제심리가 위축됐던 2분기의 성장률 0.5%에도 못 미친 수준이다.

한국은행은 올 2분기 경제 성적이 저조한 배경으로 수출부진과 메르스 사태 및 가뭄에 따른 경제 충격을 들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9일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보다 0.3%포인트 낮은 2.8%로 수정 발표하면서 "수출이 부진하고 메르스 사태, 가뭄과 같은 일시적 충격의 영향으로 2분기 성장률이 예상보다 크게 낮아진 것으로 추정됐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지난 21일 외신기자 간담회에서 "완만하게 회복되는 내수도 예기치 못한 메르스 사태와 가뭄 등의 영향으로 빠르게 위축되고 있다"고 비슷한 상황인식을 내비쳤다.

서영경 한국은행 부총재보는 지난 9일 경제전망 기자설명회에서 "가뭄 피해가 0.1%포인트, 메르스 사태가 0.2%포인트대 후반, 순수출이 0.2%포인트가량 연간 성장률을 감소시킨 것으로 분석됐다"고 밝힌 바 있다.

이들 3가지 요인이 2분기 성장률을 애초 예상보다 0.5∼0.6%포인트 낮춘 셈이다.

이에 앞서 한국은행은 3개월 전인 지난 4월 발표한 경제전망에서 올 2분기 성장률을 1.0%로 내다본 바 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예상치 못했던 메르스 충격을 고려하더라도 한은의 경제예측 능력이 부실하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 향후 경제전망도 '암울'…대내외 곳곳에 악재

문제는 대내외에 도사리고 있는 위험 요인을 고려할 때 한국 경제의 앞날이 밝지 않다는 점이다.

우선 대내 요인을 보면 구조적 요인으로 위축된 소비 및 투자 심리가 쉽게 살아날 것이라고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올 2분기 민간소비는 전기 대비 0.3% 감소했고, 설비투자는 0.4% 증가에 머물렀다.

주택거래 활성화 영향으로 올 1분기 7.4% 증가했던 건설투자는 2분기 증가율이 1.7%로 낮아졌다.

메르스 사태 이후 외국인 관광객 감소에 따른 관련 업계의 부진도 상당 기간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22일 경제동향 간담회에서 "메르스 여파를 요인별로 분석해보니 외국인 관광객의 감소 영향이 상당히 큰 것으로 나타났다"며 "7∼8월 관광 성수기에도 외국인 관광객 수가 본격적으로 회복되기는 어려워 보인다"고 우려했다.

전분기 대비 0.1% 증가해 부진에 빠진 수출도 회복을 자신할 수 없는 분위기다.

국제통화기금은 최근 낸 수정 경제전망에서 올해 세계경제 성장률을 3.5%에서 3.3%로 하향 조정했다.

세계교역 둔화 가능성이 하향 조정의 주요 배경이다.

수출 부진에는 엔화 약세와 선진국의 경기회복 지연, 중국의 산업구조 변화 등 구조적 요인이 자리잡고 있어 반등을 기대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대외적으로는 미국의 금리 인상, 중국의 경착륙 우려 등을 헤쳐나가야 할 처지에 놓였다.

미국 금리 인상은 오래전부터 예고돼 왔지만 실제 금리 인상이 단행되면 금융시장에 어떤 충격을 줄지 쉽게 예측하기 어렵다.

최근 나타난 중국의 증시 불안도 위기감을 키우고 있다.

한국 경제는 중국 경제와의 연관성이 매우 높기 때문에 중국 시장에서 부정적 투자심리가 퍼져 나갈 경우 한국 실물 경제로의 전이를 우려할 수밖에 없다.

산업연구원 발표에 따르면 올해 3분기 매출 전망 기업경기실사지수(BSI)는 전분기 전망치(114)보다 12포인트 낮은 102를 기록, 기업들의 경기 회복 기대감마저 뚜렷하게 악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일각에서는 2분기 성장률이 0.3%로 낮아지면서 정부가 내놓은 올해 성장률 전망치인 3.1%는 물론 한은이 내놓은 2.8%도 달성이 사실상 어려워진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연간 2.8% 성장률 전망치를 달성하려면 3분기와 4분기의 성장률이 각각 1%대로 올라서야 하기 때문이다.

◇ '저성장 늪'에 빠지나…잠재성장률도 하락 우려

각종 악재로 경기 회복이 지연되면서 단기적인 경기 부진을 넘어 한국 경제가 아예 '저성장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게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정부가 11조8천억원대의 추경안을 포함한 22조원 규모의 재정보강책으로 경기부양을 꾀하고 있지만 급속도로 약화된 경제 기초체력을 되살려 놓을지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추경안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한 채 표류해 집행시기를 가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우리 경제는 이미 생산과 소비, 투자가 부진한 가운데 수출이 급락하는 등 디플레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황세운 한국자본시장연구원 자본시장실장은 "한국 경제가 저성장의 늪에 빠진 것은 거의 확실해 보인다"며 "다만 악재들이 겹치면서 성장률이 낮아졌다는 점에서 지금보다는 높은 실제 성장률을 달성 가능한 것 또한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책당국은 반복적인 악재에 따른 소비심리 둔화를 막기 위해 컨틴전시 플랜(비상계획)을 마련해야 한다"며 "미국 금리가 인상되더라도 통화정책을 완화적 기조로 유지하는 것이 한 방법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잠재성장률 하락도 기정사실화되고 있는 분위기다.

잠재성장률이란 적정 인플레이션 아래에서 한 국가가 가용 자원을 활용해 달성할 수 있는 성장률을 말한다.

김정호 아주대학교 교수는 "한국 경제는 고령화 및 경제 성숙화에 따라 역동성의 저하가 불가피할 것"이라면서 "2060년대에 이르러서는 잠재성장률도 0.8%대까지 하락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인구고령화 등을 고려할 때 기조적으로 잠재성장률이 하향 추세에 있다는 설명이다.

LG경제연구원은 최근 낸 보고서에서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향후 5년간 2%대 중반으로 낮아질 수 있다고 분석한 바 있다.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은 2013년에만 해도 3.6~3.7%로 추정됐는데 이보다 크게 낮아졌을 것이란 게 연구기관들의 분석이다.

한국은행도 잠재성장률을 3%대 초반으로 하향 조정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장보형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경기순환 요인뿐만 아니라 구조적인 측면에서 추세적인 성장률이 연 3%를 넘기기는 어려워진 상황으로 본다"며 "이제는 저성장 현실을 피하지 말고 받아들여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여전히 고성장 신화에 매몰되면 인위적인 단기 부양책만 나오면서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며 "구조개혁 방향도 단순히 성장률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저성장 기조에서도 국민이 희망과 미래를 갖고 살 수 있도록 만드는데 중점을 둬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울연합뉴스) 이지헌 기자 pa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