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의 맥] 법인세율, 주요국 인하 추세에 보조는 맞춰야
거둬들여야 할 법인세율 인상 주장

야당을 중심으로 이명박 정부 때 낮췄던 법인세율을 환원시키자는 목소리가 높다. 현행 법인세율은 이명박 정부 때 △영업이익 2억원 이하 기업은 13%에서 10%로 △2억원 초과~200억원 이하 기업은 25%에서 20%로 △200억원 초과 기업은 25%에서 22%로 각각 내렸다. 야당은 2억원 이하 기업은 현행대로 유지하되 2억원 초과 500억원 이하 기업은 22%로, 500억원 초과 기업은 25%로 각각 2~3%포인트 인상하자고 주장한다. 그러면 5년간 약 25조5000억원의 세수를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단순 평균 법인세율(지방세 포함)은 1985년 48.2%에서 2015년에는 25.0%로 뚝 떨어졌다.
[뉴스의 맥] 법인세율, 주요국 인하 추세에 보조는 맞춰야
자본 이동을 정부가 규제하던 시기에는 법인세율 인하보다는 외국인 직접투자에 대한 조세 감면 같은 유인 제공이 더 유용했다. 그러나 자본이 제약 없이 국경을 넘나드는 시대에는 외국 기업 유치뿐 아니라 자국 기업을 붙들어 둘 수 있는 유인이 필요해졌다. 그것이 세율 인하로 나타났다. 법인세율은 다국적 기업의 입지 선택과 관련된 의사결정에 영향을 주는 가장 직접적이고 유효한 변수 중 하나다.

법인세율 인하 경쟁이 기업의 입지 선택에 영향을 주려는 것이라는 점에 주의하면 법인세율과 관련된 쟁점의 거의 모든 것을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공격적인 법인세율 인하 정책이 성공해 다수의 다국적 기업을 유치하면 많은 일자리가 만들어진다.

법인세율 인하가 단기적으로는 법인세수를 줄이겠지만 새로 유치한 기업들로 인해 법인세수의 기반이 넓어져 감소한 세수가 상당 부분 만회된다. 더 중요한 것은 새 일자리를 얻은 사람으로부터 소득세가 걷히고, 이들의 소비 증가로 소비세 수입도 늘어난다는 점이다.

낮은 법인세율, 투자의 핵심 변수

복지재원 확보를 위해 법인세율을 높이는 것은 중장기적으로는 유지하기 어려운 정책수단이다. ‘세금밭’이 황폐해지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일자리는 기업의 투자, 특히 새로 만들어지거나 유치돼 들어오는 기업의 투자가 있을 때 늘어난다. 이런 현상은 결국 경제의 성장과 소득 증가를 수반하는 것이고, 일자리가 없어 빈곤에 빠지는 인구를 줄임으로써 복지재정 수요 자체를 줄이는 효과까지 가져온다. 건강한 일자리 창출은 고령화 진행을 늦추는 효과도 가져올 수 있다. 일자리가 없어 결혼하지 못하고, 결혼해서도 출산을 주저하는 상황에서 어떤 출산장려책에 못지 않은 것이 법인세율 인하라는 점도 깊이 음미할 필요가 있다.

법인세율 정책이 다국적 기업의 입지 선택에 영향을 줘 일자리까지 좌우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면 법인세율 인하가 ‘부자 감세’라는 주장의 허구성이 드러난다. 대기업들이 법인세 대부분을 부담한다는 사실에서 법인세는 대기업 대주주들이 주로 부담하는 세금이라고 속단하기 쉽다. 그래서 대기업을 소유하고 있는 부유한 자본가를 혼내주려고 법인세율을 많이 올리면 국내에 입지를 정하고 경영하던 기업 중 다른 나라로 전부 또는 일부를 이전하는 기업이 나타날 것이다. 한국에 들어오려고 준비하던 기업이 계획을 바꾸는 경우도 생길 것이다. 기업이 국외로 나갈 때 특히 중저소득 종업원들이 일자리를 잃게 된다. 높아진 법인세율의 부담이 국내에 남겨진 중저소득 근로자들에게 전가되는 것이다.

일자리 창출로 고령화 지연 효과

최근 실증연구들에 따르면 법인세율을 10%포인트 인상하면 경제성장률이 1.1% 내지 1.8% 하락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야당안대로 법인세를 2~3%포인트 올리고, 다른 나라들은 기존의 세율 인하 추세를 유지한다면 실제로는 4~5%포인트 세율 인상 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법인세율 인상에 따라 세수 예측치는 하향 조정돼야 할 것이고, 그만큼의 세수를 정부가 더 걷는다면 향후 5년간 대략 30조~70조원의 소득 손실이 불가피하고, 주로 중저소득 계층의 부담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입지 선택과 관련된 의사결정은 기존 기업에 대한 투자 수준을 결정하는 의사결정과 매우 다른 특성이 있다. 기존 사업에 대한 투자 의사결정은 세율 변동에 따른 자본비용의 한계적인 변화에 투자가 조금씩 반응하는 형태다. 이런 상황에서는 가속상각(加速償却)제도와 투자세액공제제도 같은 한계비용에 영향을 주는 정책수단이 유효하다. 그러나 입지 선택과 관련된 의사결정은 한 번 시행하면 되돌리는 데 큰 비용이 들어 중장기적 시각으로 분석해 일회적으로 결정한다는 특성이 있다. 법인세율의 상대적인 수준과 그 전망치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이런 특성 때문에 법인세율 인하 정책은 가시적인 효과를 보는 데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경쟁국들이 법인세율을 인하하면 한국도 법인세율을 경쟁적인 수준으로 계속 낮출 것이라는 결단을 보여줄 필요도 있다. 요즘 뒤늦게 법인세율 인하 경쟁에 뛰어드는 선진국들이 법인세율을 낮추면서 향후 추가적인 인하 계획까지 굳이 공표하는 것은 이런 전략을 반영한 것이다. 법인세율을 낮춰놓고 바로 되돌려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여서 법인세율 인하 정책의 일관성에 대한 의구심을 증폭시키는 것은 무모한 행동이다.

법인세율 정책은 이처럼 기업의 입지 선택에 강력한 영향을 주는 변수여서 상식과 다른 결과를 가져온다는 점을 이해하고, 이런 바탕에서 논의해야 한다. 선·후진국 가리지 않고 법인세율 인하 경쟁에 뛰어드는 상황에서 우리만 고고한 척 역주행을 감행하는 것은 우물안 개구리 같은 행태다.

한국도 경쟁적으로 세율 낮춰야

유럽의 대표적 고복지국가인 스웨덴과 영국의 법인세율은 최근 한국보다 상당히 낮은 수준으로 내렸다. 기업 유치가 덜 절실한 미국이나 독일, 일본 등이 법인세율을 높게 유지해온 대표적인 국가들인데, 독일과 일본은 큰 폭의 법인세율 인하를 단행했다(표 참조). 법인세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독일, 일본, 미국 등은 외국인 직접투자에 대한 의존이 크지 않다. 그런데 한국은 외국인 직접투자가 매우 필요한 나라임에도 그 비율이 가장 낮은 나라 중 하나다.

법인세율 인하 경쟁에 적극 뛰어들기 어렵다면 추세를 따라가는 방어적인 전략이라도 구사해야 한다. 방어적으로 생각해도 지금은 법인세율 인하를 고려해야 할 때다. 물론 규제 합리화, 노동시장 구조개혁 같은 기업 환경 개선 노력도 절실하다.

곽태원 < 서강대 경제학부 명예교수·객원논설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