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엇 합병 반대세력 결집 vs 삼성, 연기금 등 우군 확보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의 '기습'으로 촉발된 삼성그룹과 엘리엇 사이의 갈등 국면이 9일로 전환점을 맞이하게 됐다.

주주 명부 폐쇄를 앞두고 이날까지 사들인 지분까지 내달 17일 열릴 삼성물산 주총에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어 남은 기간 주요 주주들 사이에 복잡한 이합집산이 예상된다.

◇ 엘리엇 지분 7.12% 확정…주총 대결 예고
9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엘리엇은 현재 들고 있는 7.12% 지분만 갖고 삼성물산 주총에 참석하게 된다.

엘리엇은 지난 4일 '경영 참여 목적'에서 삼성물산 주식을 매입했다고 공시했는데, 자본시장법상 '냉각 규정'에 따라 5거래일이 되는 11일까지는 추가 지분을 매입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남은 변수는 엘리엇이나 삼성물산과 연대가 가능한 국·내외 큰손들이 이날 얼마나 많은 지분을 사들였느냐에 달려있다.

삼성물산 최대 주주인 국민연금(9.79%) 등 국내 연기금과 자산운용사는 삼성물산에, 외국인 주주들은 엘리엇의 우호 세력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일반적이지만 주주마다 서로 셈법이 다를 수 있어 변수가 크다.

이에 따라 주총일까지 삼성그룹측과 엘리엇 사이에 본격적인 우호 지분 확보전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엘리엇은 이미 지난 5일 국민연금 등 삼성물산 주요 주주들에게 합병 반대에 동참해달라고 촉구하는 서한을 보내며 여론전에 나선 바 있다.

내달 주총에서 특별 결의 사안인 합병 승인 안건이 통과되려면 출석 주주 의결권의 3분의 2 이상 찬성과 발행 주식 총수 3분의 1 이상 찬성이 있어야 한다.

또 양사의 합병안에 따르면 1조5천억원 규모의 주식매수청구권이 행사되면 합병이 취소될 수 있다.

엘리엇의 처지에서는 동조 세력을 규합, 삼성물산 주식 17%에 해당하는 1조5천억원 규모의 주식매수청구권을 청구하는 방안을 우선 고려할 수 있다.

이와 함께 '정공법'으로 출석 의결권의 3분의 1의 반대를 이끌어내는 방안도 병행할 수 있다.

양쪽으로부터 '러브콜'을 받는 주요 주주들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이후 가치, 합병 무산에 따른 주가 하락 가능성 등을 두루 고려하면서 합종연횡을 모색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아직은 주식매수청구권 행사 가격(5만7천234원)보다 삼성물산 주가가 훨씬 높다는 점에서 국민연금 등 주요 주주들이 합병 무산에 따른 주가 하락을 감수하면서까지 주식매수청구권을 대량 행사할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또 엘리엇이 향후 주가 흐름을 보아가며 단기 차익을 챙기고 발을 뺄 가능성도 남아 있다.

이 경우 엘리엇은 이번 주총에서 여전히 의결권을 갖게 되지만 합병 반대의 명분을 완전히 잃게 된다.

◇ 삼성그룹 지분은 13.99%…우군 확보 절실
현재까지 드러난 주요 주주의 지분 보유 현황으로는 삼성그룹과 엘리엇 어느 쪽이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삼성그룹이 가진 삼성물산 지분은 2대 주주인 삼성SDI의 7.39%를 비롯해 삼성화재(4.79%), 이건희 회장(1.41%), 삼성복지재단(0.15%), 삼성문화재단(0.08%), 삼성생명(0.16%) 등 13.99%다.

이 밖에 삼성물산이 자사주 5.76%를 보유하고 있지만 의결권이 제한돼 표결이 벌어졌을 때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엘리엇은 7.12%의 지분만 보유하고 있지만 엘리엇과 연대 가능성이 제기되는 외국인 주주의 움직임이 최근 심상치 않다.

삼성물산의 외국인 지분율은 8일 기준 33.70%에 달했다.

외국인 지분율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이 발표된 지난달 26일 이후 한때 32.11%까지 내려갔다가 엘리엇의 등장 이후 다시 높아지는 추세다.

일부 외국인 주주는 이미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반대 의견을 표명하면서 엘리엇과 '느슨한 연대'를 시사하기도 했다.

삼성물산 지분 0.35%를 보유한 네덜란드연기금자산운용사(APG)는 "삼성물산의 가치는 높은 데 반해 합병 비율이 너무 낮다"며 "불공정한 합병 가격이 조정되지 않으면 합병에 찬성할 수 없다"고 밝혔다.

엘리엇과 직접적인 공조는 없다는 입장이지만 반대 표를 던진다면 결국 엘리엇 측에 힘을 실어주게 된다.

또 공시 의무가 없는 5% 이하의 수준에서 삼성물산 지분을 대량 보유한 외국인 기관 투자가들이 존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제2, 제3의 복병이 언제, 어떻게 주총장에 등장할 것인지 현재로서는 예측이 어렵다.

이 밖에 삼성물산 지분 2.05%를 보유한 일성신약도 이번 합병에 반대표를 던질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국내의 일부 개미 투자자들도 인터넷 카페를 개설, 합병 계획안에 불만을 표출하면서 엘리엇에 주권을 위임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상태다.

이렇게 불만이 터져나오는 이유는 이번 합병안이 주가가 고점에 있는 제일모직에 유리하고 주가가 저점에 있던 삼성물산에 불리한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 3월 말 현재 삼성물산은 삼성전자 지분 8조6천119억원(3.51%) 등 총 13조434억원의 상장 계열사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삼성물산의 시가총액은 보유 주식 가액에도 훨씬 못 미치는 9조4천280억원에 불과했다.

삼성그룹이 내세우는 양사의 시너지 효과 극대화라는 표면적인 합병 명분과는 달리 시장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차원에서 이번 합병이 기획·추진됐다는 평가가 나오면서 일각에서 삼성물산 경영진이 '선량한 관리자로서의 의무'를 저버렸다는 비판마저 제기되는 상황이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은 "두 회사 주가가 극도의 불균형을 유지하는 상황이 오래 지속됐음에도 삼성그룹이 삼성물산의 저평가 문제를 개선하려는 어떠한 노력도 기울이지 않아 엘리엇의 공격을 자초했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윤선희 차대운 기자 indigo@yna.co.kr, ch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