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부터 나왔지만 해명 없어…"소설 제목도 시 제목 따왔다"

신경숙(52) 소설가의 기존 작품에 연이어 표절 의혹이 제기되면서 장편 '엄마를 부탁해' 등으로 한국문학 대표 작가로 불린 신씨에 대한 문인과 독자들의 신뢰가 흔들리고 있다.

22일 연합뉴스 취재 결과 신씨가 지난 1990년 '한국문학' 3-4월 합본호에 발표한 '무거운 새의 발자국'과 1992년 '문예중앙' 가을호에 발표한 단편 '멀리, 끝없는 길 위에'는 전남 나주 출신인 윤희상(54) 시인이 각각 신씨보다 앞서 발표한 시 제목과 완전히 일치했다.

윤씨는 1987년 청하가 발행한 무크지(단행본과 잡지의 특성을 모두 가진 출판물) '현실시각 2집'에 시 '멀리, 끝없는 길 위에'를 발표했으며 1989년 민음사가 발행한 계간지 '세계의문학' 봄호에 시 '무거운 새의 발자국'을 발표했다.

두 편의 시는 모두 문학동네가 2000년 발행한 윤씨의 시집 '고인돌과 함께 놀았다'에도 수록됐다.

지난 16일 소설가 이응준(45)이 온라인 매체 기고문을 통해 신씨가 1996년작 단편 '전설'에서 일본 작가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을 표절했다는 의혹을 제기한 이후 신씨의 문학적 독창성에 의문을 가질 만한 과거 표절 의혹이 줄줄이 다시 드러나고 있다.

신씨의 표절 의혹은 이미 1990년대 후반부터 제기됐다.

1998년 문예지 '창작과 비평'에 실린 신씨의 '작별인사' 가운데 "물마루 기척이 심상치 않아." "먼데서 나를 데리러 오는 자의 기척이 느껴진다."는 구절은 마루야마 겐지의 소설 '물의 가족' 중에 "물기척이 심상치 않다." "헤엄치는 자의 기척이 한층 짙어져 오고 있다."를 따왔다는 의심을 받았다.

신씨가 1999년 문예지 문학동네에 발표한 소설 '딸기밭'에 등장하는 여섯 문단의 편지는 재미작가 안승준 유고집 '살아는 있는 것이오'의 서문에 안씨의 아버지가 쓴 편지글을 거의 그대로 베꼈다는 의혹을 받았다.

당시 한 신문사의 보도로 표절 논란이 일었지만 신씨는 "유가족에게 누가 될까 출처를 밝히지 않았다"면서도 표절이라고 인정하지는 않았다.

같은 해 문학평론가 박철화는 '작가세계' 가을호에 발표한 글 '여성성의 글쓰기, 대화와 성숙으로'에서 신씨의 단편 '기차는 7시에 떠나네'(1999년작)의 모티브가 파트릭 모디아노의 작품 세계와 매우 유사하다고 꼬집었다.

그는 비평에서 "'기억'의 문제와 관련하여 프랑스 소설가 파트릭 모디아노의 그림자가 너무나 짙게 드리워져 있다"며 "예정된 지점에다 충분히 소화되지 않은 남의 것을 표정만 바꿔 성급하게 갖다 맞춘 듯한 어설픔을 지울 수가 없다"고 꼬집었다.

문학평론가 정문순은 2000년 문예중앙 가을호에 실은 '통념의 내면화, 자기 위안의 글쓰기' 기고문에서 일찌감치 "'전설'은 명백히 일본 극우 작가 미시마 유키오 '우국'의 표절작"이라고 주장했다.

정씨는 "일제 파시즘기 때 동료들의 친위쿠데타 모의에 빠진 한 장교가 대의를 위해 자결한다는 '우국'의 내용과, 한국전쟁 때 한 사내가 전쟁터에 자원입대하여 실종되는 '전설'은 남편들이 국가를 위해 목숨을 버릴 때 남은 아내들의 선택에 초점이 맞추어지는 점에서 주요 모티브부터 유사하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박씨와 정씨의 비평 모두 세간의 주목을 받지 못한 채 지나갔다.

국내에서 큰 인기를 얻고 해외 번역 출간된 장편 '엄마를 부탁해'(2008년작)와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2010년작)도 각각 일부 구절이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가운데'와 우연 이상으로 유사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하지만 1990년대 한국문학의 대표주자로 입지를 다지고 2000년대에도 활발한 활동을 이어온 신씨는 수차례 제기된 의혹에 이렇다 할 사과나 해명 없이 흐지부지 넘어갔다.

그는 2008년 동인문학상 종신 심사위원으로 위촉되는 등 문단 권력의 자리를 유지했다.

공개된 의혹 외에도, 평소 필사와 메모를 열심히 하는 신씨가 작품 제목과 일부 구절에서 다른 사람 작품의 일부를 수차례 따왔다는 이야기는 문단 일부에 이미 공유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문제가 크게 확산하지 않은 것은 표절 시비가 일었을 때도 문단의 권력 있는 출판사와 문예지, 문인들이 신씨에 대한 상찬을 이어가고 오히려 의혹을 덮어버린 탓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 표절 의혹을 제기한 이씨 역시 "신씨의 표절 문제는 문단에서 대부분 알고 있던 이야기지만 막강한 권력과 인기를 누리는 신씨 앞에서 아무도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며 "저는 이미 십수 년 전부터 생각해온 문제를 이번에 '기록'으로 남긴 것"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파문의 중심에 있는 신씨는 여전히 속 시원한 해명을 내놓지 않고 있다.

차기작 집필을 위해 서울을 떠나 있는 것으로 알려진 신씨는 지난 17일 출판사 창비를 통해 "(미시마 유키오는) 오래전 '금각사' 외엔 읽어본 적 없는 작가"라며 "진실 여부와 상관없이 이런 일은 작가에겐 상처만 남는 일이라 대응하지 않겠다"고 밝힌 뒤 현재까지 무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김중배 고은지 한혜원 기자 hye1@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