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의 맥] 기업 유보금 과세, 투자·내수 진작 효과 미미하다
지난해 정부 정책의 가장 특징적인 부분은 근로소득 증대세제, 배당소득 증대세제, 그리고 기업소득 환류세제 등 ‘가계소득 증대세제 3대 패키지’를 추진한 것이다. 이 중 기업소득 환류세제는 기업에 남아 있는 유보금을 줄이도록 압박해 기업소득이 가계로 흘러가는 것을 촉진하려는 것이고, 근로소득 증대세제와 배당소득 증대세제는 이 자금이 임금과 배당 증가로 흘러가도록 유도하는 형태를 띠고 있다.

가계소득 증대세제 3대 패키지 중 가장 이례적인 제도는 기업소득 환류세제다. 기업소득 환류세제가 외국에서처럼 배당소득세 회피를 방지해 과세 형평성을 기할 목적으로 추진된 것이 아니라 기업 투자 유도를 목적으로 기업의 소득금액에 과세하는 특징을 갖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뉴스의 맥] 기업 유보금 과세, 투자·내수 진작 효과 미미하다
기업소득 환류세제는 투자, 임금 증가, 배당 등이 당기소득의 일정액에 미달할 경우 그 미달분에 10%의 기업소득 환류세를 과세하는 것이다. 이 제도는 중소기업을 제외한 자기자본 500억원을 초과하는 법인, 상호출자제한기업 집단에 속하는 법인에 적용된다. 이미 법인세법 개정과 시행령 및 시행규칙 개정이 완결돼 지난달 6일 시행됐다. 2017년 12월 말까지 3년간 적용된다.

사내유보금에 과세하는 제도와 비슷한 선례는 미국 일본은 물론 과거 한국에서도 있었다. 미국은 규모에 관계없이 주주의 배당소득세를 회피할 목적으로 이익을 배당하지 않고 사내에 유보하는 비상장법인 및 상장법인 등 모든 법인에 과세한다. 다만 오직 탈세를 위한 사내유보금만 과세 대상이다. 사업상 합리적인 필요에 따라 유보한 것임을 입증할 수 있으면 과세 대상 금액에 포함하지 않는다.

현금성 자산 비율은 낮아

일본은 창업자 가족이 경영에 참여하는 특정 동족(同族)회사에 통상의 법인세 외에 그 이익의 내부 유보에 대해 추가적으로 법인세를 과세하는데, 사내 유보로 조세 회피가 가능한 동족회사에 제한적으로 적용했다. 유보금에서 유보공제액을 뺀 금액의 크기에 따라 세율은 10~20%로 차등 적용했다.

한국도 1991년부터 11년간 사내유보금에 과세하는 ‘적정유보초과 소득과세제도’를 시행한 적이 있다. 이 제도는 1991년 비상장법인과 대규모 기업집단 소속 비상장법인을 대상으로 ‘초과 보유 소득에 15%의 추가 법인세를 부과’한 제도다. 이후 유보소득 과세제도는 여러 차례 개정되다가 2002년에 기업에 대한 각종 규제를 완화하고 기업의 재무구조 개선을 지원한다는 취지로 폐지됐다. 이처럼 국내외 사내유보금에 대한 과세 제도들은 배당소득세 회피 방지를 위한 것이었다. 한국의 현행 기업소득 환류세제처럼 기업 투자 확대를 통해 경기를 활성화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제도는 아니었다.

지난해 한국에서는 기업들이 투자하지 않고 현금을 유보금 형태로 곳간에 쌓아 놓고 있다는 논란이 일면서 기업소득 환류세제를 다시 도입하기에 이르렀다. 기업의 유보금은 현금성 자산 보유뿐만 아니라 생산을 위한 유형자산, 연구개발(R&D) 투자 등 무형자산 보유에도 사용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다시 말해 자본계정의 이익잉여금을 모두 현금 형태로만 보유하는 것은 아니며, 부동산·기계장치 등 유무형의 모든 자산 형태로 보유한다.

총자산 대비 이익잉여금 비율은 2008년 21.0%에서 2012년 20.5%를 나타냈다. 그렇지만 30대 기업의 사내유보금 및 현금성 자산 추이를 살펴보면 2008년 이후 사내유보금 규모는 증가했으나 사내유보금 중 현금성 자산의 비율은 2008년 18.0%, 2013년 17.8%로 높지 않았다.

투자 의욕 저해, 내수 부진 가속

기업소득 환류세제를 기업의 과거 재무제표에 적용해 세금 부담이 증가하는 법인 수와 세금 부담 증가 규모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국회 예산정책처의 관련 자료에 따르면 기업의 투자 규모 등에 따라 연도별로 큰 편차가 있으나 기업소득 환류세제 도입으로 2012년에는 465개 법인이 5833억원의 법인세를 추가로 부담하고, 2013년에는 729개의 법인이 1조738억원을 추가 부담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또 자산 규모별로 보면 기업소득 환류세제의 세 부담이 자산 상위 기업보다는 중위권 이하 기업에 집중될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소득 환류세제는 2015년 소득분부터 적용된다. 기존의 기업 자료를 이용해 정부가 마련한 기업소득 환류세제의 경제적 효과를 추정한 결과는 부정적이다. 첫째, 기업소득 환류세제 신설에 따라 전체 기업과 과세 기업의 평균 세액과 기업의 법인세 부담이 증가하고, 과세 기업의 평균세액과 실효세율은 더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소득 환류세제가 기업의 투자나 임금 증가, 배당 유인 없이 법인세 부담만 가중시켜 기업의 투자 의욕을 저해하고 내수 부진을 초래할 수 있다.

둘째, 임금의 하방 경직성으로 인해 기업 입장에서는 임금 인상 유인이 적다. 한 번 인상하면 다시 인하하기 힘든 임금보다는 배당 조정이 유용한 해법이다. 그렇지만 배당은 대부분 외국인 주주·최대주주에게 돌아가는 비율이 높기 때문에 유효 수요 증대 효과는 그리 크지 않다.
셋째, 기업소득 환류세제는 기업 경영의 자율성을 지나치게 침해한다는 문제점이 있다. 투자 및 임금 인상 여부, 기업의 이익을 주주에게 배당할 것인지 아니면 사내에 유보할 것인지는 기업이 자신의 재무 상태를 고려해 결정할 문제지 정부가 개입할 성격의 것이 아니다. 기업소득 환류세제는 기업의 재무의사 결정 과정에 정부가 개입해 자원의 효율적인 배분을 왜곡할 가능성이 크다.

일자리창출 구조개혁이 선행돼야

지금 한국 경제는 ‘성장의 역동성’을 다시 회복해 ‘소득의 파이’를 키우는 경제시스템 재구축이 필요하다. 기업소득 환류세제로 가계소득이 증가한다고 하더라도 일시적인 소득 증가는 소비를 증대시키는 효과가 크지 않다. 지속적인 소득 상승이 가능하도록 하려면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경제구조 개혁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 노동시장의 유연성 확보, 외국 기업의 국내 진출 확대와 국내 기업의 투자 활성화를 가져올 수 있도록 법인세 인하가 필요하다. 독일 정부는 노동시장 유연성을 높이고 세금 감면·규제 완화 등 장기적 시각의 경제개혁을 통해 경쟁력을 회복, ‘유럽의 엔진’으로 거듭났다.

최근의 기업소득 환류제도 등을 통한 소득주도 성장론은 일자리 창출을 통한 가계소득 증대 정책으로 전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가계소득을 늘리기 위해서는 서비스업 진입 규제 등 지속적인 규제개혁을 통해 새로운 기업을 만들어내는 일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이병기 <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