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에서 최근 국제중재 심리를 끝낸 법무법인 광장 국제중재팀 변호사들. 왼쪽부터 로버트 왁터 미국 변호사, 임성우 변호사, 김새미 변호사. 광장 제공
싱가포르에서 최근 국제중재 심리를 끝낸 법무법인 광장 국제중재팀 변호사들. 왼쪽부터 로버트 왁터 미국 변호사, 임성우 변호사, 김새미 변호사. 광장 제공
지난달 31일 밤 9시가 조금 넘은 시간. 싱가포르의 한 호텔에 도착한 법무법인 광장의 국제중재팀 변호사들은 숨 돌릴 틈도 없이 캐리어에서 필요한 자료들만 챙겨서 35층 호텔 비즈니스센터 회의실로 향했다. 이틀 뒤 맥스웰 챔버스에서 열리는 중재심리(hearing)에 대비해 그동안 준비해온 구두 변론 및 증인신문 관련 자료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서울을 출발해 싱가포르로 오는 기내에서 줄곧 팀원들과 협의한 내용에 따라 파워포인트로 만든 변론 자료를 추가 수정하고 증인에 대한 반대신문 전략을 최종 마무리하는 등 할 일이 끝간 데 없이 이어졌다.

국제중재 전문 변호사라고 하면 떠오르는 장면들이 있다. 1년의 절반 가까이 비즈니스 클래스를 타고 해외로 다니며, 전 세계 변호사들과 능숙하게 영어로 법리에 대한 공방을 벌이거나 중재 관련 콘퍼런스에 참석해 칵테일잔을 들고 외국인과 이야기를 나누는 등등. 하지만 이런 화려한 모습 이면에는 식사시간조차도 아껴가며 서류와 씨름하는 고단한 시간이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국제분쟁 자체가 국적을 달리하는 당사자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것이지만 요즘은 분쟁의 성격이 과거보다 더욱 복잡하고 다양해졌다는 것이 광장 변호사들의 설명이다. 법무법인 광장의 국제중재팀이 이번에 싱가포르에서 수행하게 된 중재사건 역시 한국, 네덜란드, 미국, 영국, 싱가포르 등 여러 국가 출신의 다양한 전문가가 참여하는 대형 분쟁이었다.

당사자는 한국 기업과 네덜란드 기업. 중재 장소가 싱가포르인 관계로 싱가포르 출신 변호사가 중재인으로 선임됐다. 한국 회사는 법무법인 광장을, 상대방은 미국 유수의 대형로펌을 각각 선임했다. 국내에서의 소송과 달리 국제분쟁에서는 손해액 산정 전문가들도 동원된다. 영어를 사용하지 않는 증인들이 출석하는 경우 통역사의 역할이 중요하다. 사소한 뉘앙스나 표현의 차이에서 당사자들의 희비가 엇갈리는 상황이 생기기 때문이다. 증인의 말 토씨 하나에도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고강도의 심문과정이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1주일 이상 반복되기 때문에 엄청난 집중력과 끈기가 요구된다.

치열한 증인신문 이후 호텔로 돌아오면 바로 그날의 심리과정이 실시간으로 기록된 속기록 최종본이 파일로 도착해 있다. 변호사들은 이 속기록을 토대로 그날의 심리과정을 분석하고 그 다음날 이뤄질 증인신문 준비를 위해 저녁식사도 호텔 내 회의실 옆에 마련된 간단한 다과로 배를 채워야 한다. 증인신문을 준비하는 동안에도 필요한 자료가 있거나 급한 리서치가 필요할 경우에는 한국 내에서 대기하고 있는 같은 팀 변호사로부터 이메일 및 전화로 수시로 연락을 주고받으며 도움을 받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런 경우 국제전화요금 폭탄은 어느 정도 각오할 수밖에 없다.

임성우 변호사는 “싱가포르 시내 관광은 고사하고 심리장소와 호텔만 왔다갔다 하는 사이에 1주일의 심리가 모두 끝났다”고 말했다. 귀국한 뒤에도 며칠간은 바쁜 나날이 이어진다. 기억이 생생할 때 심리를 통해 얻어낸 각종 유리한 증거를 토대로 최종 서면 작업을 진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김병일 기자 k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