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토종자동차 판매 '초고속 질주'…SUV 앞세워 글로벌 업체 맹추격
작년 4월 중순께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한 컨설팅회사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중국 토종 자동차업체는 쓰레기를 만들고 있다”고 진단했다. 중국 토종 자동차 브랜드들이 품질·디자인 문제 등으로 중국 소비자로부터 외면받고 있는 것에 대한 비판이었다.

올 들어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올초부터 창안(長安), 창청(長城) 등 중국 토종 자동차 기업의 판매량이 급증세를 보이고 있다. 반면 합작법인 형태로 중국 시장에 진출한 글로벌 자동차업체들은 매출이 감소하거나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1분기 中 토종 브랜드 판매 급증

올 1분기 중국 자동차시장의 가장 큰 특징은 ‘토종 업체의 대약진’으로 요약된다. 중국 토종 자동차업계의 대표 주자인 창안은 판매량이 전년 동기 대비 74.6% 늘었고, 창청은 29.4% 증가했다. 폭스바겐(1.8%)과 현대·기아자동차(0.1%)는 작년과 비슷한 수준에 그쳤고, 일본의 닛산과 도요타는 각각 10%대 감소세를 보였다. 베이징의 한 글로벌 자동차업체 관계자는 “중국 토종 업체들의 판매 실적이 한 분기 동안 이처럼 눈에 띄게 개선된 것은 4년 만에 처음”이라고 말했다.

2010년 중국 정부의 소형차 보조금 정책이 종료된 뒤 중국 토종 자동차업체들의 시장 점유율은 줄곧 내리막길을 걸었다. 2010년 51.6%였던 시장 점유율은 지난해 41.8%까지 떨어졌다. 컨설팅업체 번스타인의 로빈 주 애널리스트는 “토종 기업의 경쟁력 향상으로 글로벌 업체들의 중국 내 성장세가 둔화되기 시작했다”며 “2015년은 중국 자동차시장에서 지각변동이 일어난 해로 기억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중국 토종 업체들이 선전하는 첫 번째 이유로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시장에 집중한 전략이 주효했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중국의 SUV시장은 2012년부터 연간 30%씩 급성장하고 있다. 창안 창청 등 토종 업체들은 이 같은 흐름에 주목해 가격 대비 경쟁력 있는 SUV 모델을 대거 출시하며 시장을 파고들었다. 중국 자동차망 집계에 따르면 지난 3월 중국 내에서 가장 많이 팔린 SUV 모델 10개 중 8개가 창안 창청 등 토종 업체들의 모델로 채워졌다.

임은영 삼성증권 자동차담당 애널리스트는 “SUV는 승용차에 비해 브랜드보다는 가격 대비 성능과 디자인 등이 중요한 편”이라며 “후발주자인 토종 업체들에 상대적으로 시장 진입 기회가 많다”고 분석했다.

창안·지리 자동차 등 엔진 독자 생산

중국 자동차시장의 중심이 중·서부 내륙지역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도 토종 업체들에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베이징 톈진 상하이 등 동부 연안 대도시에 비해 중·서부 지역 소비자들은 소득수준이 낮은데, 이들에게 가격 대비 성능이 우수한 토종 브랜드가 매력적이라는 것이다.

자동차 품질이 과거보다 개선된 것도 무시할 수 없는 요인으로 꼽힌다. 경제주간지 제일경제주간은 “시장 점유율이 하락해온 지난 4년간 중국 토종 업체들은 연구개발(R&D)에 적잖은 투자를 해왔다”며 “그 결과 창안 지리 등 일부 업체는 대부분의 엔진을 독자 생산할 수 있게 됐다”고 분석했다. 창안은 현재 이탈리아 영국 미국 일본 등지에서 R&D센터를 운영하고 있으며, 이 중 이탈리아 R&D센터는 디자인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임 애널리스트는 “중국 토종 업체들의 수출은 아직 러시아 동남아시아 등 일부 국가에 국한돼 있다”면서도 “5년 정도 뒤부터는 해외 시장에서도 중국 토종 업체들이 글로벌 업체의 위협적인 경쟁자로 떠오를 수 있다”고 전망했다.

베이징=김동윤 특파원 oasis93@hankyung.com